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산토끼 이야기

<김명열칼럼> 산토끼 이야기

달님을 짝사랑한 산토끼 이야기이다.

옛날 옛날 깊은 산속에 아주 잘생긴 산토끼 숫놈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토끼는 자기의 외모에 너무나 자신만만한 나머지 산속에 있는 동물들에게 뽐내면서 자랑을 일삼았다. 이렇듯 제 잘난멋에 으시대며 거만을 떠는 토끼를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주변의 동물들은 토끼를 골려주기로 마음을 먹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토끼에게 “아름다운 달님 아가씨가 잘생긴 산토끼 너와 결혼하고 싶다” 면서, 아름다운 달님 아가씨가 달님이 떠오르는 산등성이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말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토끼는 너

무나 신이 나고 기뻤다. 해가 지고 밤이 올 때까지 토끼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며 어서 속히 밤이 되어 예쁜 달님아가씨를 만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해가지고 달님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달님은 이 토끼가 있는 산등성이가 아닌 저 너머 산등성이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토끼는 자신이 산등성이를 잘못 올라온 줄 알고 건너편 산으로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주어 뛰어갔다. 그러나 그 예쁜 아가씨 달님은 그곳에도 있지 않았다. 또 이번에는 저쪽의 건너 산으로, 또 그다음의 산꼭대기로………이렇게 온힘을 다하여 달님을 쫓아 이 산등성이에서 저 산등성이로 밤새도록 뛰어다니다가 새벽이 오고야 말았다. 비록 달님은 만나지 못했으나 토기는 달님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과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산토끼는 다른 동물들에겐 아직 결혼 날짜만 정해지 않았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계속 뽐냈다. 산토끼는 매일같이 열심히 예쁜 달님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이 산등성이와 저쪽의 산꼭대기를 향해 찾아 헤맸다. 산토끼는 달님

아가씨를 매일 매일 만나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듯 산토끼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끝없이 달님을 바라보다가 눈 속에 달빛이 비치어 놀란 듯한 표정이 되었고, 매일같이 이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다보니 훌륭한 달리기 선수가 되었으며, 또 밤새도록 달님아가씨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빼놓지 않고 좀 더 잘 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쫑긋 기울이던 버릇 때문에 산토끼는 귀가 아주 길게 되어버렸다.

거만하고 잘난 체하던 토끼에게도 사랑이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나보다. 저렇게 토끼의 모습까지 변하게 만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멍애가 되고 덫이 되나보다. 사랑을 위하여서는 목숨까지도 초개같이 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이방초등학교는 다른 시골학교와 별다를 바 없지만, 이곳은 국민동요 ‘산토끼’가 만들어진 곳으로 산토끼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방초등하교 담벼락에는 산토끼들이 뛰어노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어 이곳이 산토끼 노래의 발상지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정문에서 바라본 교정에는 산토끼 노래비(碑), 이일래 선생 흉상, 조선동요 작곡집에 수록된 동요비 등이 세워져 있다. 교내의 산토끼 놀이장에는 실제로 산토끼들이 여러 마리가 뛰어놀고 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8년 가을, 이방초등학교에 재직중이던 이일래선생은 딸아이를 데리고 학교뒷산인 ‘고장산’에 올라갔다가 자기 앞에서 두려움도 없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산토끼들의 모습을 보고, 일제 암흑기에 하루빨리 나라를 되찾아 전국 방방곳곳에서 우리의 어린이들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은 염원으로 산토끼노래를 작사, 작곡하여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된 노래가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지면서, 일제는 산토끼노래가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불순한 노래라 하여 못 부르게 하는 등 탄압이 뒤따랐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광복이 되고 다시 한국전쟁인 6.25사변 등 혼란한 사회 분위기를 겪는 와중에 산토끼노래는 작사, 작곡가 미상으로 어린이들의 음악 교과서에 실려지고,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른 채 불리어 왔다. 그러나 1938년에 발간된 이일래 조선동요 작곡집 한권이 1975년에 발견되어 그 영인본(복사본)을 발간하게 되면서부터 이일래선생의 작품으로 빛을 보게 되었고 1978년 제2회 한국 아동음악상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선생이 작사한 노랫말은,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나, 깡충깡충 뛰어서 너 어디로 가나, 산고개 고개를 나 넘어가서, 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간다’였으나 훗날 부르기 쉽고 어감이 편리한 현재의 노랫말로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것이다. 산토끼와 집토끼는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유전자수가 달라 교배할 수가 없다고 하니, 설령 잡더라도 함께 둘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오랜 옛날에는 이것을 체질이나 성향으로 설명했던 것 같다.

명문가출신의 귀족이었으나 훗날 지리학자가 된 크로폿킨이 쓴 책에서는 산토끼와 집토끼를 함께 두기 힘든 이유로 이들의 성미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 종류의 토끼들이 모두 공동체생활을 즐기기는 하지만 산토끼의 공동생활이 놀이를 위한 곳인데 반해 집토끼의 공동생활은 전적으로 고대 가부장적 가족의 이미지에 기초 해 있어서 어린 토끼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토끼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전 ‘산토끼 토끼야’라는 제하의 글을 본지에 올렸다. 올려진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께서 독후감이나 옛날의 경험담을 이메일로 보내주셨다. 독일에 사시는 어느 80대 어르신은 자기도 시골에서 학교에 다닐때 산토끼사냥을 여러번 했었다고 했고, 대부분의 내용들은 산토끼사냥 얘기로부터 산토끼새끼를 산에서 주어다 기른 얘기, 산토끼를 잡아먹고 그 털로 귀마개를 하면 아무리 추운겨울도 따듯하게 지낼 수 있다는 얘기, 어느 여성 독자는 산토끼 털로 조끼를 해 입어서 겨울을 춥지 않게 보낸 이야기 등등 모두가 많은 추억담과 옛날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어쨌든 산토끼나 집토끼 모두는 우리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해꼬지를 하지 않는 순한 짐승이라고 호감도를 표시했다.

지난달 4월초순부터 중순까지 나는 시카고에 올라가서 개인적인 볼일도 보고 지인이나 친구들도 만나고 왔다. 시카고의 나의 집은 미시간 호숫가 고층 콘도 빌딩이다. 나의집 앞에는 Lakeshore East Park 시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이 9홀의 미니 골프장이었는데, 지금은 수십층의 고층건물 콘도와 사무실을 지어서, 빼꼭히 들어찬 빌딩 사이로 하늘만 빼꼼히 보일뿐이다. 이러한 빌딩의 숲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레익쇼어 공원에는 산토끼들이 여러 마리가 살고 있다. 누가 잡아다 기르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자연산이다. 시카고 시에서는 이 야생 멧토끼(산토끼)들에게 집(우리)을 만들어주고 추운겨울이나 눈, 비가 올때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라고 토끼들을 배려해주고 보호해 주고 있다. 주변의 주민들은 산책을 나왔다가 이 토끼들을 보면 인사를 하고 손짓을 보낸다.

사람들에게 잘 길들여진 이 산토끼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사람과 짐승이 공동체?를 이루며 공존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과거에는 인간들이 목숨의 연명을 위해서 산토끼를 포획하거나 잡아먹었는데, 이제는 이 산토끼(야생토끼)들을 위해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며 보호해주고 육성하여 종족보존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시 직원들은 당근과 신선한 야채들을 산토끼들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이러한 야생 산토끼를 집에서 기르며 애완용으로 삼고 있다니 별난 세상이다. 토끼는 보기만 해도 참으로 귀엽고 친근감을 느낀다. 이렇게 귀엽고 앙징스런 토끼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쫑긋한 귀, 놀란 듯한 눈망울, 오물오물 먹이를 먹는 귀여운 입, 보드라운 털, 토실토실 감촉이 좋은 몸체, 참으로 귀엽고 정이 넘치는 동물이다. 옛날에 어렸을 때 학교에 갔다 와서는 토끼에게 줄 토끼풀(크로바)을 뜯는 것이 그렇게 싫고 지겨웠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라도 토끼를 가가이서 보고 함께 놀았으면 좋겠다. 토끼야 좋아하고 사랑한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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