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가을의 인사

<김명열칼럼> 가을의 인사

가을의 중심, 10월달로 성큼 들어섰지만 낮이면 늦여름 더위가 긴 소매를 걷게 만들고 저녁이 되면 철모르고 윙윙 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가 계절감(感)을 잊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여름과 가을의 기운이 공존하는 이곳 플로리다지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어느새 저만치 푸르고 높아진 것을 보니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어떤 시인은 가을을 가리켜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흔히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더니 필자도 가을이 왔다는 사실에 단풍을 닮은 상념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다른 계절에 비해 특히 가을은 다양한 모습으로 투영되는 것 같다. 혹자에게는 김장김치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고독과 쓸쓸함을 가져다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듯 가을의 의미는 각자에게 다르겠지만, 우리의 생각들에 조금 더 깊이와 무게를 심도있게 실어주는 계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짧은 감탄과 빈도가 잦아지는 사색, 가을이 왔음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부터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성숙의 계절, 결실의 계절, 사색의 계절, 그리고 가을 하면 낭만의 계절이다.

활동하기 좋은 기온과 청명한 날씨는 우리곁에 찾아온 가을을 만끽하게 해 준다. 얼마 전 태풍 Hellene이 플로리다를 비롯한 미국 동남부 주 일대를 쑥대밭으로 초토화 시키고 수많은 사상자를 속출시켰더니, 이번에는 Hurricane Milton이 지금 걸프만 남쪽에서 플로리다 탬파를 향하여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

현재는 카테고리 5를 유지하고 있는데, 잠시 후 카테고리 4로 누그러지고 곧이어 카테고리 3으로 탬파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러나 카테고리 3 역시 어마 무시무시한 매우 강력하고 무서운 태풍이다. 이번 9일 수요일 밤 9시경에 도착하여 목요일 새벽 4시경에 떠나간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이번에는 지난번 태풍 Hellene보다 더 많은 재산 손실과 인명 피해도 예상된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 하다.

이러한 악조건의 태풍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금 멀리 동북쪽 아팔라치아 산맥, 스모키 마운틴 주변, 블루릿지 파크웨이 일대에는 벌써부터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여 가을 여행객들이 몰려와 가을의 품속에 안겨 자연을 즐기며 가을빛에 무르익어 홍안이 된 얼굴엔 미소가 넘친다. 이러한 자연속에 자연인이 되는 눈빛은 맑기만 하다. 일상을 내려놓은 잠시 잠깐의 여유는 온화하고 넉넉 하다. 낭만은 지성의 트랜드 이기도 하다.

세상은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간다. 조변석개(朝變夕改)란 말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모든 것이 휙휙 변해가는 세상이 됐다.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받고 꼰대 취급을 당한다. 허둥지둥 세상의 변화에 합류해야 한다. 그것이 적자 생존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느림의 미학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요즘 세상을 탓한다.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이 변했기 때문이다.

봄은 아름다움이 시각으로 보여지고, 여름의 싱그러움이 촉각으로 매만져 진다면 이 가을의 향기는 후각을 통해 맡아지는 냄새라고 하겠다. 가을의 향기는 꽃이나 과일의 향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계절에 모든 열매들이 제 나름대로의 향기를 발하기에 더 잘 어울린다 할 것이다. 이른 봄부터 농부들은 때를 따라 심고, 여름철에 가꾼 열매가 가을이 되어 익어 향기를 풍길때 그 가을의 향기는 탐스럽게 익은 성숙의 향기라고 할 것이다. 이 성숙의 향기란 열매에게 있어 조물주 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아름다운 자기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젊음을 자랑하듯 뻣뻣하던 일부 이삭은 쭉정이가 되어 하늘에 고개를 쳐들고 있어도, 잘 익은 곡식은 머리를 숙임 같이 가을의 향기는 겸손을 돋보이게 한다.

아무리 제 잘난 멋에 살고 자기 과장의 시대에 산다고 해도 겸손을 모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인격적인 성숙의 향기가 풍겨나지 않을 것이다. 감투 좋아하고 명예욕 좋아하는 소위 여느 한인사회 단체장이나, 리더들이 이러한 겸손의 미덕을 배우고 겸양의 미덕을 갖춘 내면의 향기가 아름다운 인간들이 되어주면 좋겠다.

사회 곳곳에서 자칭 의인도 많고 선인, 인격자가 넘쳐나도 우리들의 사회는 나날이 부패하고 병들어 가고 있으니, 어찌 인간미 넘치는 성숙의 향기를 기대 하랴……?

서늘한 바람이 뜨거운 바람을 쫓아냈다. 그 서늘한 바람속에 가을이 묻어왔다. 계절이 바뀌는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색을 입고 있는 나무들의 행렬을 본다. 가을은 하늘이 파래지고 높아지는 계절이다. 그만큼 무언가에 그리움이 시리도록 사무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것이 가을이다. 누군가를 그리워 해 보지않은 사람은 감정이 사하라 사막처럼 메말라 버린 사람이다. 그리움은 인간 본능이며 아직도 자신은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리움을 잉태케 해 주는 계절, 그것이 바로 가을이다.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계절이며 그 끝을 잡을새도 없이 멀리 떠나가 버리기 때문에 더욱 더 아련한 것……..

가을이 환기하는 기억의 별무리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덧칠하며 깊은 마음을 품게 한다. 나는 그것이 가을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엔 책을 읽는다. 가을의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청승을 떨기에는 좋은 계절이 되었다. 가을엔 사무치는 외로움과 고독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떨어지는 낙엽과 바람에 소리 내며 부대끼는 갈대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저며 오는 것 같은 감정의 전율을 느껴보지 않았는지?…..

그러한 때, 고독이 숨 쉬고 외로움이 가슴속을 멍들게 할 때, 홀연히 일어나 촛불 곁에 앉아 턱을 괴고 책을 읽는다. 때문에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 하는게 아닐까. 고독한 시인과 문학인들의 언어에는 겨울이 더 적법할 듯도 싶지만, 글을 쓰는 문학인들에게 글이 문득 그리워지는 계절은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외롭지만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가장 활성화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풍요로우며 가득히 채워져 익어가는 가을의 생명은, 이윽고 찾아올 겨울의 침묵을 향해 달려간다. 가을엔 가장 많이 꽉 꽉 잔뜩 많이 채워놓고,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서 그 마지막을 찬찬히 불태우는 것이다. 이렇게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그러한 마지막을 내포한 시간이라 그런게 아닐까. 가을은 죽어감의 계절이 아니라 삶이 각자를 증명하는 풍요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가을의 풍성함은 각 생명들을 살 찌운다. 그리고 찾아올 겨울의 기나긴 잠을 대비하도록 한다. 가을속을 거니는 마음은 어떨까? 찾아올 긴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그 영혼을 살찌운다.

때문에 가을엔 많은 글을 써서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한 사람들은 마음과 영혼에 양식이 되는 좋은 글을 찾아서 읽고, 한편으로는 양서(좋은책)을 찾아 지식을 쌓고 교양도 넓히며 삶을 풍요롭게 길 닦아 나가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가을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영혼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 것도 좋다는 말이다. 가을은 정말로 독서를 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우리 곁에 나래를 펴고 숨 쉬고 있는 이 가을은,참 알아가기 어려운 계절이다. 봄처럼 짧고, 여름처럼 찬란하며, 겨울을 닮아 외롭고 고결하다. 가을엔 참으로 피어나며 열매 맺는 것이 많고, 가을을 맞아 떨어지는 잎새가 한가득 이기 때문에 가을은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운 계절이다. 나는 그러한 가을만의 생명이 좋다. 가을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생명의 풍요로움이 아닌 그 속에 숨은 생의 다채로움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이 가을을 보내며 어떤 계절을 살고 있을지?…..

살랑이는 억새풀, 떠나가는 찬바람들, 가을이 품은 풍요로움을 온 피부로 느끼며 다가올 겨울의 추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당신께 지나는 가을이란 계절은 과연 어떨지가 궁금하다. 이것이 가을이 주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것이야 말로 가을이 바라는 소통이며 가을이 맺어주는 인연의 끈이 아닐까…….!

당신의 가을을 말하고 떠나갔으면 좋겠다. 잠시 이 글에 머무는 철새처럼 자신의 길을 다시 떠나야겠지만, 나는 당신의 가을이 아름답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머지않아 가을의 끝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마중물 처럼 겨울을 당겨오는 계절을 보내며, 가을이 가진 특색처럼 자신의 색채를 뽐내는 당신만의 계절이 되시길 바란다. 당신이 열매 맺고, 당신을 꽃피울 그 아름다운 계절을………..!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7/2024101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