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 50> 마야(Maya) 여행 <2>

 

<김명열 기행문 50> 마야(Maya) 여행 <2>

유카탄 반도의 마야 고대문명

무덤으로 사용된 이집트 피라미드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훨씬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라미드 안에는 또 다른 미니 피라미드가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볼 수는 없었다. 2007년부터 복구 작업 중이어서 계단을 통해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피라미드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쿠쿨간(깃털달린 뱀)이라는 마야의 신이 나타난다고 한다. 태양빛에 의해 만들어진 길쭉한 모양의 모서리 그림자가 피라미드 한쪽 끝부분에 있는 뱀머리 모양의 조각에 연결되어 마치 뱀의 머리와 몸통이 연결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는 것, 이 모습이 마치 쿠쿨칸 같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이 시기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했다. 소리의 신비로움도 경험할 수 있다. 피라미드 정면을 바라보면서 서서 손뼉을 쎄게 치면 그 소리가 피라미드에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손뼉소리는 새 소리 비슷하게 변형되어 들린다. 그러기 때문에 주위에 널려 서서 피라미드 주변에서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설명과 인도에 따라 손뼉을 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 역시 손뼉을 쳐서 그 소리의 파장이 피라미드에 부딪쳤다가 되돌아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새 소리처럼 들린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 되돌아온 소리가 새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체첸이트자에는 중앙아메리카 최대 규모(길이 165m, 폭 67m, 높이 8.5m)의 펠로라 경기장이 있다. 그리고 피라미드 동쪽에는 천개의 기둥에 둘러싸여있다는 전사(戰士)의 신전이 있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던 장소다. 그 외에 피라미드 남쪽으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마야의 첨성대인 카라콜을 구경할 수 있다. 고대 마야인들의 태양과 달, 금성 등을 관측했던 둥근 돔모양의 천문관측대이다. 10세기 말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전체의 높이가 22.5m로 경주의 첨성대보다 큰 규모이다. 멕시코는 피라미드의 나라이다. 독자들께서 생각하기를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상징인데, 그럴리가?)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할 줄로 안다. 그러나 피라미드에 있어서만큼은 멕시코를 따라갈 나라가 이지구상에는 없다. 멕시코에는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무려 10만개 이상이나 세워졌다. 숫자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다. 기본은 정사면체이나 건물의 외관은 각양각색이다. 이토록 많은 숫자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멕시코의 그것은 신전(당집)으로서의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을 구성원 모두가 대를 이어가며 이 신전에 의지하면서 살았기에 마야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의 역사는 신전과 함께 한다.

멕시코 중부에는 아즈텍 문명이 있다. 마야인들 처럼 고대의 아즈테칸들 역시 하늘 가까이에 다가서기 위해 신전이나 탑을 높이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술적인 행위를 거행했고 때로는 사람을 산채로 바치는 제사도 지냈다. 사람을 바치는 행위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뭔가 불길한징조가 나타나면 그 해답을 신에게 구하기 위하여 사신을 보내야했다. 정결하고 건장한 남자를 선택했다. 그래야 신도 그 사신을 믿고 해결방도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모두가 스스로 제물로 바쳐지기를 간청했다.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은 신에게로 다가가는 지름길에 들어섰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마야인들도 비슷한 내용의 의식을 행했다. 그리고 때마다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들이 줄지어 신전 앞에 늘어서곤 했다.

아즈텍이나 마야나 다같이 태양신을 숭배하던 민족이었다. 고대의 다른 민족들도 태양신을 숭배했다. 그런데 마야나 아즈텍에서 보여지는 숭배방식은 다른 지역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여준다. 태양신을 맞이하는 방식이 보다 더 주동적이다.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직접 찾아가 사정을 호소한다. 그러한 방식이 그 옛날 우리민족처럼 초원을 누비고 다녔던 기마민족과 많이 닮았다. 지금도 우리민족은 신을 맞이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산에는 신당이 모셔져있고 그 신당 앞에서 굿이나 제사의식을 치루고 나면 신이 내려온다. 산은 곧 신을 모셔오기 위한 정거장인 셈이다. 조물주인 절대적 존재는 하늘에 머물고 있지만 인간과 조우하기 위해서 일부러 산에까지 내려오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마야나 아즈텍의 피라미드는 바로 이 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아즈텍이나 마야에는 산이 없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는 대 평원지대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인공적으로 피라미드를 만들어 산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신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서 대면할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멕시코의 곳곳에는 이러한 신과 더 가까이서 만나기 위해 수많은 피라미드가 건축되었다. 옛날 스페인 정복자들이 선발대를 이끌고 체첸잍자(Chichen Itza)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야는 멸망해있었고 도시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주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인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누구도 그곳에 사는 주민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발견할 수 없게 되자 경계심을 풀고 그곳에 진을 치고 요새를 만들어 혹시나 모를 원주민들의 습격에 대비했다.

1531년의 일이었다. 지휘자는 군인들에게 그곳의 땅을 분할해 주었다. 비록 밀림지대였지만 자기의 땅을 소유한 군인들은 지휘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원주민의 습격으로 군대의 절반이상이 희생되었고 몇 번의 처절한 전투 끝에 그들은 대패하여 도망을 치고 말았다. 마야시대 최고의 성지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변했던 것이다. 유카탄의 마야인들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이 무례한 스페인의 침입자 정복자들은 마야인들의 생활터전을 짓밟았고 땅을 빼앗았으며 사람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먹고 부녀자를 겁

탈했으며 노약자나 어린이들까지 총칼로 유린했다. 참다못해 반기를 들고 일어난 마야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정복자를 도처에서 살륙했다. 마야인들은 가장 거칠고 잔인한 방법으로 이 침략자들에게 맞서나갔다. 1535년, 거센 항쟁의 불길에 당황하고 놀란 스페인 정복자들은 급기야 마야의 땅 유카탄반도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정복자가 떠나간 유카탄에는 한동안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잠시, 이들의 정복자들은 총칼보다도 더 무서운 세균들을 뿌려놓고 떠났던 것이다. 각종 전염병에 노출된 마야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인구의 절반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드디어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대규모 원정대를 이끌고 온 이 침략자들은 유카탄일대의 마야 마을을 차례로 쑥대밭을 만들어버렸다. 일제강점기 북간도에서 일본놈들이 우리 동포들에게 저질렀던 만행과 똑같은 천인공노할 살육 작전을 서슴없이 저질러댔다. 모조리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태우고 전부 때려 부수는 야수본능의 토벌작전 끝에, 1588년 드디어 유카탄을 그들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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