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

<김명열칼럼>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

 

남을 무시하지 않고 나보다 먼저 생각하며 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을 예의가 바르며 착한사람이라고 보고 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은 서양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그런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현대문명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의 경우, 길가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하이(hi)하고 으례적으로 간단한 인사를 건네주고 간다. 그리고 그들은 또 누가 어려운 사정에 있는 것을 보면 의례 도와드릴까요?(May i helf you?) 하고 묻는다. 상점에서도, 사무실에서도‘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이 습성화돼있다.

지난 어느 때인가 나는 테네시주의 어느 한적한 농촌 길을 느긋한 마음으로 주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농촌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천천히 운전을 하며 가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름 모를 야생화가 들판에 질펀하게 피어있고, 초가을의 화사한 햇살과 물감을 칠한 듯 파아란 하늘빛에 반사되어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를 이루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한 환상적인 모습에 도취되어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차에서 내려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정차하여 무엇이 고장 낫는지의 여부를 물으며 자기가 도울 일이 없느냐고 친절하게 물어보는 경우를 겪었다.

시카고 인근 엘진에 살고 있는 나와 절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 K사장이 있다. 그의 이민초기 70년대말의 여행경험 이야기이다. 그는 자동차를 이용해 시카고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I-80번 국도 하이웨이를 따라 서쪽으로 육로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80번 하이웨이를 따라 드라이브 여행을 하면서 주변의 경치 좋은 곳을 둘러보며 유유자적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다. 그가 아이오와를 지나 네브라스카를 거쳐 와이오밍주의 산악지방 도로의 가파른 고갯길에 들어섰을 때 그가 타고 있던 자동차가 슬그머니 멈춰버리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봐도 주위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왕래하는 차는 가물에 콩나듯이 가끔씩 한두대가 지나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인촌은 찾아볼 수 없으며, 추워진 산악의 찬 밤공기는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낯선 행인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관심 있게 봐주는 운전자는 없었다. 그렇게 서서 가끔씩 몇 분 만에 한대씩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기를 한시간여,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고 이제는 춥고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힘들고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차 안으로 들어와 몸을 녹이며 시트에 기대어 누웠다. 얼마가 지났을까. 비몽 사몽중에 어느 미국인 중년의 남자가 손전등을 비추며 차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May I helf you?라고 물어왔다. 이런 때가 바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자초지종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더니 그는 자기 자동차안에서 로프를 꺼내와서 뒷 범퍼에 친구의 차를 연결해 견인하여 천천히 달렸다.

거의 30여마일을 달려가니 어느 조그만 동네가 나타나고, 그 동네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동네라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며 자기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자기가 사는 동네는 자동차 정비업소가 없으니 오늘은 자기의집에서 자고 내일 근처의 큰 도시로 가서 차를 고치자고 제의하며, 한편의 방을 제공해 주었다. 그의 부인도 매우 친절하며 먹을 것을 대접하고 침대의 시트도 새것으로 깔아주었다. 이튿날 그곳에서 20여마일 떨어진 중소도시에 가서 차를 고쳤다. 그를 도와준 미국인은 고맙게도 자동차 수리비도 대납해주었다. 돈을 건네는 내 친구의 손을 한사코 거절하며, 즐겁고 좋은 여행이 되라고 손짓의 인사를 보내주고 따듯한 미소를 보내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배려는 타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도 인격자가 갖추어야할 미덕중의 하나다.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고, 양보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려야말로 인간관계를 원만하고 매끄럽게 이끌어주는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주위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조직사회에서 때로는 당신도 리더가 되어 통솔하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 그럴 때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자연히 불평과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통치자나 사회의 지도자, 학교의 선생이나 교회의 목사 등등 모두가 같은 예이다. 배려도 하나의 예이다. 예의바른 태도는 그 사람이 지닌 능력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가식적인 예의는 금방 표가 나기 마련이지만, 진심으로 예의를 갖춰 사람들을 대한다면 사회적인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우리들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가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예의범절이다.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은 사회인으로 성공하기 힘들다. 예의는 상대에 대한 정중함과 상냥함에서 시작된다. 공손한 말투나 행동은 타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표현이다. 물론 싫어하는 사람한테까지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는 또 다른 내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다 있는 대로 표출하고 내 보일 수는 없다. 때로는 자기의 감정을 다스리고 접어둘 수 있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다.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낫고, 아름다운 행위는 훌륭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예술이며 인간이 창조해내고 표현해낼 수 있는 최고의 예술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상대자를 배우자로 선택하게 된 동기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한국의 어느 결혼정보사가 발표한 미혼 남녀 5백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그들은 자상한 남자와 여성스런 여자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상함을 나타내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배려심이며, 여성의 여성스러움에도 배려가 주는 부드러움이나 사소한 것을 챙겨주는 것 등이 내포되어있고, 상냥함도 배려의 특징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우리는 평생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의 조건으로 자상함, 배려심이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배우자를 찾는 것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배려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믿음직스럽고 편안할 뿐만 아니라 용기와 격려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려란 마음으로 생각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진정한마음으로 양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말을 한마디 함에 있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생각하며 말을 하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행하는 행동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요즘은 살기가 힘들고 생활이 각박하다보니 배려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속에서 많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의 옛 선조들은 배려하는 마음을 생활속에 늘 갖추고 살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길을 가던 나그네에게 나뭇잎을 띄워서 물 한잔을 건네주고,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에게는 아무런 댓가없이 사랑방을 비워주던 그 시절엔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이 서려있다.

남을 배려하고 상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으로 오래오래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우를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상대방에게 잘 해주어야 한다. 자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만큼 언젠가는 자신에게 그 메아리가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남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이 아름다운 삶으로 이어져 우리가 다 함께 거듭나서 행복한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행동이 현대사회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것이며 나의 인품을 가누는 기준이 된다.

배려는 이런 점에서 나 자신과 여러분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도움과 배려는 인간 기본의 갖춰야할 덕목이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22/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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