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아직도 조인트 까는 야만의 시대란 말인가!

<김원동칼럼> 아직도 조인트 까는 야만의 시대란 말인가!

장발족 단속에 걸려 파출소로 연행된 대학생들이 가위를 들고 덤비는 순사를 피하려다보면 조인트 까이는 건 기본이었다. 광주학살현장에 난입한 데모진압 군인들이 곤봉으로 내리 치기 전에도 조인트를 까는 건 역시 기본이었다. 봉황(鳳凰)이 그려진 영문출입증을 목에 부착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의 정원관리사가 주거지 관할파출소의 당직순경에게 불경스러웠다는 괘씸죄를 걸어 조인트를 깐 일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부통령으로 호칭되던 경호실장 차지철도 자신에게 불경스러웠다며 장관들을 조인트 까버린 한참 빗나간 무법천지 시절의 일화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조인트 까기의 원조랄까 명수로 부르기에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박정희다.
월간지 “사상계”를 없애 버리기 위해 박정희는 어느 날 두 사람의 측근을 불렀다.
장준하의 후임으로 사상계 발행인이 된 부완혁이 사건에 연루돼 미결수로 수감되어 있는 것을 안 박정희는 그를 매수하여 사상계를 인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교도소로 부완혁씨를 찾아가 사상계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석방과 함께 사상계 인수대금도 지급했다. 문제는 부씨가 풀려나온 뒤다. 그는 사상계를 인계해주기를 거부했다. 공민권이 제한된 옥중에서 있었던 계약행위라 원인무효라는 주장이었다.
부총리급인 이 두 사람의 이실직고를 들은 박통은 잔인하게 몇 방의 조인트를 까고는 두 사람 중 경제부총리는 파면하고 정보부장이던 또 한명의 김씨는 대만 대사라는 한직으로 쫓겨났다. (후일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복귀해 궁정동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다가 옥고를 치루기도 했지만 부완혁의 사위 신선호의 율산그룹을 박살내는 복수극을 치루기는 했다)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인 포항제철을 키운 박태준도 부하들을 상대로 조인트를 까는 사람으로 악명을 날렸는가하면 승승장구하던 현대건설의 공사현장에서도 조인트 까는데 전문가나 다름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조인트와 연관된 야만시대에 얽힌 일화는 지면관계로 이만한다. 문제는 최근 느닷없이 튀어나온 어처구니없는 조인트 까는 문제 때문에 이 글을 친다.
지난 17일 출간된 월간 신동아 4월호 표지에는 “김재철(MBC)사장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방송국 내)좌파 80% 정리했다”는 큼직한 타이틀이 표지에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통한 이 충격적인 발설자가 다름 아닌 MBC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우룡 이사장이다. 그리고 책이 나온 다음날 MBC노조는 김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함께 강력한 시위를 했으며 김 이사장은 이틀 후(3월19일) 전격 자진사퇴했으나 야당은 한건 잡은 양 보통일이 아니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온다.
그리고 “큰집”이 청와대라는 세간의 인식에 청와대는 우리는 ‘큰집’이 아니라고 하지만 현정권 집권 후 방송장악을 위한 방송 길들이기에 권력기관이 개입한 정황은 여러 곳에 감지되고 있다. 그래서 조인트 안 까일려면 알아서 기라며 본때를 보이기 위해 불러다 조인트를 깐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말로 해야지…..
검은 선그라스에 가죽잠바, 검은 지프차에 실려가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던 시대는 지나간 줄 알았는데, 그리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한 국민들은 “이제 보니 그게 아니구나” 하고 한방 맞았다는 표정들이다. 어느 곳이 큰집인지 몰라도 지금도 사람들을, 그것도 공영방송사장을 끌고 가 방송 길들이기 용으로 조인트를 까는 일종의 고문행위가 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말로 할 일이지 조인트는 왜 까! (kwd70@hotmail.com) <729/2010-03-25>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