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순결한 사랑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사람이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나이가 차서 죽을 때까지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고뇌하는 부분이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성경말씀에도 믿음, 소망, 사랑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써 있는데, 왜 많고 많은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 기쁨.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제쳐놓고 예수님께서는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 제일 중요합니다. 행복이 제일 중요합니다. 건강이 가장 소중 합니다라고 안하시고 왜 유독 사랑이 제일중요하다고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정의를 뚜렷하게 내리지 못한다. 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정신의학자인 스칸 팩이 1978년에 출간한 “아직도 가야할 길/Road less traveled”에서 그는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규정했다. 여기에 덧붙여 나의 생각을 가미하자면 애정은 사랑을 이루는 한 요소로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애정 외에도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신뢰와 헌신, 솔직하고 개방된 마음적인 교제와 대화, 등등을 모두 갖추어야한다고 생각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시성인포일위천하식(是聖人抱一爲天下式)이라고 쓰여 있다. 이 뜻은 덕과 지혜가 뛰어난 사람은 하나를 품어 천하의 모범을 삼느니라. 이 세상만물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하나에서 여럿으로 분리되고 나눠진 과정을 일일이 다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알고 있다. 즉 그것은 다시 하나가 되려고 끊임없이 힘을 써야 된다는 것을…….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 근본의 뜻과 목적은 그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공자말씀이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한 것도 알고 보면 하나로써 모든 것을 뚫는다는 뜻으로 같은 꿈의 뜻과 같은 맥락으로도 풀이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이 무슨 말로 표현을 하건 사랑이라는 사실을 의심할여지가 없다. 요즘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나 살벌하고 시끄럽다. 이것은 믿음이 없이 모래알처럼 제각각 하나가 되려고 힘쓰지 않기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짜증나고 마음에 드는 것은 별로 없고 모두가 잘 낫고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있기에 그런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직장이나 회사, 사회단체, 교회, 어디를 가나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한 사람들 천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유독 이 사람들뿐 아니라 상대방의 사람도 나를 보는 눈이 같은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다보니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고 표정들이 하나같이 우울해 보인다. 이들의 얼굴에는 기쁨이란 찾아보기가 힘들다. 영양학상의 영양실조는 아니지만 사랑에 굶주려서 사랑이 고갈된 영양실조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나누며 전하는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야한다. 당신과 내가 아가페적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거기에는 무한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생겨난다.
세상을 살다보면 애정을 표시하는데 인색한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 자기를 좋아하는지를 측정하고 평가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른바 사랑의 곡예에 임한다. 삶 자체가 모험인중에도 사랑이야말로 모험중의 모험이다. 아들, 딸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 그만한 크기의 사랑을 나누어주려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장삿속으로 사랑을 흥정하고, 저울눈을 속이듯 서로 간에 이득을 노리는 그러한 남녀사이에서 진정한사랑은 생성될 수가 없다.
나의 중학교시절 같은 반에는 공부를 썩 잘하는 수재학생 한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다른 것은 하나도 탓하거나 잘못된 것이 없는데 눈 한쪽이 태어날 때부터 실명되어 잘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이나 학교의 다른 아이들은 이 아이를 보고 애꾸눈, 애꾸눈이라고 놀려댔다. 그로 인해서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놀림이나 왕따, 시기를 견디지 못해 공부를 게을리 하고 학교도 안 나가게 되었다. 이것을 본 그 학생의 부모마음은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부모는 그 한쪽 눈이 실명된 아들을 데리고 거기서 몇십리 떨어진 도립병원의 안과를 찾아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안과 의사를 붙들고 내 한쪽 눈을 뽑아서 내 아들 눈에 바꿔 넣어 달라고 울며불며 통사정을 했다. 그 부모는 한쪽 눈이 안보여서 애꾸눈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아들을 보면서 몇년을 잠도 편히 못자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 속에 세상을 보냈다고 한다.
“내 눈을 빼어서 내 아들에게 주었으면……”하는 이런 마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한다. 지금의 세상은 진실 된 사랑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세상이 된 것 같다. 사랑이 사랑이아니라 욕심인 경우도 참으로 많다. 남-녀 간의 사랑도 흥정거리가 되다보면 욕심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다 동원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끝까지 괴롭혀서 피해를 주고 마는 악한 인간들도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이걸 보고 말을 한다면 이것이 어디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나?………이쯤 되면 세상에 추악한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내가 잘 아는 지인의 딸이 사귀던 남자가 너무나 못되고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절교를 선언하자 그 교제하던 남자가 이 딸을 납치하여 갖은 보복적 행동을 하고 그녀를 심하게 폭행하여 갈비뼈가 부러지는 불행을 입는 불상사가 생겨난 것을 보고 옮겨놓은 말이다. 이러한 사랑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이 든다.
주고 또 주는 사랑, 받을 것을 바라지 않고 오직 댓가 없이 주기만하는 진실되고 순수한 그러한 사랑이 그리운 세상이다. 주고 또 주어서 결국은 그 품에 하나로 녹아드는 것이 사랑의 꿈이라면 욕심을 부릴 여지가 하나도 없다. 지금 세상이 온통 이해관계에 얽매여 자본주의적 상태로 굴러 간다 해도 우리들의 사랑만은 끝까지 순결하고 아름답기만을 간절하게 바랄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쁨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누구를 사랑하거나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을 때이다. 내가 어느 누구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때, 세상은 아름답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사랑을 나눌 때면 세상이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한없이 나의 따듯한 사랑과 마음을 주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하염없이 바라보기만하여도 지루하지 않고 기쁨이 샘솟게 만들어 주는 사람, 가슴이 저미고 시리도록 기다리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증명해줄 대상이기도하다.   myongyul@gmail.com<997/10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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