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청풍명월(淸風明月)의 아름다운 가을에…..

<김명열칼럼> 청풍명월(淸風明月)의 아름다운 가을에…..

내가 태어난 곳은 충청도다. 태어나기는 충청도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던 햇수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태어난 고향, 본적이 충청도라서 충청도 사람이다. 내가 충청도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나의 명칭 뒤에는 언제나 충청도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식어가 따른다. 그래서 흔히들 지칭하는 말로 멍청도 사람, 또는 충청도 핫바지라고들 하기도 한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 그들은 농담조로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듣는 입장에 놓인 나로서는 그다지 유쾌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 토박이인 나의 집사람도 가끔씩 농담조로 나에게 멍청도 양반이라고 놀리곤 하는데, 사실 어느 때는 내가 생각해도, 나의 말이 좀 느리고 행동이 굼뜨다 보니, 그런 나를 보고 하는 농담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말은 느려도 동작은 빨라유” 군대의 어느 중대장이 행동이 굼뜬 충청도 출신의 어느 사병을 힐책하자 그 병사가 상관인 중대장에게 이렇게 항변(?) 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충청도사람을 비하(?)하고 놀리지만, 그 옛날 조선시대에서는 충청도 사람들을 평하기를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비유했다. 즉 이 말의 뜻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의미하는 말이다.

참으로 멋스럽고 맛깔스러운 표현이다. 때문에 유유자적 하며 풍류를 즐기는 시인 묵객들의 시(詩)속에는 으례히 단골처럼 등장하는 시구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이러한 청풍명월이란 아름다운 사자성어가 어디서 나오고 유래됐는지 그 어원을 먼저 알아보고자 한다.

조선초 건국시기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정도전(삼봉)에게 풍수지리에 입각한 조선팔도 인물평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정도전은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거울속의 미인처럼 우아하고 단정하다), 평안도 산림맹호(山林猛虎=숲속에서 나온 호랑이처럼 무섭고 용맹스럽다). 황해도 춘파투석(春波投石=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 요즘 말로 하면 풍파, 격변을 많이 겪은 지역), 강원도 암하노불(巖下老佛=큰 바위아래 있는 부처님처럼 어질고 인자하다), 충청도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과 큰 달처럼 부드럽고 고매하다), 전라도 풍전세류(風前細柳=바람결에 날리는 버드나무처럼 멋을 알고 풍류를 즐긴다), 경상도 송죽대절(松竹大節=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굳은 절개와 선이 굵고 우직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도전이 언급한 8도 사람들의 품성에 대한 평은 이와 같을 것이다. 즉 경기도 사람은 무척 영리하며 실속있는 사람들이고, 충청도는 결백하고 온전한 성격, 포용성이 있는 사람들이고, 전라도는 부드럽고 멋을 알며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 경상도는 굳굳하고 대쪽 같은 품성의 사람들, 강원도는 산골에서 살아서 착하기만 하고 진취성이 부족한 사람들, 황해도는 바람에 의한 파고(波高)인지 돌에 의한 파고인지 격변을 겪으며 힘들게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 평안도는 용맹스럽고 사나운 사람들. 그는 이렇게 팔도 사람들의 인물평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성계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조 이성계는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어서 말해보라고 재촉하였다. 그의 재촉에 못 이겨 정도전은 머뭇거리며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이옵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이성계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벌개졌다고 하는데, 눈치 빠른 정도전이 이어서 말하길 “그러하오나 함경도는 또한 석전경우(石田耕牛)올시다” 하니 그제야 용안에 희색이 만연해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전투구라는 말은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강인한 함경도 사람의 성격을 평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 사납게 싸우는 모습이나, 체면을 돌보지 않고 이익을 다투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에 가장 리얼하게 표현해주는 상황이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을 보면 이전투구와 같은 가장 적나라한 말의 표현에 부합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들이다. 여당 야당이 개처럼 서로 물어뜯고 물리고, 서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늘도 싸움박질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한편으로는 사법 리스크에 몰린 야당대표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여당과 검찰에 맞서 이전투구 하는 야당 의원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쨋거나 정도전이 이성계의 벌개 진 얼굴모습을 보고 다시 보충 설명해 표현한 말이 “석전경우”인데 이 말은 ‘자갈밭을 가는 소’라는 뜻으로,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 한국의 돌아가는 정치판을 보면 참으로 이전투구 양상이다. 서로가 권력을 움켜쥐고, 뺏으려고 난리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루소는 일찍이 “권력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갈파했다. “인간의 경제적 필요에는 만족이란 것이 있지만 권력 추구에는 영원한 만족이 없다”라고도 했다. 문제는 끝없는 인간의 권력욕이 숱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손에 쥔 모래”로 비유했다. 서로에게 여유를 주면 오래 머물지만, 너무 강한 소유욕으로 꽉 움켜쥐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만다는 것, 권력 또한 그렇다.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그 만큼의 강도로 손에서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이러한 양태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생활 전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할 뿐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충청도 사람을 비유하여 청풍명월 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기는 이러한 청풍명월의 뜻대로 한국의 정치인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 참고로 청풍명월 이란 성어의 한자풀이에 대해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청, 맑을 淸이란 한자는 맑다는 뜻이다. 이 청은 청풍명월에서 맑은 바람을 의미하며, 마음이 깨끗하고 결백한 성격을 상징한다. 풍(風), 바람 풍이란 한자는 바람을 의미한다. 이 풍은 청풍명월에서 맑은 바람을 상징하며 세상을 풍자(諷刺)하는 시인들의 명석한 정신을 상징한다. 그러한 시인들은 청풍명월과 같이 시(詩)를 통해 사회의 불합리함을 깨닫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명(明)이란 한자는 밝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명은 청풍명월에서 밝은 달빛을 상징하며 시인들의 지혜와 영감을 나타낸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고 개선하려 노력했다. 월(月)이란 한자는 달을 의미한다. 이 월은 청풍명월에서 명월을 상징하며 시인들의 신념과 열정을 나타낸다. 시인들은 그들의 열정과 철학을 담아 시를 창작했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어서 청풍명월 이라는 성어는 그 뜻이 매우 아름답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성어의 기원은 중국시인 이백(李白)의 작품인 양양가(襄陽歌)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에서는 높은 산에 올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감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청풍명월 이란 성어는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결백하고 온건한 성격을 의미하며, 둘째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논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두가지 의미는 청풍명월이 지닌 아름다움과 깊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좀 전에 서술한 이백의 양양가를 통해 비롯되었으며, 이 시에서 나타난 청풍명월은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플로리다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뜨겁게 내려쬐던 햇볕도 많이 식어지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맑은 바람에 기분마저 맑아진다. 파랗게 펼쳐진 하늘은 파란 물감을 쏟아 놓은 듯 새파랗다. 밤이 되면 휘영청 밝은 달이 웬지 모를 서글픔과 그리움에 마음을 시리게 조여온다. 누군가 이러한 가을을 청풍명월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81/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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