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봄비에 돋아나는 새싹 같은 희망

<김명열칼럼> 봄비에 돋아나는 새싹 같은 희망

봄은 겨울을 지난 후에 오는 계절이다. 겨울은 춥고 잿빛하늘에 모든 초목들은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보이고 있어서 그런지 시련과 아픔의시기로 시나 문학에서 자주 형상화되는 것 같다. 그런 겨울이 끝나고 봄을 알리는 봄비가 내렸다. 봄비는 촉촉이 만물을 적시고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반갑고 좋은 비는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봄의 시작을 알고 내린다. 마치 시련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따듯한 온기(溫氣)같다. 그 비는 오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온다. 바람 따라 몰래, 밤에 소리 없이 대지를 촉촉이 적신다. 그 비가 온 후 어스름한 새벽에 붉은 꽃이 핀다. 얼마 전, 봄비가 촉촉이 메마른대지를 적셔주는 고요한 밤,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쓰다 보니 옛날 중국의 당나라시대의 시인 두보(杜甫)의 춘야희우(春夜喜雨)가 생각난다. 춘야희우는 봄날의 자기연민을 봄비에 촉촉하게 적시면서 지은 작품이다. 이 시는 전화(戰禍)를 피해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떠돌다가 50세 무렵 친구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사천성의 청두에 완화초당을 짓고 전원생활을 할 때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로서, 흔히 희망이생동하는 봄날 밤비가 내리는 정경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시 평이고, 그 내면의 담긴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만물을 생육하는 봄비에 적셔 위로받고자했다. 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희우(喜雨)는 단순히 기쁜 비가 아니라 슬프고 서러워서 팍팍해진 자신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좋은 비(好雨)로 해석해야한다.

춘야희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문의 내용은 생략하고 한글의 내용으로 설명을 드리겠다. 좋은 비는 시절을 맞아, 봄을 맞아 내리네, 바람 따라 밤에 잠입하여, 만물을 세세하게 적시면서도 소리가 없네, 들에는 비탈길과 구름이 함께 어두운데, 강에는 배에서 밝힌 불 홀로 환하네, 동틀녘 붉게 젖은 곳 바라보니, 꽃들이 금관성에 만발하였네. 겨울이가면 봄이 오고, 대기중의 습기가 많아지면 비가 오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불우한 처지의 자신을 연민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 마련이다. 세상에서 성공한사람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이 두보의 시에 푹 젖어 드는 것 또한 감정이입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쁘고 슬픈 건 계절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세상에는 봄이 와서 꽃들이 만발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가슴속엔 봄이 오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봄비가 소리 없이 내렸으면 좋겠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712~770)가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보고 그 작품을 노래했다. 이 시가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두보의 시이기 때문이다. 두보는 생애의 대부분을 객지를 떠돌며 살았는데, 평생 배고픔 속에서 병마와 씨름하며 시를 지었다. 가장이 집을 비운사이 사랑하는 아들은 굶어죽었다. 중국의 문학사에는 시로 이름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두보의 시가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공감을 얻는 것은, 그의 시 속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힘없는 민초들의 직접적인 아픔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순간에는 그 누구와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시기,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그 어떤 소중한 이가 곁에 있어도 불행하고 힘든 순간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자신이 느끼는 시련과 역경이 상대방까지 힘들고 불행스럽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알코올중독자가 있었다. 술과 노름 등 방탕한생활로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 그에게는,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버린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두 아들은 이와 같이 형편없이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자랐다. 가출한 어머니, 술주정뱅이 아버지, 그야말로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20년 후 두 형제의 인생은 완전히 갈리고 말았다. 한 아들은 의과대학의 저명한 교수가 되어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며 금주운동을 펼쳤고, 다른 한 아들은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폐인이 되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그들은 자신의 현실에 대해 동일한 대답을 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이라고………한 아들은 비극적인 환경을 교훈삼아 나는 결코 그런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단으로 희망의 삶을 개척했지만, 다른 한 아들은 자신의 여건에 대한 불평, 불만 속에 환경 탓만 하다가 자포자기로 인생을 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고통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도약의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망의 늪에 빠져버리는 사람도 있다. 환경과 여건에 노예가 되는 삶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최선의 노력을 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고통과 시련, 불행, 역경, 실패와 좌절 등등의 장애요소는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언제나 그림자처럼 쫓아다닌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그 고통과 시련, 실패나 좌절, 역경을 불행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한 우리의 태도를 언제나 긍정적이고 도전적이며 노력을 다해 최선을 향하는 그러한 태도의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겠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의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 불행을 뒤집으면 행복이 될 수 있고, 행복을 뒤집으면 불행이 될 수 있다. 지금의 현실, 어렵고 힘들고 고난속의 불행한 생활을 손바닥 뒤집듯이 확 뒤집어서 행복으로 만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드린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071/0517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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