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 36> 빌 클린턴 전(前) 대통령의 기념 도서관

<김명열 기행문 36> 빌 클린턴 전(前) 대통령의 기념 도서관

여행작가 및 칼럼니스트 / myongyul@gmail.com

지난주에는 역사적 소용돌이속의 현장인 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에 대하여 소개를 해드렸다.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아칸소주의 Hope에서 태어나 유명한 온천도시인 핫 스프링스에서 자랐다. 당시 이 지역은 도박이 난무하였던 곳으로 후에 근절이 되었다. 클린턴은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며, 당시 아칸소주에서 벌어지던 인종갈등(지난주에 게재됐던 리틀락 중앙고등학교 기행문 참조)을 생생히 목격하면서 흑인 인권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고교시절에는 아칸소주의 학생대표로 뽑혀 존 F. 케네디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정치에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되어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지내고 싶다는 이유로 아칸소주 출신의 개신교(침례교) 신자로서는 드물게 예수회에서 설립한 조지타운 대학교(워싱턴소재)에 입학했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사학위를 받고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PPE(철학,정치,경제)학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포드 대학교 재학 관계로 외국에 체류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병역의무가 면제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후에 병역을 기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되었다. 그후 미국으로 돌아와 예일 로스쿨에 입학하여 3년 후 1973년에 법무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예일 로스쿨 재학 중 한 학년 선배였던 힐러리 로댐을 만나게 되었고, 1975년 결혼했다. 예일 로스쿨 졸업 후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아칸소 대학교 로스쿨에서 교수로서 법을 가르치면서 1974년 불과 28세의나이로 연방 하원의원선거에 도전하였으나 낙선했다. 1975년에는 힐러리 클린턴과 결혼하였고, 1976년 아칸소주의 법무장관으로 선출되었다. 1978년에는 아칸소주 주지사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2세로 그 당시 미국 최연소 주지사였다. 그러나 1980년 선거에서 공화당후보 프랭크 화이트에게 패하여 낙선했다. 1982년 다시 주지사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1986년과 1990년에 재선되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 아칸소주의 주지사를 연임했다.

클린턴은 1992년 선거에서 현직 공화당출신 대통령인 조지 H.W.부시와 무소속 후보인 로스페로를 꺾었다. 이 선거에서 그는 국내의 문제들에 집중하여 특히 불경기에 대한 이슈를 제기했다. 그의 선거운동본부의 캠페인 문구는“문제는 경제야, 멍청아! It”s the economy, stupid!”이었다. 클린턴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로 2번의 임기를 모두채운 첫번째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그의 당선으로 인해 12년간(1981~1992)의 연속된 공화당정권(로날드 레이건1981~1989 / 조지 H.W부시1990~1992)이 막을 내렸다. 그 선거이후 민주당은 지미카터 대통령의 통치 이래 최초로 의회 및 행정부를 포함한 연방정부의 실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러나 재임초기 계속된 실책으로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1994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패를 안겨주었다. 특히 하원에서는 40년 만에 공화당에 다수의석의 지위를 넘겨주었다. 정권을 인수받은 후 클린턴은 1993년 가족 의료법안에 관한 대선공약에 즉각 서명을 하게 된다. 이 법안은 고용인에게 종업원의 의료문제 발생상황시 의료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보호 법안이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공약대로 연방공무원 10만명 감축지시를 내렸고, 고어 부통령에게 정부를 완전히 새롭게 재 창조하기위한 방안을 강구토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고어 부통령의 주도아래 국정성과평가팀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미국의 행정개혁은 ‘정보기술을 통한 정부 재구축’ 프로그램을 통해 공무원을 30만명 이상 감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미국 행정개혁의 성공은 정보기술을 활용한 전자정부의 구현을 통해 이룬 결과라는 평가가 있다.

클린턴이 재임하는 1990년대 동안에, 클린턴은 연속적인 경제호황을 이끌었다. 하지만 빌 클린턴대통령은 많은 여자들과 스캔들에 관련되어 수모를 겪었는데, 1998년 특검검사 케네스 스타의 집요한 추적으로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이 밝혀져 탄핵직전까지 몰렸으며, 3천만 달러를 부정 대출로 받은 화이트 워터게이트 사건등과 폴라 존스사건 등 각종 스캔들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퇴임 후 그는 2009년 8월4일, 미국 여기자 억류사퇴 해결 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면서 여기자들을 대동하여 귀국했다. 특히 그는 핵문제 해법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방북은 단순한 여기자 2명을 석방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의 북미관계와 북핵문제해결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가족으로는 전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여사와의 사이에 1980년에 태어난 외동딸 첼시 클린턴이 있다.

아칸소주의 주도(州都)인 리틀락에는 아칸소주의 자랑인 빌 클린턴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클린턴 도서관이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업적을 기념하는 클린턴 도서관(William J Clinton)은 대통령 도서관으로서는 미국에서 12번째의 큰 도서관이다. 약 2백만장의 사진과 7600만쪽에 이르는 서류, 클린턴대통령이 즐겨 불던 섹스폰, 등등 7만5천여점의 전시품을 보유한 이도서관은 14개의 방으로 구성돼있고. 방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시 발생한 여러 가지 사진들을 구비해놓고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클린턴센터는 대통령 도서관과 박물관, 재단본부, 학교 등으로 구성돼있으며, 일반인 1만여 명으로부터 모금한 1억6500만달러의 자금으로 건설됐다. 미국의 정부나 사회는 전직대통령의 도서관 건립으로 대통령임기동안의 자신들의 업적과 장, 단점을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개선 내지 후세들에게 교훈적 활동을 가르쳐줌으로 미국정부의 역사적 정통성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정부의 전, 현직 대통령도 자신의 고향에서 도서관 등을 설립하여 부끄러움 없는 자연인으로 되돌아가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여기에 해당되는 대통령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 앞선다.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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