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김명열칼럼>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요즘 우리들의 사회와 세상사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좀처럼 ‘아름다운 세계’로의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곳곳의 전쟁이나 자연 재해, 이념싸움 등으로 인해 경제도 어렵고 국제정세 또한 너무나 혼란스럽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물질만능의 물신주의에 우리의 정신주의를 내준 것이 한몫 한 것 같다.

특히 나의조국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보면 인간에 대한 존엄도, 긍지도, 자존도 다 팽개치고 오로지 당리당략에 의해 진실도 만들어 내고 가짜도 생산해 내는 ‘전문가’들의 집합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엄청난 시대에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연인 일개 개인으로서 무기력함을 통절하게 느끼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상처 난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설령 상대적으로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덜 민감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일지라도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나의 과거이자 미래일수도 있다는 진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의 현재가 나의 미래와 무관할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고 나아가 이상적인 사회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문학만큼 강력한 매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아와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관계를 규명하며 살아가는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 존재에 대한 성찰, 즉 나를 찾아가는 물음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향방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의 여정을 제시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현재 우리가 실존하는 현실은 부조리와 불합리가 온전히 삶의 영위를 방해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워하고, 혼란스런 현재에 대한 절망과 아픔이 깊을수록 새로움에 대한 동경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는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학가인 호이징가의 말이 어느 때보다 많이 회자되기도 한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밀림을 통과해야 하며, 맹수 사냥꾼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향기는 언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중간 중간에 피어있는 들꽃 같은 얼굴들과 매 순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정원이나 길가 산책길에 피어난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와 관심, 그곳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는 쉬어감이 그 여정을 풍요롭게 만든다.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

일주일전 꽃을 사다가 화병에 꽂아놓은 꽃들이 시들자 어제는 집사람이 마켓에 가 그로서리를 보면서 꽃들도 함께 사왔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의 집사람은 사온 꽃들을 예쁘게 손질하여 화병에 꽂아놓았다. 새롭게 바뀌어 화병에 꽂혀진 꽃들은 향긋한 향기를 집안에 풍기며 집안 분위기를 한층 더 밝고 아름답게 바꿔놓았다. 오늘 아침에도 테이블에 앉아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화병의 꽃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우리 삶의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에는 언제나 꽃이 함께 한다.

꽃은 계절과 시간, 장소를 떠나 언제나 우리에게 행복한 설렘을 전해주며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감성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꿔준다. 꽃은 시를 읊게 하고, 노래를 만들고, 이야기를 낳았다. 게다가 한 떨기 국화꽃은 봄부터 소쩍새를 또 그렇게 울게 하였다지 않던가. 꽃은 어느 누구에게나 친근한 소재로서 인간의 희노애락을 대변해 줌은 물론, 생활속에 작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더욱이 인간의 편리함에 우선한 산업개발로 환경파괴가 위험수위에 이른 현 시점에서 꽃 사랑은 자연과 환경의 사랑이라 할 것이다.

꽃의 보편적인 상징은 한마디로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물이나 사람을 지칭할 때 흔히 꽃화(花)자를 그 말에 붙였다. 아름다운 얼굴은 화안(花顔) 또는 화검(花瞼)이라 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화의(花衣), 아름다운 족두리를 화관(花冠), 신부가 혼례 때 타는 꽃가마를 화교(花橋)라 하였다. 꽃은 여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름다운 여인을 화인(花人),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화태(花態)라고 했다. 어린처녀를 꽃봉오리라고 하고, 여인의 젊음이 가려 할 때 ‘꽃이 시들기 시작한다’고 했다.

꽃은 점점 풍요, 존경과 기원의 매개, 사랑, 미인, 재생, 명예 등 더 높은 미적인 존재로 의미의 확산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꽃은 마침내 인간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꽃은 영예와 소망의 상징이다. 아름다움에서 출발한 꽃은 영예로움과 고상함, 그리고 으뜸을 표상으로 하고 번영과 풍요를 바라는 인간의 소망을 상징하기에 이른다. 경사스럽고 영화로운 일이 있을때 “웃음꽃이 피었다”라고 하였고, 실패에 좌절하고 있을때 “언젠가는 그대도 꽃 필때가 있을거야”라고 격려했다. 또한 꽃은 존경과 경배, 숭배, 친애의 표시로 쓰여 왔다. 꽃을 바치고 꽃을 선사하는 것은 사람들의 존경이나 외경심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꽃은 신을 경배하거나 신에게 소망을 빌 때 바치는 예물이다.

꽃은 사랑의 정표 이다. 사랑은 아름답다. 그래서 꽃의 아름다움은 사랑의 상징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신라 성덕왕때 강릉태수의 부인 수로에게 한 노인이 철쭉꽃을 꺾어 바치며 헌화가를 읊고 있다. 또 고려 충선왕은 몽고를 다녀올 때 사랑했던 몽고여인에게 정표로 연꽃을 꺾어주었다. 구운몽(소설) 에서는 주인공이 팔선녀에게 던진 꽃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꽃은 우리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선생이다.

순간순간의 삶을 아름답고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좋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결코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끌어올릴 뿐이다. 꽃에겐 피는 일도 지는 일도 온 몸으로 살아내야 할 그때 그때의 소중한 삶의 순간인 것이다. “오늘의 일을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요, 내일은 없는 것입니다. 내일을 믿지 마십시오. 내일은 결코 당신의 시간이 아닙니다. 부디 이 순간을 열심히 사십시요”라며 꽃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를 열어야 한다.

꽃은 아름다운 색과 자태, 그리고 그윽한 향기로 인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할뿐 아니라 삶의 정취를 더욱 깊게 해준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꽃이다. 꽃은 모든 인류와 생활하면서 가까이 했고 아름다운 것중의 하나였다. 원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꽃이 있는 곳이야 말로 정서적으로 풍요를 느꼈기에 언제나 활짝 핀 꽃밭을 그리워 했을 것이다. 도가(道家)에서는 무릉도원을 복사꽃이 만발한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또 다른 생명을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꽃이 태어난다. 그만큼 꽃은 정신의 창조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 있기에 신들이 태어나고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꽃들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들인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꾸고 꾸민다 해도 사람의 외형 자체가 꽃보다 아름다울수는 없다. 사람이 꽃과 같이 아름다울 때는 꽃의 본질을 닮을 때이다. 꽃은 사랑이다. 미래를 위한 실존적 사랑이다. 따라서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라 할수 있다. 우리들의 삶이 사랑의 꽃향기가 가득 품어 마음의 향기로 빛나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도 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물러갈 때가 되면 스스로 꽃잎을 떨어뜨리고 다음에 필 꽃자리를 양보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눈부신 색깔과 맑은 향기로 가득 채우다가도 때가 되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는 꽃을 본다. 그 단호함에 때론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꽃은 자연의 섭리를 결코 거스리지 않는다. 가야 할 때를 알고 실천하는 그들의 뒷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끝까지 추한 그림자를 떨구기도 하는 인간들에게 비하면 얼마나 깔끔한 모습인가……이는 곧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살아야 되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대한 명제까지 준다.

때로는 이러한 꽃들을 우리가 사는 동안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더 애틋하고 예쁘다. 순간 피었다가 저버리는 꽃은 꼭 오늘 하루를 닮았다. 오늘이 내 생애 단 하루인지도 모르고, 금방 저버릴줄도 모르고 종종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곤 한다.

무럭무럭 자라서 애쓰며 피어날 자신이 얼마나 예쁘고 귀한 존재인지도 모르고, 사는게 바쁘다고, 힘들다고, 바닥만 보고 걷다가 그럭저럭 그냥 하루를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속상한것, 힘든것, 잠시 내려놓고 한번쯤 온 천지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이나 정원에 피어난 꽃들에 눈길을 맞추고, 짙은 향기도 흠흠 맡아보면 좋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4/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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