<김명열칼럼> 한여름 밤의 사색.

<김명열칼럼> 한여름 밤의 사색.

진한 검정색의 커튼을 드리운듯 캄캄한 밤 속, 여름답지 않게 잔잔한 호수위에는 물안개가 군무를 이루며 조용히 퍼져가고 있다. 암흑과 적막이 궁합을 이루며 깊어가는 여름밤은, 잠이 잘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불면의 밤으로 꼬박 지새우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다. 이러한 때는 각가지 생각과 잡념, 삶의 고통으로 더욱 더 잠은 멀리 도망가버리고 뭔지도 모르는 상념과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되기도 한다.

오늘은 사색과 그리움이 흐르는 유역에 사는, 밤을 잊은 님들에게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성의 편지를 쓴다.

한 여름철이 되면 으례히 제철을 만난 듯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저러한 빗소리는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살아가기가 힘들어서인지, 그래서 감정과 인정이 메말라서인지, 사람들의 가슴이 식어가는 시대, 누군가에게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쓰고 지우는 정성어린 손 편지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여러 일들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보다도 훨씬더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지금 내가 숨쉬며 살아있는 존재의 고독, 그 깊고 깊은 심연속에서 생명의 뿌리를 묵상하며 영의 존재 아래 신을 향한 기도가 샘솟게 되면 자기를 바로 살피게 되고 생소한 타인들이 내 피붙이 같이 정감섞인 친밀한 이웃으로 부각되어 오기도 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고, 굉음을 뿜으며 미친 듯이 달려가는 폭주족들의 자동차 소음도 사라진지 오래된 깊고 깊은 밤이다. 이러한 밤에 호젓이 서재의 책상머리에 앉아 사색에 잠기다 보면, 밤에만 솟아나는 순수하고 깨끗한 열정, 자신의 촉신을 불태워 빛을 내는 촛불처럼 생명의 연소로 누군가에게 따뜻함과 빛을 주려는 원의가 저 깊은 가슴속 어딘가에서 샘물처럼 솟아 오른다. 영혼의 처소에 불을 밝히시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이 밤, 잠 못 이루며 불면에 시달리는 영혼들을 축복하시어 저 밖에 쏟아지는 비처럼 은혜와 축복으로 흠뻑 적시게 해주시기를 손을 모아 빌어본다.

지나간 옛날 내가 어린시절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갑작스레 생각난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했다.

달리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빠르기로 소문난 토끼는 한 달음에 달려나가 느림보 거북이를 멀찌감치 따돌린 다. 눈앞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멀리서 기어오는 거북이를 본 토끼는 휴식도 취할 겸 안심하고 한 잠을 늘어지게 잔다.

토끼가 곤한 잠에 골아 떨어졌을 때 거북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기어가 토끼를 제치고 승리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들 사회는 게으른 토끼가 아닌 성실한 거북이가 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나의 친구 박 교수는 이를 비판한다. ‘거북이를 얕보고 교만에 빠져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며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는 거북이도 토끼의 자세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 친구의 말인즉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는 말로, 그의 말뜻인즉 ‘더불어 사는 삶’을 제안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와는 다른 태도가 요구된다. 끊임없는 경쟁시대, 머리가 터져라고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싸우고 견디며 이겨야만 하는 이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에서 양보와 아량, 배려는 사치에 불과하다. 승자 독식의 우리들 사회에서 생존경쟁은 일상이다. 당장의 생존이 급한 우리에게 ‘벗’과 ‘더불어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 이고 사치가 돼 버린지 오래다.

한국의 어느 철학자는 (개인과 사회는 자폐적 성과 기계로 변신했다)고 비판한다.

기계가 된 개인과 사회에서 (더불어 삶)은 쉽지 않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그저 어떻게 수많은 토끼들에게 뒤쳐지지 않을지에만 몰두하게 된다. 모두가 경쟁 하라고 말하는 상황과, 자칫하면 도태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어떻게 우리는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갈수 있겠는가?……… 얼핏 보면 내 친구 박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현실과 동 떨어진 유토피아와 같아 보인다.

옛날 당나라의 유명한 재상이었던 ‘위정’은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할 줄 알아야만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한 젊은이가 부친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사방이 튼튼한 울타리로 둘러쳐진 포도밭으로, 그 안에는 울창한 포도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는 울타리에는 포도가 열리지 않으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포도밭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울타리를 베어버렸다. 얼마 후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이 점점 망가져 갔다.

울타리를 베어 버리자 사람과 짐승들이 마음대로 포도밭에 들어와 나무를 짓밟았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비록 포도가 열리진 않지만 포도밭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도 포도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은 꽃이 아무리 예뻐도 잎이 없으면 곧 시들어버리고, 아무리 좋은 포도밭이라도 울타리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망가져버린다는 것은 진리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의 역할로 그 사람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말없이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아 정치적 성공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소리에 자신을 낮추고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하는 정치인도 분명히 있다.

그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변 인물들을 볼수 있다.

눈물과 땀과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이 아니고는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고, 훌륭한 선생님들의 알뜰한 보살핌과 올바른 교육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찌 이 시대의 건강한 성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겠는가. 부모님에게서 우리는 성숙한 관계의 중요성을 배우고, 선생님들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을 익혔다. 그들은 우리들 각자의 삶을 꽃피우게 하는 비옥한 대지이며, 공기이고 산소였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다. 그 무엇보다도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와 개성이 앞서있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이기심으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거나, 공정한 룰이 아닌 독단적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만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남다른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이 반드시 작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인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인맥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한다. 어렵고 힘들며 외롭고 쓸쓸해 살기가 정말로 힘든 세상이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왠지 모르게 조금씩 행복할 거라 생각하며 사는 게 우리의 인생이리라.

누구나 내일의 삶에 기대감을 가지고 사는 나날들, 이것 또한 우리들 인생의 희망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통스럽고 살기가 힘든 이 세상사……서로들 위로하며 따뜻한 손길로 한마음 한 뜻으로 말없이 사랑하며 다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잠들고 사방이 조용한 이밤, 시계의 시침은 벌써 자정을 넘어 새벽 2시를 달린다. 세차게 쏟아지던 장대비도 멈춘지 오래다. 우리네 세상사도 이렇다. 비 오는 날도 있고, 그러다 보면 햇빛 쏟아지는 밝고 화사한 날이 오듯이, 세상사 모든 이치가 이러하듯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과 꿈을 갖고 살아가자.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67/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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