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동지섣달의 내 고향 이야기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이곳 미국에서 만들어진 달력을 보면 양력의 날자만 기재되어있지 음력의 날자가 실려 있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참으로 많다. 춘하추동, 24절기를 거쳐가면서 계절의 흐름과 날씨의 변화를 대충 짚어 볼 수가 있었는데 그렇지 못하니 나이가 들은 구세대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불편하다고들 말을 한다. 올해에도 다행스럽게 한국식품점에서 발행한 달력을 얻어 와서 그 불편함을 면할 수 있었다.
달력을 보니 1월 19일이 음력 동짓달의 마지막 날이고 20일은 섣달이 시작되는 12월 1일이다. 섣달이 되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고 문고리에 손을 대면 손가락이 쩍쩍 들러붙는 강추위가 시작되는 달이라서, 나의 어린 시절에는 솜바지 저고리에 동내의를 더 껴입고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고, 자치기를 하기도 했다. 겨울이 왔으니 봄은 멀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겨울은 추울 만큼 추워야 봄도 오고 꽃도 피는 법이다.
살다가보면 헤쳐 나가기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 일을 피할 생각만 하게 된다. 때론 어떻게든 견뎌내는 대신 이 어려움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지 피하거나 빨리 지나갈 방법은 없는 듯 하다. 그저 모든 일이 그 일만큼의 어떤 몫을 감당하고 그만큼의 시간을 견뎌내야 지나가는 것 같다. 마치 동지섣달이 추워야 그만큼 그 다음해의 봄이 따듯한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하다.
섣달이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1월에 해당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한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동지팥죽을 먹으면 한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음력 12월1일을 설로 쇤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섣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은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달인 음력12월을 일컫는 말로 극월(極月), 납월(臘月)이라고도 한다. 또한 섣달그믐을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 곧 제일(除日)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새해의 첫날을 원단(元旦)이라고도 한다. 중세 한국에서 설은 살로서 오늘날 나이를 뜻한다.
섣달이 되면 시골 농촌에서는 농한기(農閑期)에 접어들어 농부들은 한가한 시간을 갖고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 한 짐 베어오고 밤에는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며 한담을 나누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나 주부들은 여전히 바쁘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밥하고 빨래하고 때로는 간식으로 고구마 찌고 묵 만들고 두부 쑤고 막걸리 거르며 매일 매일을 바쁘게 지낸다. 그걸 보면 시골 아낙네들의 일상과 일생은 너무나 힘들고 가엾은 인생의 여정이라고 보고 싶다.
참고로 여기서 옛날의 나의 어머니 일상을 소개 해 드리고자 한다. 나의 어머님은 이른 봄이 되면 각종 농사일의 시작과 함께 바쁜 일정이 시작된다. 고구마 싹 온상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각종 묘종의 씨앗준비와 파종, 틈틈이 산나물을 뜯어오고, 뽕밭에서 뽕잎 따다가 누에치고, 보리농사거두고, 한여름이면 논. 밭일하시는 아버지 뒷바라지 일에 새참과 점심을 준비해 들로 가시고, 깻잎 따고 고추 따고 호박 따고 상추 따서 반찬 만들어 식사준비하고, 어느 때는 목화밭에 가서 목화 따시고, 수시로 찾아오는 조상에 대한 제사모시고(나의 어머님은 종가집 맏며느리였다), 가을에는 햇콩 갈아 두부 만들고 메주 띄워 장 만들고 도토리 부수워 묵 만들고, 땡감 따서 곶감꽂이 만들고, 배추 절여 많은 식구 먹을 김장담그고, 동짓날 팥죽 쑤고, 틈틈이 호박고지 무말랭이 시래기 넉넉하게 준비하여 햇볕 바른 곳에 옮겨가며 말리고, 찹쌀 쪄서 누룩과 함께 술 담가서 노릇하게 익어지면 용수 박아 제일먼저 제사에 쓸 술부터 동동주를 병에 담아 잘 밀봉시켜 다락 깊숙이 얹어놓고, 아버지에게 드릴 반주거리 맑은술로 떠낸 다음에 청수를 떠다 붓고 휘휘저어 섞어서 막걸리로 걸러내어 가을걷이 벼 베기 하는 일꾼들의 새참과 점심상에 들려 보내고, 나머지는 시루 걸고 소주 내려 추운 겨울에 도토리묵 안주 삼아 먹으려고 곳간 선반위에 보관한다.
가을추수가 끝나면 볏짚은 초가지붕을 잇는 이엉으로 온 동네는 품앗이로 지붕을 단장하고 초가집 장독대 뒷곁 터줏대감도 새 옷을 입는다. 농사가 끝난 내 고향에서는 초겨울 고사떡이 온 동네를 돌고 축하의 새 잔치분위기가 된다. 그해 농사를 마친 후 혼기를 맞은 처녀, 총각들이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간다. 신혼 초야의 잔칫집 문풍지는 신랑, 신부의 초야 모습을 보려는 동네사람들의 호기심속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황소바람이라도 들어갈 정도로 방안이 훤히 보일만큼 침 바른 손가락 구멍 투성이다.
이렇게 해서 한해농사와 사람농사도 마무리 짓고 나면 음력 11월과 12월, 동지섣달이 찾아온다. 모처럼 찾아온 농한기에 시골아낙네와 처녀들은 누구네 어느 집에 모여 화투를 치고 내기를 한다. 돈을 내거나 물건을 내거는 사행성도박이 아니라 취미와 정감이 서린 재미있는 오락의 화투놀이다. 화투를 쳐서 진사람(팀)은 집집마다 깜깜한 밤에 몰래 들어가 부엌에 남겨둔 밥을 훔쳐 와서 함께 둘러앉아 햇 김장김치와 총각김치, 무말랭이무침 고춧잎, 등의 반찬과 고추장, 햇 참기름을 섞어 넣어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어먹는다. 길고도 긴 섣달의 추운 밤을 따듯하고 훈훈한 인정과 이웃 간의 사랑 속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비빔밥을 함께 나눠먹고 따듯한 마음을 함께 나눈다.
급한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나의 일을 제쳐놓고 먼저 달려가서 도와주고 힘이 되며 한가족이 되는 그러한 인정과 사랑의 태동이 이러한 훈훈한 인심과 이웃 간의 정속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아름다운모습과 풍경들이 사라져간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이렇게 추운 섣달이 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옛적의 추억들이 생각나서 그 시절 그때를 그리며 섣달의 내 고향 향수에 얽힌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myongyul@gmail.com <960/0121201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