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여인

<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여인

나는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한다. 세상의 누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본다. 아름다운 여인 중에는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있겠고, 외모보다는 마음이나 인품, 성격 등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옛 속담에 외모(외면)가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살면 3년이 행복하지만, 내면(마음)이 아름다운 여인과 살면 30년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이 평생을 함께 살아갈 배우자를 택한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더 큰 유익함을 주고 행복할 것 같다.
아름다운 여인, 미인의 외모는 그 시대 및 사회의 이상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 우리나라 한국여성의 미인상 역시 이 같은 역사와 문화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되었다. 크게는 서구문화의 유입에 활성화된 20세기를 깃점으로 나눠볼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 한국사회는 미인상의 기준이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의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자식의 양육을 포함한 가사를 담당하는 게 주요 역할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둥근 얼굴, 넓고 반듯한 이마, 길쭉한 눈. 눈 꼬리가 약간 올라간 외꺼플, 숱이 적은 초승달 눈썹, 선이 짧고 둥근
코, 붉은 입술이 미인상의 기준이었다. 반면 지금 현세 21세기의 미인상은 갸름한 얼굴, 쌍꺼플진 눈, 큰 눈, 높은 코 등 기존과 상반되는 기준을 포함하고 있다. 정서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섹시함, 도도함, 능력 있는 성숙함과 같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서구적인 특징들이 더 많이 반영되어있다. 갸름한 바탕 안에 큰 눈과 높은 코가 다 들어가 있고 심지어는 섹시하면서 능력까지 있는 얼굴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준을 갖춘 여인을 현세 사람들은 미인상으로 보고 있다.
이상은 외적인 미의 기준을 설명 드렸고, 옛말에 자고로 여자는 내면이 아름다워야 진짜 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유교사상에 물들어있던 조선시대의 구한말에는 여자의 덕목을 으뜸으로 꼽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았다. 여자의 덕목에는 3가지 씨가 있어야한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 마음씨(인격), 둘째 맵씨(외모), 셋째 솜씨(손 재주), 여기에 덧붙여서 4) 말씨(언변), 5) 글씨(문장력)가 추가되었다. 이 다섯가지의 씨를 조선시대에는 미인이 갖추어야할 조건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유교적인 측면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여자의 4가지 덕목으로는 여유사덕지예(女有四德之譽)라 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1)부덕(婦德)~반드시 재주가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절개가 곧으며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2)부용(婦容)~이는 반드시 얼굴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것이다. 3)부언(婦言)~이는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 못할 말을 가려서 살펴야하는 것이다. 4)부공(婦工)~이는 반드시 손재주가 뛰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고 매사에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음식을 잘 만드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옛날 한국사회에서 한때 유행되던 유행가의 가사내용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그 당시 그 노래가 유행되던 시절에는 그렇게 성형수술이 유행되던 시절도 아니었고, 그때만 하더라도 여자의 덕목은 외모보다는 착하고 고운 마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그 시절,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 여자(처녀)의 이름은 순자였다. 착할 순에 아들 자를 합하여, 착한 아들이 아니라 딸(여자)이었다. 그 여동생(내 친구들의 공동 여동생) 순자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는듯이 언제나 오빠들에게 하는 말이 ‘여자는 예쁘지 않아도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하며, 그렇게 예쁘다고 할 수도 없고 특별히 눈에 띄게 볼품이 있는 것도 아닌 자신을 대변하듯 그 여자의 덕목을 품에 간직하며 희망을 키웠다. 그러한 꿈과 희망 속에 순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마치고 어느 중견기업에 취직을 하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직장동료와 눈이 맞아 연애결혼을 하여 새 가정을 이루었다. 시간과 세월이 흘러가고 그녀(순자)의 딸이 성장하여 성년이 되었을 때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세상에는 수많은 성형외과가 생겼고, 쌍꺼풀이 일반화되었으며 지금의 이 시대에 와서는 몸, 전신의 성형까지 해버리는 탓에 인간들의 원형불변의 법칙은 각종 튜닝기술의 진화로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여자들보다는 몸 구석구석 어디엔가 성형수술의 칼끝이 닿지 않은 여자가 더 많을 정도로, 남녀불문하고 성형이 보편화되었고, 일상화되었다.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은 현대의술의 진화에 감탄하며, 나날이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는 어느 누구나 돈만 있으면 그 어떤 화려하고 예쁜 모습을 갖출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여자의 덕목도 바뀌었다. ‘여자는 무조건 예쁘면 돼, 예쁘면 모든 것이 다 덮여지고 용서가 돼’ 그렇다 시대에 걸맞는 맞는 말이다.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은 지성인의 학식자인 못생긴 여자보다는, 고등학교만 졸업했으나 인물이 반반하고 몸매가 날씬하며 얼굴이 예쁜 여자는 박사학위를 지닌 여자보다 더 모든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선호하고 결혼상대자로 우선시한다. 이제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는 결혼하기도 힘들고 인간취급도 못 받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인즉,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것이 훨씬 더 좋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아름다워졌다. 모두가 똑같은 눈을 갖고, 모두가 똑같은 코를 갖고, 모두가 똑같은 몸매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미인들의 시대가되었다. 이제 지금 세상에는 여자의 덕목이 아름다운 여자가 되었다. 모두가 아름다워진 사회에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니 뭔가가 공허하고 씁쓸하다. 모두가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더욱 더 뽐낸다. 더욱더 아름답고 더욱더 예쁘고 더욱더 섹시해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움을 가릴 수가 없다. 더 이상 보이는 아름다움은 아름답지가 않다. 그렇다면 뭐가 아름다움일까?……..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잊고 산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하나보다. 많은 여자들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외면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늘 보이지가 않는다. 타의에 의존하고 자아를 상실하며 선한 영혼을 잃은 외모 지향적 허울뿐인 외모는 여자의 덕목과는 거리가 먼 허공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한 마음, 내면의 아름다움, 순수한 영혼, 이것들은 이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지금 이 시대, 세상이 많이 변화되고 바뀌었다. 이제는 조선시대처럼 여자는 다소곳이 남자의 말에 따르고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라야 여자의 완전한 덕목을 갖췄다고 말하는 시대는 옛날 옛적에 벌써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사회에서의 역할도 커졌다. 그리고 또 남녀평등을 부르짖고, 한옆에서는 남자의 삼종지도를 외치고 있다. 남자가 따라야할 세가지 도리는, 어려서는 어머니말씀을 잘 듣고, 결혼해서는 아내에게 순종하고, 늙어서는 딸의 말에 잘 따라야 한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된 내면에는 가모장(家母長)사회로 변화된 시대의 변화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고 산업이 한창 부흥할 때는 사회의 중심가치가 가정보다는 일이었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족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자는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만 하던 이분법적 구조도 깨졌다. 사회에서는 양성(兩性)평등이 꾸준히 이뤄져가고 있으며 그로인해 여자들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깨야하는 장애물이 생겼고 집에서는 가정경제를 도맡아 짊어지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전심을 기울여야한다. 한마디로 슈퍼우먼이 돼야한다. 아마도 지금 세상에는 이러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어려운 역경을 극복해내는 슈퍼우먼이 되는 것이 여자의 덕목인 듯싶다. 지금의 가모장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과도한 역할이 부여된 듯싶다. 예전에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아이들만 키우면 됐지만, 이제는 회사에 다니면서 자녀교육도 해야 하고 가정경제도 이끌고 부모님도 부양해야 하는, 말 그대로 슈퍼우먼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는 슈퍼우먼이 돼야만 여자의 덕목을 제대로 갖춘 여자취급을 받을 것 같다. 이것을 보면 이래저래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달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태고적인 옛날에 에덴동산에서 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의 후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노여움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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