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동칼럼> 감동 불러온 클린턴 주연의 서부영화

<김원동칼럼> 감동 불러온 클린턴 주연의 서부영화

악당들에게 붙잡혀 있는 자국민을 구하려 적진에 뛰어든 서부의 사나이 클린턴, 두 사람의 여기자를 데리고 보브호프 공항에 착륙하던 클린턴 주연의 그 드라마틱한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되던 지난 5일에 있었던 그 날의 벅찬 감격! 그리고 이어진 로라 링 기자의 자신들을 구해 준 클린턴 전 대통령과 국민에게 전하는 감사의 표현은 진한 눈물로 TV화면을 적시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였다.
클린턴의 평양방문은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한사람의 자국민이라도 찾으려는 미국은 땅 끝까지 헤매는 나라다. 타국에서 전사한 이름 모를 병사들의 잔해발굴을 위해 미국은 지구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있다. 클린턴 뿐 아니다. 국민과 국가이익을 위한 일 앞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당리당략이나 이해관계보다 국익(國益) 최우선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제국다운 모습이다.
이번 여기자 구출을 위한 인간드라마만 해도 그렇다. 정부차원에서 한 일도 아니다. 정부와 무관한 일임을 입증하듯 그는 정부 제공의 전용기가 아닌 자신과 민주당의 적극적인 후원자인 허리우드의 백만장자 스티븐 빙의 자가용 비행기를 빌려 타고 갔다. 그리고 방북기간 중에는 그 특유의 헤픈 미소도 없었다. 김정일에게 사과나 오바마의 친서전달도 없었다. 핵과의 어떤 흥정도 없었다. 달변의 그로써 말도 없었다. 그만큼 제스츄어가 필요한 정치적 행보가 아닌 탁월한 인도주의적 노력의 결실을 위했을 뿐이다. 귀국한 그를 두고 언론도 그랬다. 국익우선의 미국언론들이기에 그의 멘트를 요구하며 다그치는 기자들의 모습도 없었다. 미국 지도자들의 당연한 모습으로 기억하기에 모두가 노력할 뿐이다. 아름다운 모습의 혼연일치(渾然一致)였다. 한국처럼 탈레반에게 돈을 건네고 인질석방에 성공한 국정원장이 손을 흔들며 먼저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런 모습과도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두 여기자가 먼저 내려서 가족들과의 만남부터 우선하는 극히 인간적인 배려도 잊지 않았다. 너무나 달랐다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런데 우리에겐 아직 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혼연히 나서는 전직 대통령이 한 사람도 없는가! 나라와 국민전체를 위한 봉사보다는 사리사욕(私利私慾)에 얽힌 특정지역의 맹주로써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국론분열로 남남갈등을 조성하는 지도자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할 시간에 부정부패를 저지른 댓가로 옥살이를 하고, 국민의 저항으로 타국으로 망명하고, 부하의 손에 의해 비참한 종말을 고하거나 가족들의 비리의혹에 견딜 수 없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전직대통령들은 있었으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나선 클린턴 같은 전직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정말 부끄럽고 통탄스러운 일이다.
클린턴이 억류된 자국민을 자신이 타고 간 비행기에 태우는 데는 딱 하루밖에 안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뭔가! 숱하게 많은 국군포로와 어부들이 강제로 그곳에 갇혀 있다. 10억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 돈을 조공으로 같다 바치면서도 자국민을 데려오려는 노력은 전무한 채 찍소리 못하고 지나온 세월이 그 얼마든가?. 김-노 두 사람의 대통령과 박근혜씨를 포함한 수많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그리고 적잖은 지원을 하면서 그곳을 찾았던 성직자들의 줄을 이은 방북에서 그 누구하나 이들의 송환을 김정일이나 북한 당국에 외쳐보았는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채 애타게 귀향곡을 부르는 동토(凍土)에 갇혀있는 동포들의 울음소리를 차갑도록 외면한다. 우째서 이런가! 우리에겐 왜 클린턴 같은 정치지도자는 없는가!
수 없이 많이 본 서부영화 중에서도 이번처럼 찡하게 와 닿는 감동적인 서부영화는 처음이다. 단연 압권이다!. ksd70@hotmail.com <699/200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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