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술과 친구

<김명열칼럼> 술과 친구
[2016-11-15, 11:24:17]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말이 떠올라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옛날 이렇게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단풍이 곱게 물든 산에 올라 나무 그늘에 앉아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건네고 이마에 흥건히 솟아난 땀방울을 술로서 씻어내며 가을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은 추억이 생각난다.
지금은 술을 멀리하지만, 내 옛날의 젊은 시절에는 두주불사(斗酒不辭)라고 할 만큼 술을 좋아했고, 술이 있는 자리에는 반드시 친구가 함께 했었다. 술은 빚는 사람의 정성과 재료들이 함께 담겨진 후 오랫동안 숙성되어 깊은 맛을 내듯, 친구는 사귀어온 시간과 세월이 흘러간 만큼 서로 같이 나눠온 마음이 통하여 맺어진 매듭을 격의 없이 술술 풀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좋은 친구일 것이다.
아무리 잘 숙성된 술도 혼자마시는 것보다 뜻을 같이한 친구와 함께 나눈다면 그 맛이 배가되어 우정도 함께 불어날 것이다. 술이 있으니 서로가 벽이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술로 인하여 더욱 가까워질 수가 있나보다. 술이란 처음 대면하는 사람도 가깝게 해주는 마력이 있는가보다. 뜻이 통하면 마음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면 술이 통한다.
옛날 중국의 당나라시대에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가 당나라의 수도 낙양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천재 시인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한 남,여처럼 단번에 한눈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다.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자 둘 사이는 너무나 상통하는 면이 많고 마음조차 잘 맞다보니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몇 십 년을 만나고 서로 간에 얼굴을 대하고 살더라도 남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세상에는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백년을 함께하며 사귄 듯이 친근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우리들이 생각해보기에는 호방한 기백의 낭만파 시인 이백과 고지식한 서민형 스타일의 시인 두보, 두 사람은 어찌 보면 닮은 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詩)를 통하여 하나가 될 수 있었고, 인생과 문학을 얘기하며 밤새 술판을 벌렸다. 서로가 마음과 사고가 통하는 사이가 되고 보니 그들에겐 천 잔의 술도 부족했을 것이다.
옛날의 풍습을 보면 중국이나 우리나라 모두가 친한 벗을 만나면 으례히 술잔을 마주하고 밀렸던 회포를 풀고 친구간의 뜨거운 정을 확인하며 새로운 우정의 지속을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도 했다. 중국의 옛말에 이러한 말이 있다.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 화불투기반구다(話不投기半句多). 이 뜻을 풀이해보면 술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마시면 천 잔도 부족하고, 말(언어)은 마음이 맞지 않으면 반마디도 많은 법이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맞고 서로 상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의 경험으로도 젊었을 때의 의기투합하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는 매일매일 만나고 싶고, 만나서는 서로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정담을 나누며 대포 집에 앉아 노란 양은주전자에 가득 담겨진 막걸리를 통금 사이렌이 울리는 자정시간까지 퍼마시며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근처의 여관으로 옮겨가 밤새도록 인생을 논하고 문학을 읊으며 친구간의 우정의 바다에서 함께 노를 젓기도 했다.
주봉지기천배소(酒逢知己千杯少), 인생득기사무감(人生得己死无憾). 술은 마음 맞는 사람과 마시면 천 잔도 부족하고 살면서 또 다른 나를 찾는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 앞서 서술한내용의 글과 비교할 때 첫구절은 둘 다 같지만 나중의 뒷구절은 다르다. 전반에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고, 후반의 구절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다. 글 내용이야 그것이 어찌됐건 마음이 통하는 사람(친구)을 만나면 밤새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이며, 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아마도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소중하게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은 많지만 지기(知己), 지우(知友), 즉 나와 마음이 맞고 서로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명심보감의 교우편(交友篇)에 보면 세상에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그 몇이오? 라는 말이 있다. 서로 인사하고 같이 식사하고 차를 마신다고 하여 다 통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울러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알아주고 이해하여 주는 친구, 나와 잘 상통하는 친구도 적거니와 나와 같은 사람, 즉 또 다른 나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 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런 친구 정도는 돼야만 ‘또 다른 自我’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친구는 동성일 수도 있고 이성일수도 있으며 이러한 친구를 찾는다면 세상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속담이나 벗(친구)에 대해서 쓴 글을 보면 우리가 마음과 가슴속에 새길 말들이 너무나 많다. 인디언속담에는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했고, “십팔사략” 중에는 ‘가난하고 천할 때(힘들 때) 사귄 친구는 잊지 말며, 어려울 때 고락을 함께한 아내는 내쫓아서는 안 된다’ 라고 쓰여 있다.
친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절친을 떠올리면 그 어떤 일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술자리에 있어서도 친구는 단순히 같이 마시는 사람, 그 이상의 존재이다. 안주와 술이 소박해도 자리를 빛내주며 격식이 없어서 더 편한 자리가 되고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며 비싸고 화려한 안주보다 더 맛깔 나는 대화를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한 친구가 진정한 참된 친구이다. <1046>

문필가(탬파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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