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의 만남과 인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우리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스쳐 지나가기도한다. 마주치는 눈길 속에 만남의조우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연이 창조되며 우연의 연속 속에 좋은 인연의 결실이 맺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기도하고 어느 사람은 이성간의 인연으로 사랑하는 연인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인연의결과가 잘못되면 만나지 만도 못한 악연도 생겨나는데, 세상사 모든 만남의 결과와 미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지는 환경과 운명에 순응하는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길을 가다보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지나온 길만 알뿐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반대편 길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나의 삶에 대한 경험만을 알뿐이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소중한 만남과 인연을 통해 나는 너로 확대되고 또 다른 너를 만나게 됨으로써 그 존재의 크기가 사회로 확장된다.
내가 걸어온 길과 당신이 걸어온 길이 서로 만남으로서 길이 뚫리고 연결되듯,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알게 되고 공생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를 흔히 인연의 종교라고 한다. 인연을 빼고서는 불교를 논할 수가 없다. 옷소매가 스쳐도 지나간 전생(前生)과 지금 살고 있는 금생(今生)과 앞으로 다가올 내생(來生)의 삼세(三世)의 인연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흔히들 부모자식사이는 전생에서 빚쟁이들이 만난다고 한다. 형제자매는 전생에서 경쟁자들이 서로 만나고, 부부사이는 전생에서 원수들이 만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들의 인연이란 모두 원한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새로운 인연은 새로운 원한을 만들어가는 윤
회의쇠사슬에 묶이고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돌고 도는 것이다. 이렇게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설에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불교에서 인연이란 인과응보의 원칙에 연기(緣起)된다고 말한다. 인연이란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켜있는 그 무엇일까?….사람의인연이란 정말로 오묘한 이치로 성립이 된 것인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우연이라는 단어가 맺어주는 필연의 연속인지 아니면 정말로 천억분의 1의 확률로 얻어진 천금 같은 기회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정확한 대답을 내놓을 사람이 없는듯하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한 인간의 삶은 그가 태어나 만난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 그 자체일수 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정한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 친구, 지인, 하물며 애완동물이나 물건, 장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들의 인생은 인연(因緣)이다. 모든 인간들은 깊은 인연의 사슬 속에 얽혀서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의 인생은 너와 나의만남이다. 당신하고 나하고 세상에서 서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인연이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연분(緣分)이다. 우리는 서로 우연히 만나 좋아지고 사랑을 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한평생 화복(禍福)과 고락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살아간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나는 하필 당신을 아내로 선택했고, 당신은 왜 나를 남편으로 선택을 했는가?……무슨 힘 때문일까? 어떤 연고에서일까? 아마도 이것은 전생의 깊은 인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큰 뜻이기도 한 것 같다.
만약 그렇지도 않다면 한낱 우연의 소산일까?……….
헤아릴 수 없이 허구 많은 사람들 중에서 서로 선택하고 선택되어 사랑하는 부부가 되고 혈육을 나눈 부모 자식이 되며, 정다운 동기지간도 되고, 막역한 친구가 되고, 경애하는 사제 간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동업자도 되고, 가까운 이웃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깊은 인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인연은 불교의 기본원리의 하나다. 그래서 일체법(一切法), 인연생(因緣生)이라고 한다. 모든 존재가 인연에서 생겨난다. 세상만물은 인연생기(因緣生起)다. 인연은 인과 연이 합한 말이다. 여기서 알고 싶은 것은 인은 무엇이고, 연은 무엇일까? 이것은 어떤 물건이 생길 때 크고 강한 힘과 영향을 주는 것이 인이고, 적고 약한 힘과 영향을 주는 것이 연이다.
가령 예를 들자면 쌀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다. 벼의 씨앗은 인이다. 그러나 벼의 씨앗만으로는 쌀이 될 수 없다. 태양의 열과 비와 공기와 농부의 노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연이다. 어떤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 원인이 인이고, 간접적 원인이 연이다.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인연화합으로 생긴다. 그래서 불교는 연기설(緣起說)을 말하고 12인연을 주장한다. 일체존재는 인연의 산물이다. 불교에서는 전생에서 5백번 만났던 깊은 인연이 있어야만 금생에서 잠깐 길가에서 얼굴한번보고 옷자락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이라고 한다.
버스나 기차 안에서 우연히 내 옆에 앉은 이름 모를 타인을 전혀 무관하고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말자. 전생에서 수천 번 만났던 깊은 인연의 친구를 여기서 또 만나게 되었구나하고 정답게 생각하자. 인연의 철학은 참으로 깊고도 오묘하다. 이 말뜻은 인간관계를 심오한 불교의 종교적 차원에서 보자는 얘기다. 남을 경계하고 멸시하는 차가운 시선이 오고가는 만남, 불신과 불화의 적대감을 갖고 만나는 인생은 어두운 터널 속의 불행한생활의 연속을 조장하고 사회를 메마른 사막으로 만든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다. 날마다 직장이나 거리에서만나는 사람을 너그러운 이해와 따듯한 관심을 갖고 대하려면 깊은 인연의 철학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는 악인연(惡因緣)이 얼마나 많은가.
서로 미워하기 위해 만나고, 서로 싸우기 위해 만나며, 서로 괴롭히기 위해 만난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악인연이다. 서로 저주하는 부부, 서로 증오하는 고부(姑婦), 서로 원수처럼 다투는 이웃,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남녀관계, 우리의 인생에는 왜 이러한 악연이 많을까? 역사에도 악연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소련과 우크라이나, 터키와 그리스, 한국과 일본은 그러한 경우다. 우리는 악인연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보자. 만남도 인연이고 헤어짐도 인연이다. 사랑하는 것도 인연이고 미워하는 것도 인연이다. 주는 것도 인연이고 받는 것도 인연이다.
우리는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인연의 힘에 의하여 수수거래(授受去來),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인연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고 인연은 우리의 존재를 좌우한다. 그리고 인연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 당신의 주어진 인연을 사랑하라. 우리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을 깊은 인연의존재로 생각하고 따듯하게, 그리고 소중하고 너그럽게 대하도록 노력하자. 이것이 인연철학의 결론이다. myongyul@gmail.com  <1003 / 1209201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