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좋은 삶 속의 행복과 인생 길.
길고도 짧은 우리의 인생 길…………
사람들은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바라며 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좋은 삶”으로 정의한다. 행복에 관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좋은 삶의 기준을 되도록 명료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행복은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과거의 삶의 역사, 미래의 전망, 삶의 궁극 목적을 아우르는 “인생 전체”라는 지평에서만 의미있게 이야기 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과 관련해서 말하는 인생은 단순히 순간이 긴 시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련하고 활동하며 마침내 인간의 궁극적 목적에 다다른 역동적인 완성의 여정을 말한다.
그러기에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한 인간의 인생을 생존의 영역과 구분되는 좋은 삶 이라는 규범적 이상을 통해 조명하는 것이다. 좋은 삶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시간만이 인생은 아니다. 인생 안에서 우리는 우리시대의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듯, “벌거벗은 존재”로서 살아남고자 투쟁하고 고통을 견디며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들 삶에 “인생”이라는 말은 자주 우리의 심간(心肝=깊이 감추어둔 마음) 에 파문을 일으키며 미혹(迷惑=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들을 떠 올리게 한다. 고작 두 음절의 이 짧은 단어를 혼자 앉아 천천히 발음해 보면, 갑자기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뒤엉켜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회에 젖는 이유이다. 이 낱말을 담담함과 단순한 긍정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모든 외적 기준과 상관없이 이미 좋은 인생을 살아온,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인생의 “좋은 삶의 성찰과 실천의 아름다운 결실 이전에” 우선은 “살아 남는 것” 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견뎌내고 살아낸 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밝혀낸 인생에 대한 아름답고 영롱한 지혜를 대할 때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인생은 왜 나의 인생과는 이리도 다른가? 하고 탄식하는 것이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좋은삶이라는 기준에 나의 인생을 비추어보며 부끄러워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인생을 살아낸 것이, 생존 투쟁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킨 것이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세상속에 ‘살아남는 것’ 자체의 소중함과 가치를 말해주는 이를 만날 때 한없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인생이 살아내는 것, 견디어 내는 것, 살아남는 것, 이라는 무거운 진실을 외면하는 철학과 사상은 공허한 말 잔치일수도 있다. 그래서 행복을 좋은 삶이라 말하는 것은 생존의 시간과 격리된 곱디고운 순수한 사유의 결과만이 아니라 오히려 절실한 마음의 일이어야 한다. 또한 좋은 삶을 바라고 묻는 것이 인생의 고통을 잊는 한 순간의 위안의 방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결심의 시작이어야 한다.
“살아남음의 장함”은 결국은 좋은 삶의 길에서만 충만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납득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인생의 여정에서 탐구하는 절실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설수 있다.
이상은 철학적 관점의 고찰에서 인생 자체의 좋은 삶과 행복에 대해 논해보았다. 다음은 우리의 인생 여정 길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나 낯선 길을 간다. 그 길은 처음 가는 길로 한번밖에 갈 수 없으며, 다시 되돌아 갈수 없는 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한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좋은 길동무를 만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도 만나게 된다. 살다보면 어느 때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가로 놓인 강물을 건너다 물속에 빠져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고생 고생하다가 간신히 살아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바른 길을 가기 위해 훌륭한 선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서산대사(1520~1604)는 후세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선시(禪 詩)를 남겼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럽히며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발자취는, 반드시 뒷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우리들 인생의 살아가는 길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양 각색,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인가(?)라는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후세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사람을 본받거나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생 여정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인연이다. 부모 형제만 만남뿐 아니라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종교연 등등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나 어떠한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이되기도 한다. 그중에서 배우자와 친구는 자기가 선택한 만남이지만, 이들은 인생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세상을 사노라면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중에는 디딤돌이나 징검다리가 되는 사람도 있고, 걸림돌이나 누름돌 같은 사람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징검다리와 같이 은혜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림돌처럼 인생을 가로막고 괴롭힘을 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지나간 과거의 아픈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삶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을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하지만, 결국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혼자서는 갈수 없는 험난한 길이기에 길동무와 함께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즐거운 마음으로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고 인간답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사람의 목숨)은 결코 일장춘몽이 아니다. 인생이 가는 길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갈지라도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이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남을 위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베풀며 도와주는 일이다.
나의 인생이 이 세상을 떠나면 나의 인생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게 된다. 그 기억은 살아 생전에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았으며 선행을 베풀었는가, 아니면 악행을 저질렀는가에 따라 나의 인간성이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선행은 사람들 마음속에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일이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데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내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가진 것을 잠시 가지고 있다가 모두 버리고 떠나야 한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울면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웃으면서 떠날 수 있도록 인생을 선행과 사랑을 베풀면서 서로 서로 아끼고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참된 도리(道理)이기도 하다.
문학 작가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423/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