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경칩이 되면 생각나는 개구리 이야기.

<김명열칼럼> 경칩이 되면 생각나는 개구리 이야기.

1년, 24절기에서 입춘부터 우수, 경칩, 곡우,청명까지는 봄에 해당된다.

다음은 여름으로 넘어간다. 지난 3월 6일은 24절기중 세번째의 절기인 경칩(驚蟄)이었다. 이날은 길고 긴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절기로, 경칩은 예로부터 완연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원래의 뜻을 풀이해 보면, 벌레(蟄)들이 깨어나는(驚) 날이란 뜻이다. 하지만 경칩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개구리다. 경칩과 관련한 이미지들은 대부분 겨울잠에서 깨어나 목청 높여 울어대는 개구리를 모티브로 한다. 옛날 나의 어린시절, 이른 봄 나의 아버지가 밭갈이를 하실 때, 소가 쟁기로 밭고랑을 갈며 나갈 때 보면 가끔씩 땅속에서 잠자던(묻혀있던) 개구리가 놀라서 뛰어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도 반갑기도 하고 기나긴 겨울이 이젠 완전히 나의 곁을 떠나갔음을 감지하면서 따뜻한 봄이 피부속으로 스며들어 화사하게 내려 비춰지는 햇살과 함께 그렇게도 살갑고 고마우며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밭고랑 속에서 뛰쳐나온 그 개구리가 다른 동물이나 벌레들보다 특히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상징이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양서류인 개구리는 대단히 온도에 민감한 동물이기에 동면에서 깨어나, 개구리가 활동하고 알을 낳는 것으로, 향후 기후와 온도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온도가 변화해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서 나왔다가 얼어 죽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기상 예측장비가 없던 시절에는 중요한 관측의 척도였던 셈이다.

그래서 경칩날에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한해의 농사, 풍년과 흉년을 점친다는 ‘개구리 울음 점’이라는 것도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수광이 쓴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奉類說)에 의하면, 경칩 때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한해 동안의 풍-흉은 물론 수해와 한재(旱災)를 점쳤다고 나와 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서서 들으면 그해 일이 바쁘고, 누워서 들으면 편안히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는 민간전승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농한기인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일이 많아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그때의 기후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보통 조선시대에는 경칩에 농기구를 정비해 춘분에 올벼를 심었기 때문에 경칩 전후에 나타나는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정에서는 이때 보통 한해의 풍년을 비는 제사인 선농제(先農祭)를 지냈으며, 농가에서는 개구리 울음 점과 함께 그해 농사 풍-흉년을 예측하는 ‘보리싹 점’을 쳤다고 한다. 보리의 싹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잘 자라 올라오면 풍년,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와 함께 민간에서는 보통 경칩 전, 후 청춘남녀가 어울려 데이트를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고 한다. 가을에 은행나무 열매를 주워서 상호 간직하고 있다가 경칩날 은행나무를 돌면서 이를 먹으면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전승이 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지만, 서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열매를 맺기에 순결한 사랑이며, 또한 비록 맛이 쓰고 껍질이 단단하지만 땅에 심어 그 싹을 틔우며 천년을 살아가는 은행나무처럼 영원한 사랑을 염원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경칩과 비슷한 절기 기념일은 미국과 캐나다에도 있다. 그라운드 호그 데이(Groundhog Day)라는 날로, 2월2일에 열리는 기념일이다. 다람쥐과 동물인 그라운드 호그가 굴에서 나와 자기 그림자를 보지 못하면 굴을 떠나며, 그것은 겨울이 끝난다는 것을 암시하고, 반대로 그림자를 보고 다시 자기 굴로 돌아가면 겨울이 6주간 더 지속될 것 이란 민간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이제 다시 개구리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이 없네 / (동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우물안 개구리, 으스름 달밤에 개구리 우는소리, 시집못간 노처녀가 안달이 났구나. ‘뱃노래’ 에서 보듯 개구리는 우리의 삶과 친숙하다. 개굴개굴하는 울음소리는 정겹기도 하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시끄러움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미리 예측한 세가지 일)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겨울철에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많은 개구리가 모여 3~4일 동안 울었다는 설화다. 설화에 등장하는 겨울철 개구리의 시끄러운 울음은, 신라에 몰래 들어와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백제군사를 미리 알려준 셈이다. 김삿갓은 어른의 책 읽는 소리를 조롱하는 시에서 ‘황혼에 개구리가 시끄럽게 못에서 운다’고 표현했다.

개구리는 습지 생물이지만 폐호흡과 피부호흡 두가지를 다 할 수 있게 진화했다. 물과 뭍을 옮겨 다닌 양서류(兩棲類)인 것이다. 개구리는 풍부한 마릿수로 종족 보존을 이어간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개구리의 재앙’으로 기록하고 있다.(출애굽기 8:1~15).

개구리가 무리지어 우는 것은 번식기에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개구리는 인문학적으로 긍정, 부정을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한다. 우물안 개구리, 즉 정중지와(井中之蛙)는 아는 것이 좁다는 의미로 쓰인다. ‘물 논은 개구리 운동장’이란 말은 개구리가 물이 있는 논을 즐겨 찾는다는 의미다. 퇴계 선생은 ‘무논에 개구리’를 한자 음으로 물론개구리(勿論改求利)라고 적었다. ‘무논에 개구리 날뛰듯’이란 말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옛날에는 경칩에 개구리 알을 먹었던 풍습이 있었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위로 올라온 개구리들과 도룡뇽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이나 웅덩이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통증에 좋을 뿐 아니라 허약해진 몸을 보양할 수 있다고 해서 경칩날에 연못이나 웅덩이의 개구리 알이나 도룡뇽의 알을 먹었다. 나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이웃집에 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허리가 굽고 늘 허리통증으로 고생을 하시는데, 봄이 되면 경칩을 전후하여 동네 아이들에게 개구리 알을 건져오라고 부탁을 했고, 알을 가져다주면 댓가로 달걀과 사탕을 나눠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나의 머리속에 남아있다. 그 개구리 알을 먹고 나서 허리통증이 낫는지 안 났는지는 잘 모르며 기억도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잡을수 없는 시간, 지나간 과거와 추억들을 그리워한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이들이 만들고자 했던 ‘타임머신’은 아직까지도 염원의 대상이며 복고(復古)가 꾸준히 유행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현대, 농촌과 도시의 구별됨이 없을 정도로 완전 도시화된 현재와는 달리 검정 고무신을 신고(어느 때는 가난한 사람들은 한 여름엔 맨발) 겨울엔 솜바지 저고리를 입고, 여름에는 앞 시냇가에서 미꾸라지, 붕어, 피라미를 잡던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으나 마음만은 따뜻했던, 그 옛날의 향수가 있다. 때문에 순수함을 간직했던 시기를 되돌아보며 그 시절 그 옛날의 재미있고 아름다웠던 추억들은 오랜 시간과 세월이 흘러도 추억의 앨범으로 엮어져서 생각이 나고 옛날의 향수가 그리울때면 언제나 꺼내보고 들춰내 본다.

특히 봄철이면 동네 물논이나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개구리를 잡아 앞다리와 몸통은 떼어내고, 뒷다리만 잘라 껍질을 벗겨내고 버드나무 꼬치에 꿰어 구워먹던 일이나, 가을철이 되면 벼논 곳곳에 튀어 다니고 날아다니던 메뚜기 튀김의 맛은 죽어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세상에 이러한 동물들을 잡아먹었던 몬도가네식 이야기를 하면, 야만인이고 미개인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 그 시절엔 영양이 부족하던 시절에 행해진 일인 만큼 대부분의 나이 들고 시골출신의 남자들은 경험해본 일들이기에 추억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6면으로 이어짐>

1950년대부터 70년대 후반까지 한국사회 30여년의 세월은 배고픔의 연속이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섭취하게 된 것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단백질 식품들이었다. 그것들은 냇물의 민물고기를 비롯한 뱀, 두더쥐, 개구리, 산토끼, 꿩 등등이었다. 요즘에는 정력에 좋다고 중년 이후의 사내들이 전문 취급점에서 몸보신과 정력보충제로 그것들을 비싼 돈을 쳐들어가며 사먹고 있지만, 그 옛날은 생계수단으로 그것들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몸보신과 정력보강제로 사먹는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해지니 행복에 겨워서 여벌로 돈 써가며 축 쳐져 내린 뱃살을 두들겨가며 먹고 있지만, 과거 70년대 까지만 해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정부가 배급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었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차지였던 몬도가네식 음식들이 아이들한테로 전해져 8살 이상만 되면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개구리(뱀은 징그럽고 무서워서 가까이 하지도 않고, 지천에 깔린 개구리는 잡기도 쉽고 맛도 좋아서 주로 개구리 뒷다리를 대상으로 잡아서 구워먹었다) 구워낸 개구리 뒷다리 맛은 정말로 맛이 너무나 좋았다. 고소하면서도 노오랗게 구워낸 그 맛, 아삭 아삭하게 씹히는 맛은 정말로 천하 일미였었다. 영양실조로 팔과 다리는 훌쭉하고 앙상하며 배만 불룩 튀어나온 아프리카 난민의 아이들과 비슷했던 50~60년대의 그 당시 아이들에게는 뱀이나 개구리, 등은 단백질 보충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몇십년이 흘러간 지금도 나는 그때 그 맛(개구리 뒷다리 맛)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다. 잘 구워낸 개구리 뒷다리 맛은 영락없는 닭고기 맛과 비슷했다. 경칩에는 땅속에서 잠을 자던 개구리가 봄이 왔음을 알고 땅 밖으로 기어 나온다는 속설에, 개구리 이야기를 곁들여 즐거웠고 배고팠던 옛날 옛적 추억의 이야기를 더듬어 보며 적어보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중에는 아마도 나와 같은 옛날의 같은 추억을 가졌던 분도 계시리라 생각이 든다. 지나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즐거워 보인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0/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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