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의 은인!

▲사진 좌로부터Mrs. Hoover여사, 이필균씨, 3성 장군(Major General) 으로 제대한 John Hoover씨. 이필균씨 부인.

한국 전쟁의 은인!

지난 1월 22일 오후 6시 Evans 조지아의 Branden Wilde의 프라이빗 다이닝 홀에서는 Major General John Hoover(83)씨와 데이토나 비치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이필균씨(73)의 58년만의 눈물겨운 상봉으로 기쁘고 놀라움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잊었던 58년의 이야기로 친지와 친구들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필균씨 부부를 더불어 자리를 함께 한 Major General John Hoover씨 부부와 Holly/Steve Bullock 따님 부부, 두 번의 한국전 참전용사로 Hoover씨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Col. Blandeburgo씨 부부와 가까운 친구 분이신 Armistead씨 부부, 기자와 남편 Bill Forget이 함께 한 자리는 마치 오래 전부터 가까이 지내던 사이처럼 서먹함이 전혀 없이 모두가 친숙하게 웃음과 놀라운 대화의 연속이었다.
지난 11월 11일 로페스 중위의 동상 제막식의 보도가 본지 한겨레 저널을 통해 발표되자 이필균씨는 기부금을 보내면서, 한국 전쟁 중 생명을 구해주고 보살펴 준 루테넨 존 후버씨를 찾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마침 탬파에서 거행된 제막식에 기자 부부와 함께 참석하여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다시 루테넨 후버를 찾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 후 12월 초에 기자는 이필균씨의 떨리며 상기된 음성을 전화로 들을 수 있었다. “루테넨 존 후버씨를 찾았습니다. 에반스 조지아에 사신 답니다.” “곧 한번 가서 만나야지요?” 너무 꿈만 같다며 이렇게 쉽게, 속히 찾으리라 곤 생각 못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필균씨는 기자와 함께 간간이 나눈 대화에서 루테넨 존 후버씨를 꼭 찾고 싶으며 찾을 수만 있다면 찾은 후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면 꼭 돕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었는데 찾고 보니 메이저 제네럴(중장)이 되었다며 자랑스러움과 함께 멋쩍어 하셨다.
이필균씨는 Hoover씨 부부를 초청하고 싶으니 꼭 한번 플로리다를 다녀가시기를 부탁드렸으나 그분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당장에라도 한숨에 달려가고 싶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 등으로 모두 바쁜 시기인지라 조급한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서로 연락하여 좋은 시간을 맞추어 드디어 지난 1월 22일 평생 궁금해하며 보고싶어 했던 Hoover 씨를 만나러 가기에 이르렀다.
이필균씨 부부와 기자의 부부는1월 22일 아침 8시 팜 코스트를 출발 이런 저런 흥분에 찬 대화를 나누며 기대감을 안고 5시간 30분의 운전을 하며 어거스타 조지아에 도착 한 후 Hoover 씨가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후 6시 Hoover 씨 부부가 거주하는 Branden Wilde에 도착하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미리 소문을 통해 우리를 알아보고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 해 주었다
Hoover씨 부부는 문 앞에서 기다리다 우리 일행을 보고 반가워하며 악수와 함께 따듯한 포옹을 해주었다.
Hoover씨는 현재 83세로 영화배우 John Wayne을 연상케 하는 마르고 큰 키에 지팡이를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걷는 창백한 모습에 건강이 안 좋은 듯 했지만 꼿꼿하고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가 오랫동안의 군 생활을 대변해주는 노장군의 모습이었다.
Branden Wilde는 retirement community로 규모가 크고 품위 있는 실내장식과 함께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지위와는 대조적으로 검소하게 보였다.
Mrs. Mary Jo Hoover의 안내로 미리 준비된 전용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그곳 테이블에는 각자가 앉아야 할 자리의 이름표가 적혀 있었으며 정해준 좌석대로 앉게 되었고 우리 일행은 Hoover씨 부부와 따님 부부 친구 분들 부부 등을 포함 여섯 커플이 앉아 함께 식사를 나누며 58년의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식사 도중 어거스타 신문사의 기자가 내일 아침 마감 뉴스에 보도하여야 한다며 이필균씨와 Hoover씨의 인터뷰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였다 이필균씨는 1950년도에 Hoover 중위를 만나게 된 동기며 다시 찾게된 일등을 재미있게 설명하였으며 특히 그 당시 Hoover 중위가 가끔 건네준 밀크 웨이 초콜릿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Hoover 씨는 바짝 마른 학생이었다고 이필균씨를 기억하는데, 이필균씨는 16살 되던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서울에서 피난길에 오르는데 대구에서 가족들과 헤어지고 혼자가 된 몸으로 대구 근교의 기차 정류장에서 우연히 미 육군 24th infantry 소속인 Hoover 중위를 만나 그의 짚차 위에 오르게 되며 구사 일생으로 구원을 받게 되고 그 후 일년이 넘도록 Hoover 중위와 함께 지나게 되었다. 그 부대가 이북으로 북진을 하며 압록강 가까이까지 가게 되었고 중국군의 개입으로 미군이 후퇴하게 되었을 당시 이필균 소년은 부대가 후퇴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순안 부근에서 기독교인 가정으로 짐작 되는 가정에 초대되어 한국 음식을 대접받고 있는다. 이때 Hoover 중위는 미군 사병을 시켜 동네를 샅샅이 뒤져 이필균 소년을 찾아오게 한 후에야 모두가 후퇴하였다고 한다. 한국 소년 하나 때문에 온 부대가 후퇴를 못하고 기다렸지만 누구하나 싫은 기색을 안 했다며 그 당시 이북에 혼자 남게 되었다면 인민군에 붙들려 총살을 당했거나 아니면 인민군이 되어 지금도 공산 치하에서 살고 있을 거라며 Hoover 씨는 자기를 두 번이나 살려준 은인이라고 감격스럽게 이야기했다.
Hoover 중위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도 이필균 소년의 안전을 염려하여 다른 부서에 배속시켰고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꼭 학교 공부를 계속 해라 무엇보다 배워야한다고 계속 강조했다고 한다.
그 후 이필균 소년은 부모님을 만나게 되어 피난민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휴전과 함께 학교를 마치고 해군에 입대 하게되었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야구로 농협 야구팀에 들어가 실업 야구선수가 되었고 그 당시 간호원으로 근무하던 부인 김영자씨와 결혼 71년도에 미국 이민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
이필균씨 부부는 큰딸과 큰사위가 올만 비치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온두라스에 병원과 교회를 세워 선교 사업을 하고 있으며 올랜도에서 사업하는 아들 며느리 부부와 뉴욕시티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둘째딸과 둘째 사위가 있으며 손자 손녀 등 가족이 30명에 이른다고 말하고 이 모든 일들이 Hoover 씨가 아니었다면 이루어 질 수 없었던 일이라며 평생의 은인으로 은혜의 나라 미국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Hoover 씨는 West Point 출신이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일본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 한국 동란이 터져 50년 7월 일본에서 고깃배를 이용 돗자리 위에 앉아 한국으로 들어 왔다고 한다. 한국 전쟁 후에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해 그동안 놀랍게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이 못내 아쉬운 기자의 마음이다.
슬하엔 장성한 딸이 둘인데 사위인 Mr. Bullock씨 역시 West Point 출신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만나고 있을 당시 West Point로부터 Hoover 씨에게 한국인 이필균이란 사람이 당신을 찾고 있다는 연락이 와 모두가 신속하고 철저한 연락망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Hoover씨는 여러 곳으로부터 이필균씨가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신문사와의 인터뷰가 끝나고 늦은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미리 준비된 Branden Wilde 컨퍼런스 룸에는 30여명이 모여 Hoover씨와 이필균씨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직접 듣기를 원한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일행은 컨퍼런스 룸으로 옮겨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필균씨의 아름다운 사연이 다시 즐겁고 흥미롭게 전해졌고 듣는 사람들은 모두 감격스러워 하며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또한 모두의 관심사인 한국의 미래와 이북과의 관계, 통일 문제, 기아에 허덕이는 이북의 아동들에 대한 질문 등을 해오며 한국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다.
기자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젊은 병사들과 한국을 친한 우방으로 도와주고 협조해준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도 지금 자유를 그리워하는 공산 치하에서 고생하고 있을 거란 얘기와 함께 우방 국가인 미국과 미국인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이필균씨의 말에 도움이 필요한 소년에게 도움을 준 것뿐이며 누구라도 그리 했을 거라며 겸손해 하는 Hoover 씨이다.
Hoover씨가 어찌 이필균씨에게만 은인이겠는가? 우리 한국인들 모두에게 은인이며 많은 한국인들이 Hoover씨와 같은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감사해 하고 있으며 그들은 평생 가슴속 깊이 감사해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다이닝 홀로 돌아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 분들과 함께 못 다한 얘기를 나누며 가까운 미래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Hoover씨 부부의 안내로 그분들이 살고 있는 이층 아파트로 안내되어 흘러간 시간들을 사진으로 보며 Hoover씨의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당시의 사진이며 맥아더 장군 등 고위 장성들의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밤이 늦어 아쉬운 작별을 하며 이필균씨의 초대로 3월말경 데이토나로 방문할 것을 Hoover씨와 가족들로부터 약속을 받고 에번스를 떠나오는 귀가 길은 뿌듯한 마음으로 미국의 하늘이 더욱 높고 푸르게 보였다. <염인숙 기자><627>
20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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