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을 보람있게 산다는 것은…..

<김명열칼럼> 세상을 보람있게 산다는 것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이 물음에 언뜻 떠오르는 대답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때 행복이라는 것은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고 막연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행복인가.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행복의 기준과 내용이 서로 다를 것이다. 즉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복의 중요한 보편적 조건으로서 삶의 보람을 생각할 수 있다. 보람이라는 말은 순 한글이면서 그 의미가 오묘하다. 한 일에 대한 좋은 결과나 효력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보람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회적 성공이나 출세하고는 다른 뉘앙스의 말이다. 현대인들은 흔히 성공만하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성공을 향해 모든것을 몰입하며 전력 투구한다. 그런데 갖은 노력을 다하여 스스로 원하는 바를 성취하고 명예와 부를 얻어 소위 성공했다고 하나, 막상 삶의 무의미성이나 고독, 허전함이나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를 보게된다.

우리 인생에서 희열과 행복을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보람이다. 보람은 스스로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할때 그 과정이나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화가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캔버스 앞에 설 때, 작곡가가 좋은 노래를 지으려고 전심전력으로 몰두할 때,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밤낮으로 희생할 때도 삶의 보람을 느낀다. 보람은 애증과 고난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고 기쁨과 환희가 될수도 있다.

자기 삶에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 허무의 감정과 공허감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생활의 활력과 기쁨을 상실케 한다.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고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할지라도 보람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가 얻은 성취는 텅빈 자아 앞에 그 의미가 허물어져 버릴 뿐이다. 한 해 농사에 정성을 쏟은후 논두렁에서 황금빛 벌판을 바라보는 소박한 농부의 마음에도 비길수 없는 보람이 충만할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할때 결코 인생의 허무주의자가 될수 없다.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먼저 생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보람있는 생은 성공한 삶보다 더 가치있고 행복하다.

나는 매일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 글을 쓰는 작가들은 자신을 위해 쓰고, 나 자신은 매주 신문 지면을 통해 애독하여 주는 독자들이 계셔서 글을 쓴다. 또한 지구촌 곳곳 어디선가에서 내가 써 올린 글을 읽어주시는 수많은 독자들이 있어서, 그 독자들과 멋지게, 깊숙이, 서로의 마음을 통해 공감과 감정, 느낌, 친밀감 등을 나누고 교감하는 것은 보람을 갖게 해주고, 새로운 글쓰기에로 나서는 동력이 되고 있다. 요즘은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많이 머물며 읽고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지만, 사실이지 신문 칼럼을 쓰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매주 한국에서 발행되는 중앙 일간지와, 10여년 전부터 본보 플로리다 코리아에 칼럼을 쓰면서 앎의 곤핍감과 더불어 글쓰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사유의 맥락이 막히거나 끊길 때는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고, 어느 때는 조급증이 생겨 오줌이 마려워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리기도 한다. 그러고 저러고 하다 보면, 다시 몇줄을 써서 이어가고, 그렇게그렇게 사유의 맥락이 다시 살아나 이어져서 한편의 칼럼의 글이 완성된다. 칼럼을 마무리해서 송고할 때 마다 망설임도 없지 않아 생겨났고, 미천한 앎이 만 천하에 드러난다는 부끄러움도 덜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20여년동안 매주 빠짐없이 신문, 주간지, 기독교신문 등에 칼럼의 글을 꼬박 꼬박 써왔는데, 돌이켜보면 그 어려운 신문칼럼 쓰기를 매주 써 올린 것이 내 스스로가 대견스럽게 생각되기도 하다.

우리들 삶의 보람이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자기를 던질 때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사람들은 생의 보람을 각자가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들은 삶의 보람을 여러곳에서 찾고 있다. 돈을 모으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누리고, 자신의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고 등등…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보람이나 의미 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두고 자신의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엄동설한의 강 추위속에서도 시장바닥에 앉아서 노점상을 벌여놓고 비린내 나는 생선을 만지면서 파는 아주머니의 삶이 훨씬 더 가치롭고 삶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식당에서 그릇을 닦는 여인의 모습이 고통스럽고 아픔이 있어 보이지만 그 고통은 분명한 의미가 있는 고통이다. 남에게 괄시 천대를 받고 길거리에 앉아서 생선을 주무르고, 남들이 먹고 남긴 더러운 밥과 반찬의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설거지 하는 그러한 생활 자체가 능욕 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들의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삶의 목적의식이 분명 하기에 더욱 가치롭고 나름대로의 보람과 행복을 동반한 삶일 것이다.

사전에 보면 사는 보람은 ‘세상을 사는 만큼의 힘, 살아있는 행복, 이익, 효험’이라고 나와 있다. 이것을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와 같은 외국어로 번역한다면 ‘살만하다, 사는 가치나 의미가 있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재산가가 자신을 ‘억대 거지’라고 표현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의 가난을 면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자신을 ‘마음의 병자’라고 표현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지닌 사람도 자신의 인생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남이 들으면 배부른 푸념이라고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외형적인 성공이나 성취가 반드시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는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직 성공과 성취만 중시하는 목표 제일주의 경향이 강하지만 실제 인생에서는 성공과 성취 이후의 삶을 어떻게 펼쳐 가는가에 따라 인생의 전체적 의미가 달라진다.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기쁨과 보람으로 직결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공과 성취는 개인적인 차원의 이룸이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남과 경주를 하여 자신의 목표를 이뤄 낸다. 돈을 벌고, 부를 이루고, 자격을 얻으며, 명성을 얻는 일이 모두 그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성공과 성취를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뒤부터는 자신의 전문성을 세상과 공유하고 나누는 일에 써야 한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은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의사가 된 사람은 자신의 의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해야 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즈의 신념으로 착한 일을하면서도 물 위를 걷듯 발자국은 남기지 않고 부와 권력, 명성에 대한 책임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눌 줄 모르는 재산은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이바지 할 줄 모르는 전문성은 단지 돈을 버는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

성공과 성취는 세상으로 나아가 이바지하고 기여해도 좋은 훌륭한 자격을 의미한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을 세상에 나누는 일에 골몰하는 건 그것이 성공과 성취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진 차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적 가치로 바꿀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과 보람이 있고 그것은 세상을 밝히는 광휘로 되살아난다.

세상에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세상을 밝히는 발판이나 거름으로 삼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래서 부와 명예를 얻고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 자신 안에 갇힌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인생의 기쁨과 보람은 성공과 성취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을 발판삼고 거름삼아 세상에 이바지 하고 기여할 때 비로서 온전한 생명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그것이 나눔이고 그것이 공존이다. 나눔을 통한 공존, 공존을 통한 나눔은 생명계의 근원적인 그물망이다. 반드시 성공하고 성취해야만 나눔과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게 아니다.

자신의 하는 일의 의미를 개인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삼으면 보람과 기쁨의 근거가 절로 눈을 뜬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낱 단위에서 출발하지만 나눔과 공존의 의미에 눈을 뜨면 ‘작은 나’는 죽고 모두가 하나가 되는 우주적 자아가 눈을 뜬다. 나누는 마음, 그것이 곧 모든것을 여는 마음이며 보람이다. 베푼다는 건 자신에게 필요 없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2024년, 금년에는 약소하나마 나눔의 성의를 베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따뜻하고 보람된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세상의 모든 분들이 금년에는 보다 행복하고 건강하시며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운데 베풀고 나눔 속에 보람을 느낄수 있는 즐거운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90/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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