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는 사랑하는 딸에게……….

<김명열칼럼> 엄마, 아빠의 품을 떠나는 사랑하는 딸에게……….

(시집가는 딸에게)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성인식인 관례(冠禮), 결혼식인 혼례(婚禮),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중에서 관례는 이제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이고 제례도 복잡한 절차와 형식이 간소화되거나 아예 가족들의 식사자리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한 가운데 결혼과 장례는 여전히 중요한 행사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예전과는 그 형식과 절차가 많이 바뀌긴 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행사라는 위치를 잃지 않고 있다.

자식의 결혼과 부모의 장례는 나를 중심에 두고 벌어지는 새로운 만남과 안타까운 이별 이라는 두가지의 중요한 코드를 지니고 있다. 특히 결혼은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다. 결혼을 통해 성인(成人)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늘의 결혼식은 혼례인 동시에 관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예학(禮學)의 대가인 김장생 밑에서 공부를 시작한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천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송자(宋子)로 불리기도 했다. 예송논쟁(禮訟論爭) 등으로 인해 정치싸움에 몰입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그는 83세의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했다. 예송논쟁을 주도할 정도로 예학의 전문가였던 송시열이지만 딸을 시집보낼 때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손수 편지를 써서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였다.

‘시집가서 잘 살아라’는 바람이 담겨있는 이 편지를 계녀서(戒女書)라고 부른다.

총 20개 항목으로 구성된 계녀서는 윤리와 예절 등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소소한 살림살이를 비롯해 돈과 관련된 현실적인 충고도 담겨있어 눈길을 끈다.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반드시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살림살이는 낭비를 줄이고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소박한 밥상이라 하더라도 정성이 가득한 밥상이 되어야 하며, 검소한 옷차림이라 하더라도 맵시가 좋도록 해야 한다.아내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 솜씨는 그대로 드러난다. 손님이 왔을 때의 음식상과 남편이 외출 할 때의 옷차림을 보면 그 집안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이 많거나 적은 것과는 다른 문제다’.

부모에겐 모든 자식들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아버지에게 딸은 심장 한 조각처럼 더욱 특별한 존재이다. 어느새 성장해서 시집가는 딸을 보내는 아버지는 뿌듯하면서도 애틋한 감정,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슴속 한쪽이 뻥 뚫려 잘려 나가는 듯 보이지 않게 한없이 흐르는 눈물속에 아픔마저 느낀다.

효심이 누구보다 깊고 부모님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고 잘 모셔왔던 나의 분신같이 소중히 키워온 나의 막내딸이 시집을 간다.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하니 여러 사람들 (지인 및 친구, 교인들)이 묻는다. ‘딸 시집보내는 아빠의 심정이 어떠십니까? 예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십니까?’ 마치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묻는다. 사실 30여년 동안 고이고이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동고동락한 분신 같은 사랑하는 딸이 남의집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니 마음과 가슴속 한켠이 잘려 나가는 것 처럼 아프고 허전하며 공허롭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이별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분리다. 가족의 분리, 자아의 분리, 같이 살던 울타리 공간에서 벗어나게 되는 가족의 분리뿐만이 아니다.

나의 DNA를 물려받은, 위로는 오빠와 언니, 즉 큰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 난후, 자녀 중 마지막 남은 하나밖에 없는 나의 분신, 그 하나가 제 부모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나 이상으로 제 엄마(집사람) 역시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 ‘시원 섭섭?’, 그 이상의 마음이 아픈 듯이 서글픈 듯한 허전하고 서운하며, 가슴속에는 멈출 줄 모르고 떠나가는 딸을 보내야만 하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하염없는 눈물줄기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의미에서의 확장이기도 하다. 가족의 확장, 사위와 사돈이라는 새로운 가족, 새로운 친척이 생기는 거다. 게다가 딸이 자식을 낳으면 나의 DNA를 일부 이어받은 새 인류가 탄생하게 된다. 자아의 증식이다. 그래서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허전하게 비워지는 마음한 구석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연결고리를 연상하게 되는 일이다. 딸의 과거와 미래가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시점에 이르러 나의 과거와 미래를 떠 올리게 된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부모와 자식의 입장이 서로 교차되고 오버랩되어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20여년전 나는 어머님을 여의었다. 나에게 유전인자를 물려주신 부모님과의 사별이 떠올랐고, 십여년 전에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장모님과의 이별도 생각나게 한다. 모두 나를 아끼시고 사랑해주셨던 소중하신 분들이었는데, 떠나실 때는 홀연히 떠나가셨다.

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전제하에 좀더 효도를 못해드린 후회감과 여한이 가슴을 후비며 아프게 한다. 과연 나는 자녀들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갈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지금은 딸이 내 곁을 떠나지만 나중에 내가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저 세상으로 떠날 때 남아있는 자녀들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떠나보낼까?…….. 지금 내가 느끼는 ‘자아의 분리’를 겪게 될까? 아니다. 떠나가신 부모님을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다. 이미 자아의 분리는 그 전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지만 떠나 보낼 수 있다. 딸을 시집보낸다는 건 딸의 과거와 미래가 분리되는 시점을 온 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딸의 행복 된 미래를 마음속으로 축복하며 기원하는 일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시집와서 많이도 고생을 했지만은(그래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인데), 딸만은 그런 고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이젠 혼자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며 믿음과 신뢰로 사랑할 때 그 사랑 또한 빛이 나는 거란다.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일도 오는 법,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하면 기쁨이 배가 되고, 궂은일이 있을 때 서로 마음을 합하면 무게가 반으로 준다는 걸, 조그마한 일이라도 서로 협심하며 살아간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능히 헤쳐가고 이겨내리라 믿는다. 낯선 이국땅에 이민와서 뿌리를 내리는 과정속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그동안 너에게 살뜰히 잘 해주지 못한 것이 가시가 되어 가슴속 깊이 박히는구나. 이 엄마와 아빠가 더 잘해주지 못한 사랑을 시부모님과 신랑의 지극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혜롭고 슬기로운 며느리와 아내로서, 그리고 너그러운 심성과 덕으로써 모든 걸 감싸며 부디 은혜로운 마음으로 축복받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하나님께 손 모아 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 딸로 태어나줘서 더없이 고맙고 보람되며 사랑한다. 너로 인해 행복했던 날도, 가슴 아팠던 날도 이젠 기억의 한 모퉁이에 묻어두고, 네가 생각날 때 마다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속에 그리움 하나씩 꺼내 보자꾸나. 언제나 지금처럼 천사처럼 예쁜 마음 변치 말고 나이가 드는 만큼 성숙해지듯, 큰 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모든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자애롭고 사랑받는 현모양처로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 사랑하는 딸과 믿음직한 사위,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한 쌍의 원앙들에게 엄마와 아빠는 온 몸과 마음, 사랑을 다해 두손 모아 하나님께 축원 드리며, 귀여운 내 새끼들, 내 심장 같은 분신의 일부, 나의 사랑하는 딸아, 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고맙고 영원히 사랑한다. 안 ~ 녕. 엄마, 아빠가…….!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64/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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