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의 문턱인 9월에………..

<김명열칼럼>  가을의 문턱인 9월에………..

찌는듯한 무더위와 폭염속, 시도 때도없이 오락가락 하며 쏟아붓던 장맛비도 시간과 세월의 흐름앞에서는 맥을 못추고 저만치로 한발 물러서서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다. 이제는 한여름이 지났다고 보는 가을의 문턱, 결실의 달 9월이 우리들 곁에 찾아왔다.

이른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노동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땀과 정성을 거름삼아 가꾸고 손길을 투자한 농작물들이 농부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선물해주는 그러한 달이다. 나의 부모님은 충청도 어느 시골의 순박한 농부였다. 대대로 대물림하며 물려받은 농토와 전답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가꾸며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여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야 어렵다고는 하지만, 농사만큼은 어렵지 않은 듯싶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 땀 흘리며 평생을 살아오신 나의부모님이나 시골의 농부들을 생각하면 배우고 깨달을 것이 참으로 많다. 책에서 배우지 못한 검소한 삶과 노동과 자연에 대한 지혜는 한평생 배우고 깨달아도 모자랄 만큼 너무나 많이 있다.

땅을 벗 삼아 평생을 살아온 농부들의 삶은 이렇다. ‘흙에서 탄생하고 흙에서 자랐습니다. 흙과 더불어 일하고 흙과 더불어 삽니다. 농부는 흙이 생명이요 흙으로 돌아가 흙이 됩니다.’

흔히들 9월을 결실의 달이고, 10월은 추수의 달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때가 농부가 지난날 동안의 정성과 수고와 노력으로 풍성한 결실을 수확할 때이다. 가을이 되면 한여름내 초록의 푸르름속에 건강과 풍성함과 젊음을 자랑하던 온갖 초목들이 채색을 한듯 고운 단풍색깔로 변색을 하여 들과 산과 강을 아름답게 치장해준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단풍진 한잎 한잎을 바라보며 삶의 소박한 진리를 깨닫고 겸손의 미덕을 자연속에서 배우게 된다. 또한 이러한 가을에는 자신의 미래도 좀더 멀리 내다보게 되고, 오늘의 내모습도 세심히 살펴보며 다른 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더해진다. 파랗고 맑은 하늘을 보고 진실을 생각하며 더 투명해지고 올바르고 선한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의 다짐도 새겨보게 된다. 가을이 되면 이렇게 생각이 깊어지고 우리는 그 생각의 틈새에서 우리의 마음도 한층 더 풍성해진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우리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이 있다. 달력을 보니 금년의 추석은 9월13일이다. 추석은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로, 한해 동안의 결실이 가장 풍성할 때이다. 멀리 사는 친척들이 함께 모여 1년 농사의 결실인 맛있는 곡식, 풍성한 과일을 함께 나눠먹으며 한해의 풍요로움을 머리와 가슴속에 되새겨보기도 한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왔던 모든 일들의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맛볼 때이다. 지난시간과 세월동안 우리는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직장에서는 상사로서, 또는 부하직원으로서, 그리고 자영업자는 각자의 일터와 사업장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으며,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가정주부역할과 가장, 자식의 본분을 지키며, 나아가 사회에서는 건강하고 맑은 정신을 가진 하나의 사회인으로서 우리사회의 풍성한 수확에 한 몫을 거들었다. 이제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눌때이다. 우리 자신보다 주위에 있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며, 그들과 함께 내가 갖고있는 것들을 나누어보는 복된시간도 가져보자. 나눔의 기쁨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행위이고, 나눔 그 자체가 바로 보상이다. 풍성한 수확물의 나눔으로 이 가을에는 나와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어보자.

온갖 우주만물과 세상을 창조해주신 하나님의 자연 섭리는 해마다 변함없이,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에 움이 트며, 여름이면 무성하게 성장을 하고, 가을에는 결실의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움추리고 동면을 하게 된다. 금년에는 유달리 무더웠고 불쾌지수가 높고 긴 여름이었다. 때로는 게릴라식 폭우가 쏟아져 특정지역에서는 인명과 농토, 농작물의 피해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큰 태풍이 없어 기쁜 일이다. 우리들에게 시절의 변화는 우리 인생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 지금 같은 결실의 계절 가을에 농산물의 작황을 말할 때, 농작물이 잘되면 이를 풍년작이라 하고 보통의 작황일 때를 평년작이라고 말한다. 우리들 인생의 삶에 있어서도 인생의 삶이 풍작이 될 수도 있고 흉작이 될 수도 있다. 풍작을 생각할 때, 성경에서 말하는 풍작은 위대한 예언자들이다. 베드로 또는 바울처럼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빛을 발하며 그의 신앙 활동이 성서안에 긴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아마도 풍작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흉작도 있다. 성서의 아합왕이나 헤롯과 같은 군주들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같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모든 백성과 나라에 악영향을 주었던 일생일 것이다. 이에 비례해 평년작과 같은 인생도 있다. 이는 아무것도 하는일 없이 일평생 남이 피땀 흘려 수고한 것을 먹고 살면서도 자신은 무위도식하는 인생일 것이다.

지금쯤 나의고향 산골마을에서는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 결실을 맺고, 감은 노랗고 빨갛게 익어갈 것이다. 익어가는 감과 영글은 벼이삭을 생각하니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 맞다. 결실의 사전적 정의는 식물이 열매를 맺거나 맺은 열매가 여묾, 또는 그런 열매를 말한다. 또한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짐, 또는 그런 성과를 뜻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어는 쭉정이다.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쭉정이라고 말한다. 황금빛으로 물들어 고개 숙인 벼이삭과 노랗게 익어가는 감을 생각하면서 올 한해 나는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지 잠시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쭉정이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을의 문턱인 9월이다. 가을을 흔히 풍요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마음은 삶에 지치고 혹사당하다보니 대부분 비어있고 공허하기만 하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는 또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머지 몇 달 남지 않은 금년의 하반기를 새롭게 다잡아야할 시점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 없으면 나의 삶은 무료해지고, 인생자체도 무의미해지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무엇으로 회복할 것인가? 누가 나의 텅 빈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줄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바르고 인간답게 살아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음은 삶의 피곤함에 찌들어서 매우 강팍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누구를 돕고 사랑하며 살 수 있겠는가. 남을 돕고 사랑하려면 우선은 나 자신부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높은 하늘과 아름다운 단풍으로 대표되기도 하는 가을, 그 가을은 우리에게 풍성함을 누리게 해주었고, 먹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수확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해주었다. 더 나아가 가을이라는 계절은 우리들에게 먹고산다는 것, 즉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쩌면 이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 것은 이제껏 이날을 위해 흘려온 농부들의 땀 덕분이 아닐런지?………….

결국 이러한 물질적. 정신적의 풍성함 뒤에는 농부들의 역할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자연은 정직하다는 것과 땅만 믿고 살아온 그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결실의 계절이자 감사의 계절이기도한 이 가을은 이들 농부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더불어 아낌없이 인간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자연에게도 깊은 감사를 올린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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