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봄이 오는 길목에서

<김명열칼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칼럼니스트/ 탬파거주

엊그제 3월 5일, 경칩의 문턱을 넘으니 한낮의 햇살이 포근하다. 춘삼월의 경계가 이렇게 살뜰하게 겨울과 봄을 갈라놓은 것인지 몸이 먼저 느끼고 나른함에 졸음마저 온다. 얼었던 땅이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어 싱그러운 땅 내음이 스치고, 남쪽에서는 따듯한 온기와 바람을 타고 꽃소식이 북상하고 있다. 3월이 되니 햇볕도, 새싹도, 봄이 왔다고 알려주지만, 아무래도 봄이라 하면 개나리와 진달래 이 두 자매가 모습을 비춰야 아~ 드디어 봄이 왔구나! 싶다.

옛날 나의 고향의 모습인 노란 개나리담장과 뒷동산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 진달래가 생각난다. 개나리와 진달래, 이 봄꽃 자매 중에 누가먼저 피어날까?. 궁금증이 생겨난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개화시점을 비교해보면 대개 개나리꽃이 한발 먼저 피어난다.

나의 고향을 예를 들자면 개나리꽃은 평균 3월 26일경에 피어나고 진달래는 그보다 며칠 늦은 3월 29일경에 꽃봉오리를 터뜨린다. 이제 막 봄의 문을 여는 3월이 기지개를 켜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눈보라 찬바람 속에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땅은 젖어서 물기를 잔뜩 품어낸다. 이렇게 봄은 젖어서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나 보다. 젖음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움직임이라함은 생명의 느낌을 말한다. 얼었던 땅이 녹아나면서 물기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물기는 땅속으로부터 공기와 만나기 위해 땅위로 올라온다. 그러한 징후는 식물들의 태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곧 틔움이다. 닫혔던 생명을 열어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색채로 우리 눈에 보인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생명의 농도를 높여간다. 그리고 다시 노랑, 빨강,

분홍, 하양, 보라, 파랑 등의 현란한 색채와 그에 맞는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한다. 이게 바로 그 아름다운모습의 꽃이다.

봄의 시작이다. 바라봄이 많아지는 때이다. 작가들은 이렇듯 생명의 기적을 아름다움으로 찬미한다. 사진으로, 그림으로, 시로, 문학으로, 음악으로 등등 각 분야에서 창작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엮어내는 작가들은 단순해 보이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생명의 심오한 법칙과 마주하려고 한다. 나 역시 펜 끝에서 머리와 가슴속에 담겨있는 봄을 창작하여 꽃가마를 타고 아지랑이 속을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다.

이제 막 꽃피는 춘삼월의 시작을 알리는 3월달로 접어들었으나, 꺾이지 않는 심술고약한 시누이처럼 변덕을 부리는 요즘, 아직도 떠나지 못한 겨울의 잔재가 남아 따사로운 기운을 시샘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이렇게 만만치는 않다. 무엇이던지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결실은 절대로 없다. 이러한 겨울의 잔재나 추위가 싫어서, 봄이 왔는데도 잎을 틔우거나 싹을 내지 않는 나무는 꽃을 피울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아울러 사지를 움직여 노력하는 사람은 입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롭지만, 사지가 멀쩡한데도 움직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궁핍한 생활에서 헤어나기 힘들고, 내일이란 희망의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즉 현실을 두려워하는 자는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잘못된 세상을 탓하기 전에 새로운 미래의 앞날을 개척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황폐화된 현실을 갈고 씨를 뿌려 열매의 결실을 일구는 일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21세기의 신 선구자일 것이다. 잘못되면 남의 탓이요, 잘되면 내 탓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누구를 탓하지 말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면 예약된 내일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봄이 오면 이 땅에도 새싹이 트고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나갈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현실에 안착하지 말고 봄을 맞이하러 앞으로 달려 나가자. 더 무성한 여름으로, 더 풍성한 수확으로, 더 따듯한 겨울을 위해서,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해나가자.

얼마 전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과, 얼었던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우수,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을 엊그제 지나면서 이제 계절은 봄을 향해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디지털적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아침으로는 늦겨울의 쌀쌀한 날씨였다가 한낮의 따듯한 햇볕 속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지기도 한다. 따듯한 남쪽지방인 플로리다나 루이지애나, 캘리포니아들의 선벨트지방을 제외한 시카고를 비롯한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 등 북쪽의 추운지역은 한동안 겨울과 봄이 밀고 당기는 듯 공존하면서 서서히 봄으로 향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계절은 결코 거꾸로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추운 겨울 중에도 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같이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희망의 봄을 볼 수 있는 긍정적 자세를 배울 수 있게 한 자연의 배려가 참으로 감사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고 있다. 고뇌와 허무, 고통으로 얼룩지고 시달리고 있는 이 땅에도 봄은 소리 없이 찾아오고 있다.

영국의 19세기 낭만파 시인이었던 셀리(P.B Shelly)는 “서풍의 노래”에서 ‘만일 겨울이온다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라고 했다. 애국시인 이상화는 일제에 항거하면서 독립을 염원하는 의미에서‘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좌절과 실의에서도 소망과 독립에 목말라 애타게 절규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목말라 애타게 그리워하고 기다렸던 봄이 이제 막 그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봄을 맞을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다면 그 어떤 봄이 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한 내 일상과 마음의 따듯한 나만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자. myongyul@gmail.com <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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