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추락한 대통령과 착륙한 예수님

<목회자칼럼> 추락한 대통령과 착륙한 예수님
[2016-12-21, 05:55:36]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All That Falls Has Wings). 소설의 제목이 절묘합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상황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의 추락은 권력의 날개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재벌의 추락은 재력의 날개가 있었기에 가능하듯이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두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첫 번째 탄핵은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했던 반면 두 번째 탄핵은 국민의 대다수가 열망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국민이 달아준 권력과 권위의 날개를 달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날개가 꺾어져 버린 채 추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국민 마음속에 대통령은 이미 저 멀리 추락한 존재입니다. 행여 탄핵이 기각된들 이미 날개가 꺾여버린 채 벌거숭이가 된 대통령은 더는 권위와 존경을 얻지 못합니다. 추락하여 사라짐만 못한 존재 아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제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흔히 임기 말이 되면 레임덕으로 전전긍긍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다릅니다. 임기 말 지지율이 56%까지 오르면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30년 만에 레임덕 없이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날개로 멋지게 착륙하는 모습입니다. 날개가 있다고 다 추락하는 것은 아니가 봅니다. 이렇게 멋있게 박수 받으며 착륙할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 번째로 탄핵은 자랑스러운 평화혁명의 착륙입니다. 결코, 종북좌파나 빨갱이들에 의한 국가전복 혹은 사탄의 역사도 아닙니다. 더는 이런 색깔론이나 일부 비양심적인 목회자들의 비신학적 사탄론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시카고대 석좌교수 브루스 커밍스는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를 보면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 불복종 신념이 연상된다고 했습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인권을 위한 평화적 시민 불복종의 혁명이 미국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폭력으로 폭발되는 것이 아닌 비폭력 안에 자율적으로 절제된 힘의 강력함은 대적 불가입니다 평화의 힘은 품위와 품격의 날갯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당성과 설득력의 힘은 배가되어 비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은 프랑스의 대혁명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구체제(구체제)의 모순과 폭거에 대항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호 아래 시작되었습니다. 곧 중세 봉건주의 신분제와 절대왕정의 종말을 고하고 근대 시민민주주의 도래를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을 생각하면 단두대가 떠오릅니다. 혁명의 단두대에서 루이 16세의 목이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광화문 광장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의 상징은 촛불입니다. 촛불은 누구를 해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을 태워 타인을 밝혀줍니다. 촛불은 가장 약한 것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 약함에서 나오는 빛의 강력함은 어둠에 있던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촛불 혁명을 가르쳐 명예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이 불가피하게 폭력적이었다면 이번 평화시위는 명예혁명의 새로운 전통으로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합니다. 분노가 추락하지 않고 비폭력과 평화로 멋지게 착륙한 것입니다.
둘째로, 촛불 혁명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구체제와 왜곡된 보수주의가 추락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주었던 분들의 심리는 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로망이었습니다. 또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과 10.26 궁정동 안가 암살 사건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가정사를 겪은 영애(令愛)에 대한 측은지심이었습니다. 그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51.6%)로 당선되었고, TK(대구·경북)에서는 80% 지지율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박정희 후광효과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어떤 사설에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박정희 후광 효과의 실체는 독재는 했지만, 경제성장 성과는 좋았다는 점이다. 지금 박근혜는 ‘경제성장 성과는 없는데 독재적 통치’를 하는 정권에 불과하다.” 자기들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기들만의 권력독재라는 왜곡된 보수의 기형적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번 탄핵에서 보수당에 의해 보수 대통령이 단죄되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혁명이 구체제와 절대왕권 그리고 중세봉건 신분제의 단절을 끌어냈듯이 이번 대통령 탄핵사건은 대한민국에 뿌리 깊이 박혀있던 구체제와 구정치 그리고 정경유착의 비리가 추락하고 단절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지켜봅니다.
언젠가 영화 ‘히말라야’에 주인공 엄홍길 대장이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산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고 산이 허락해야만 오를 수 있다.” 산을 정복한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 교만이 추락하게 합니다. 설령 정상을 정복했단 한들 내려오질 못합니다. 정복했기에 자기 것이라고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얼어 죽던지, 끌려 내려오던지, 추락하든지 하는 것입니다. 곧 ‘부패’ ‘하야’ ‘탄핵’입니다.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잘 내려오는 것입니다. 떨어지면 추락이고 스스로 잘 내려오면 착륙입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핵심은 ‘내려오심’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 정상에서 마구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추락이 아닙니다. 겸손한 착륙입니다. 스스로 기쁘게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 잘 내려오셨기에 하늘에는 영광이고 땅에는 평화였습니다. 오늘 날개를 가지고 추락한 것들로 아파하는 대한민국에 성탄의 은혜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추락하는 것과 착륙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비참하게 끝나는 것과 멋지게 다시 날아오르는 갈림길입니다.

김호진 목사(올랜도연합감리교회)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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