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장미꽃 피는 아름다운 6월에 띄우는 편지

<김명열칼럼> 장미꽃 피는 아름다운 6월에 띄우는 편지

화사한 봄은 그렇게 뜸을 드리며 더디게 오더니, 정원의 꽃과 텃밭의 채소는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100미터 달리기에서 숨가쁜 경주를 벌이면서 하루가 다르게 다투며 피어나고 자랍니다.

영국의 격언에 ‘따스한 마음은 정원이고 좋은 생각은 뿌리이며, 위로의 말은 꽃이고 착한 행동은 열매입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길잡이를 축소해놓은 풍요롭고 정직한 정원은 언제나 나를 일깨워 주는 아름답고 고마운 곳입니다. 이처럼 화사하고 넉넉한 자연이 함께 숨쉬는 정원에서 집 주위와 길가까지, 꽃향기와 더불어 파인애플과 맹고가 영글어가는 풍요로움에 초여름의 6월은 불볕더위와 함께 그렇게 한 여름을 향하여 줄달음쳐가고 있습니다.

악어는 더위를 피해 물속에서 오수를 즐기고 꿀벌들은 겨울의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부지런히 꽃봉오리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이들을 보노라면 잠시나마 삶의 여유와 마음의 평화까지 덤으로 안겨다줍니다.

작디작은 꽃들이 함께 모여서 고운 자태와 은은한 꽃향기를 내뿜는 들꽃들처럼 우리도 보잘것없고 평범한 한 개인들이 모여 집단사회를 이루고, 그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해주는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장미꽃 피어 아름다운 6월에, 어느 한가로운 오후를 맞아 꿈꾸어봅니다. 이번에는 일년의 반을 접는 이 달에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안부인사와 함께 따듯한 마음의 인사를 보내드립니다.

이제 푸른 신록의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6월의 뜨거운 태양이 눈부신 초록을 만들어갑니다. 태양아래 싱그러운 초목들처럼 건강하고 복되게 늘 언제나 매일 매일이 푸른 날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붉은 장미의 열정처럼, 눈부신 초록의 싱싱함처럼 현실에 만족하며 주어진 삶을 범사에 감사하며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야겠습니다.

6월의 태양은 우리의 머리위에 더 가까워져서 뜨거운 입김을 쉬지 않고 내뱉고 있습니다. 자연속의 신록은 더욱 짙어가며 푸르러지고, 투명한 푸르름이 빛과 그늘을 부르며 아름답게 번져가는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과 들과 언덕을 덮는 이때, 젊음과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주고받고) 자연속에 조우하는 그들의 찬미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 한 이러한 때를 맞아하면, 나는 나의 곁에 절친한 벗이 있고 그 친구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찬미와 기쁨의 노래에 귀를 귀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어떻게 생각한다면, 우리네 사람이란 환경과 현실의 구속 감속에 세속에 얽매여, 이렇게 내 머리위에 파란하늘과 아름다운 태양이 있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주머니속의 돈만 세고, 지위를 생각하며, 명예를 생각하는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칠정(汚辱七情)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만 마음이 얽혀서 걱정 없이 편안한 날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들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이고, 또한 얼마나 저속한 죄악속의 속물인지 알지 못하며,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잠시나마 이러한 속세를 떠나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태양이 한가지로 숨 쉬고 느끼고 노래하며 자연속에 묻혀 보는 것도 이 힘들고 험난한 세상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한가지의 방법일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아름다운 6월, 신록이 짙어가는 이 6월에는 장미꽃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나의집에서 멀지않은 곳, 어느집 길가의 담장위로 붉은장미가 그 아름다운 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5월의 장미’라고도 하지만, 6월이 되어서는 그 장미가 한층 더 숙성하고 향기조차 더욱 깊어져 그윽한 멋을 풍겨주고 있습니다. 이 장미꽃을 두고 사람들은 꽃 중의 꽃이요, 꽃의 여왕이라는 찬사가 더욱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입니다. 그만큼 장미는 화사하고 아름답고 또한 뇌살적입니다. 붉은장미가 끝없는 인간의 정열을 상징한다면 흑 장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염이며, 백장미는 우아한 기품의 상징입니다.

꽃중의 꽃으로서 또는 꽃의 여왕으로서 장미는 그 선호도에 있어서 동양보다는 서양쪽이 더 가깝습니다. 서양에서는 장미꽃을 빼 놓은 대화는 ‘신사의 대화’가 아니라는 말도 합니다. 장미꽃을 빼고 서양문화를 말하는 것은 동양문화에서 달을 빼고 이태백(李太白)이를 말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미는 실인즉 그 원산지가 중국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중국에서는 꽃중의 꽃으로 ‘모란’으로 불리는 목단(牧丹)을 꼽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장미에 관한 고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신라때 설총(薛聰)이 신무왕께 장미꽃의 속성을 아뢴 얘기입니다. 이를 설총의 화중계(花中戒)의 풍간(諷諫)이라 합니다. 예쁜 장미에 가시가 많다는 것과 예쁜 장미일수록 병에 약하다는 것을 장미에 빗대 설총이 신무왕에게 세속의 이치를 풍자적으로 일렀다는 화중계의 풍간입니다.

화려한 생김새만큼이나 화려한 계절에 피는 장미꽃,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은 장미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이 꽃말인 붉은 장미는 연인이라면 한번쯤 주고 받았을법한 필수 선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입니다. 또 향기가 좋고 아름다워서 관상용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미꽃에 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써 올린 글의 칼럼이 2017년 6월21일 ‘아름답게 피어난 장미꽃을 바라보며……’ 제하의 글이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신다면 본보(플로리다 코리아)의 칼럼란을 참고하시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세계 인류가 코로나19로 자유를 빼앗긴지가 일년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6월, 꽃들이 만발하여 벌과 나비는 꿀을 채집하러 분주히 날아다니는데 유독 인간들만이 자유를 구속받은 채 코로나19 질병의 두려움과 확진의 공포속에 억눌려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꽃 피는 6월임에도 맘 놓고 웃을 기분이 나질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내 뜻대로 만날 수 없다는게 너무나 힘이 듭니다. 가족은 사랑으로 얽혀 살아야 할 가장 소중한 사이입니다. 힘든 세상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혈연관계입니다. 식구처럼 지내는 다정한 친구와 친지들 역시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며 사랑과 정을 쌓아 가야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수다를 떨며 웃어본 적이 언제였나 싶습니다. 코로나가 이런 가족과 친지 사이를 무참히 갈라놓았습니다. 이러다간 가족이나 친지들을 영영 외면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듭니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존재 이유는 기쁠 때나 어려울 때 함께 어울리는데 있습니다. 서로 소원하게 지내다보면 사랑과 우정도 따라서 소원해지는 게 삶의 이치입니다. 그들과 맘 놓고 만나 사랑과 우정을 쌓으며 행복을 공유하게 될 그날을 손 모아 빌어봅니다.

장미의 계절 6월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감미로운 장미처럼 우리들의 삶도 이와같이 아름답고 감미로운 삶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네 삶은 꿈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꽃처럼 아름답지도 않으며 삶의 구석 구석 생활속에 부딪치고 상처받은 내면에는 향기도 없어서 살아가면 갈수록 끝도 없는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장난기가 넘치신 건 아닐까요? ……….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재미로운 풍경일까요. 누구는 즐거운 파티를 하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는 사랑을 하고, 누구는 싸우고 있고, 누구는 병으로 고통을 받고, 누구는 돈이 없어 고생을 하고, 누구는 세상이 싫어서 죽음을 생각하고 등등 이렇게 제 각각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장미꽃을 보며, 우리들 인생도 저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나는 인생, 삶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울러 인생 삶의 의미도 깊게 깊게 생각을 해봅니다. 삶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기만의 독특한 정서, 혹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를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또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삶의 목적을 갖는데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생기면 삶의 의미는 자연히 갖게됩니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은 어디에서 오는가요? 특정한 일에 대한 사명, 목표, 노력 등의 방향에서 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은 비록 쉽게 이룰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삶의 방향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년퇴직후 노년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대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자비(사랑)을 베푸는 것에서 찾으면 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는 단지 노년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일까요?

“곧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자매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복음 25:40”.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마음과 몸으로 베풀어 보는 건 어떨까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며, 소외된 사람을 따듯하게 받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들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아 선행을 베푸는 것이 인생을 의미있게 하는 사랑의 행동인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행위는 가르침, 충고, 위로, 편안하게 해주기, 용서, 그리고 부드러운 대화, 중보기도 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 6월에 우리모두 장미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나는 삶을 그 꽃에 날아드는 벌과 나비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며 감미로운 인생을 꾸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는 보람된 나날이 이어 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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