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구경, 힐링 여행(7)

가을 구경, 힐링 여행(7)
(지난 호에 이어서….)

편하게 잠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 차 트렁크에 있는 아이스박스를 꺼내어 얼음을 넣고 여행가방을 옮겨 싣고 있는데, 어제의 그 모텔 여주인이 가까이 다가와서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그저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이곳 테네시주의 농촌과 자연휴양림, 주립공원, 도회지 등을 가리지 않고 둘러보며 구경을 할 것’이라고 말을 하니, 근처의 옛날 1800년대 말의 옛날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곳이 있으니 한번 그곳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도움말을 준다. 그녀의 말로는 근처 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해준다. 그녀의 말을 듣고 우리는 그녀가 안내하고 가르쳐준 대로 그곳을 향하여 차를 서서히 운전하며 그곳을 거쳐서 가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약속을 하여 갈 곳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나는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한손에는 커피잔을 들고 한손으로 핸들을 돌리며 구불구불한 시골길, 농촌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가을의 풍경들을 감상하며 옛날의 모습을 찾아 운전을 해갔다.
얼마가지 않아서 옛날의 가옥과 주거지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세히 눈여겨보니 1800년대의 그 모습 그대로 낡고 오래된 모습의 옛날의 형상들이 그곳에 덩그란히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옛 역사보전지구라서 그 옛날의 집들이나 건물들을 함부로 헐거나 증축 및 개축을 할 수 없으며 페인트칠이나 뜯어고칠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함부로 훼손을 하거나 부수면 벌금이나 감옥에 간다고 팻말이 써 있다.
그곳을 둘러보며 느낀 특이한 현상은, 대개 미국의 곳곳 여러 지방들을 여행을 하다보면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많이 게양해 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유독 이곳만은 남부기(Blood-Stained Banner/피에 물든 깃발)가 많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요즘 미국은 Confederate Flag=남부깃발을 금지하느냐 마느냐로 진통을 겪고 있다. Black Lives Matter를 비롯한 흑인좌파세력과 민주당 등에서는 이 깃발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깃발이라고 주장하며 없애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남부의 상징 깃발이 정말로 인종차별의 상징인지 미국의 역사를 되짚어 잠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1861년, 신생 정당 공화당의 대선후보 에이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링컨을 몹시 반대했던 남부의 7개주(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지애나, 텍사스)는 미연방에서 탈퇴할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이 7개주들은 Confederacy(남부연합)을 결성하고 연방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Confederacy는 우리가 남부라고 부르는 집단이고 링컨이 다스리던 북부는 Un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남부연합은 연방에 선전포고를 하고 1861년 4월12일 섬터 요새를 공격했다. 이것이 남북전쟁(American Civill War)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추가로 버지니아, 알칸사스,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의 4개주가 남부연합에 가담했다. 처음에는 남부주의 각주마다 자기들만의 국기를 만들고자했다. 당시 미국의 남부의 각주는 서로가 다른 깃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남북전쟁당시, 그 당시의 북부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성조기와 같은 깃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미국의 남부연합정부는 새로운 국기를 만들기 위해 공모전을 했다. 거기서 채택된 디자인이 Stainless banner(순결한 깃발)이다. 이것을 처음 디자인 한사람은 남부의 언론인 윌리엄 테판 톰슨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붉은색의 줄이 그려진 부분을 온통 흰색으로 칠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백인의 우수함과 순수함을 상징하기 위해” 이 해석이 남부 연합지도자들의 마음에 들었고, 결국 Stainless Banner가 두번째 깃발로 채택이 되었다. 그러나 두번째 국기에 대해 이번에는 현재의 야전사령관들로부터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흰색의 면적이 너무나 넓어서 저 깃발을 가져가면 북군이 자기들, 즉 남부군이 항복하러온 줄로 안다는 것이다. 게다가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던 당시의 사정상 혹시라도 아군이 항복하러간다는 소문이 퍼지면 작전수행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게 되어 있다. 당시 남부군은 조직적인 군대를 가지지 못했고, 각주의 군대가 개별적으로 행동을 하던게 고작이었다. 그러니 항복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순결한 깃발’은 전쟁에서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1865년 남부연합정부는 ‘순결한 깃발’의 한쪽을 붉게 물들인 국기를 도입했다.
이것의 명칭은 Blood-Stained Banner(피에 물든 깃발)이었다. 하지만 피에 물든 깃발이 정말로 피에 물든 일은 없었다. 당시 미국 남부군대는 궤멸상태였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군대라고 부를 수 있는 조직은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북부 버지니아군 뿐이었다. 그러나 리 장군의 군대도 보급이 끊겨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남부 연합의 패배는 이미 결정적이었다.
4년에 걸쳐서 벌어진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연방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노예제도가 폐지되어 해방된 노예에게 시민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남북전쟁은 당초의 예상보다 길게 끌면서 양측의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특히 패배한 남부는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큰 손실을 입었다. 전쟁중이던 1863년 1월1일에 ‘노예해방 선언’이 발표된 이후 이미 많은 노예들이 북부로 도망을 가서 큰 타격을 입었다. 농장에서 일을 하여야할 일손인 흑인 노예들이 대거 이곳을 탈출하여 북부로 도망을 갔으니 인력은 모자라고 할일은 산더미 같은데, 이러다보니 남부의 농장주나 도시들은 자연적으로 커다란 경재적인 손실을 감수해야만했다. 여기에 4년여에 걸친 남북전쟁으로 인하여 땅이 황폐되어 대 농장 중심의 남부지역으로서는 휘청거리는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 노예들의 북부지역으로 탈출에 의해 남부의 농촌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흑인들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낙스빌이나 내쉬빌 등의 대도시지역에서는 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특히 아직도 인종편견이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보이며 겪고 있는 시골의 농촌에서는 흑인들이 많이 이 지역을 탈피해나가서 그런지 흑인들은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러한 인종차별이나 편견이 팽대해있는 그러한 곳에 갑자기 노랑둥이 아시안부부가 나타났으니, 이러한 깡촌의 시골에서는 나 같은 동양인을 이방인 취급하며 동물원의 원숭이나 코끼리를 보듯 어설프고 낯설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듯 싶다. 어제 저녁때 어느 허름한 주유소가 딸린 편의점에 들어 갔을때도 그곳의 늙스구레한 촌노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멀뚱멀뚱히 흰 눈동자를 굴리며 쳐다본 것도 이러한 상황과 일맥상통한 현상이다. 나 역시 내심적으로는 처음에는 불쾌한 감정이 생겨났으나 여기에 얽힌 모든 역사적인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한옆으로는 시골의 순박하고 순수한 농촌의 따듯한 인심을 느낄수가 있어서 위로가 되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주 깊은 시골의 인심이나 인정은 땅이 멀리 떨어져있어도 비슷하고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어쨌건 별다른 얘기로는 1865년 4월14일,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 반대론자인 부드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이로써 그가 주장했던 광대한 남부 재건안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남부에서는 10년 동안 군정이 실시되었다. 그뒤 남부는 사회, 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대규모농장은 소규모로 바뀌게 되었고 북부사람들의 투자로 자본과 기술이 들어오면서 섬유, 제철, 등의 산업 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공업의 생산량이 곧바로 증가하여 미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1877년까지 차례로 연방정부에 복귀하게 된 남부의 백인들은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는 ‘Soild South’를 결성하여 정치적으로 공화당파와 여전히 대립하게 되었다.
이상의 역사적 배경의 이야기는 내가 남부주에 속하는 테네시주를 여행하며 유난히 다른 곳보다 많이 내어 걸린 남부깃발을 보고 느낀 대로 그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여러 독자들께 참고로 설명을 드리며 써 올렸다. 유서 깊은 남부전쟁의 역사적인 소재지 테네시주의 농촌과 작은 마을을 돌아보며 나의 눈, 시야에 들어온 모습들을 적어보았다. 9월에서 10월로 접어드는 가을의 정점에 다다른 시골과 농촌의 자연적인모습은 아직도 나의 머리속에 그대로 잔잔하게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지평선의 대 평원속에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의 모습은 태초의 신비, 그 아름다운 얼굴들을 그대로 노출시켜 마음속에 평안과 안정, 휴식을 선물해주었다. 테네시주와 켄터키주가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늦은 점심을 사 먹었다. 이곳 농촌에서 생산되는 특유의 농산물, 야채와 과일이 섞인 샐러드가 인상적이었고 맛이 있었다. 이곳 목장에서 방목하여 기른 암소 고기도 부드럽고 무척 연하며 입맛을 돋구어주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우선 먹고 나서 다음의 행선지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의 경계선에 있는 Dale Hoilen Lake 주변의 자연휴양림과 녹지지역, 공원, 등을 둘러보고 127번 지방도로를 타고 켄터키주로 올라갔다. 20여마일을 달려 Lake Comberland State Park로 들어섰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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