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이 가을에는……………!

<김명열칼럼> 이 가을에는……………!

9월이 시작된지도 며칠이 되었다.

가을이 시작된 9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폭염과 무더위는 떠나갈 기색도 보이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 플로리다의 가을은 아직도 요원하고 멀기만 하나보다. 지나간 10여년전, 내가 이곳 플로리다로 이사 오기 전 살았던 시카고는 9월달이 되면 가을의 색깔이 여실히 드러난다. 무성하게 자라며 청춘을 구가했던 모든 초목들은 성장의 몸짓을 멈추며 가을을 맞이할 노랑과 주황, 갈색 등의 여러가지 엽록소를 칠해줄 채비로 부산하게 법석댄다.

매년 이맘때 9월이 되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찾아가던 미시간주의 포도밭 농장이 그리워진다. 시카고에서 100여마일 떨어진 이곳 Bridgeman시 동쪽 10여마일 지점에 는 서울의 여의도 면적 열배도 넘는 드넓고 크나큰 과수원 농장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에서는 6~7월이 되면 Blueberry, 8월이 되면 복숭아, 9월이 되면 포도, 10월이 되면 사과, 등등의 각종 신선한 과일들이 계절 따라 줄이어 영글어 익어 삶에 지치고 힘들어 하는 도시인들의 입맛을 자극시키고 돋구어 준다.

이곳의 과수원을 내가 즐겨 찾는 이유는 유독 과일을 얻기 위해 가는 것 만은 아니다. 봄에는 과일나무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을 보기 위해서이고, 여름철엔 싱싱하게 열매를 맺고 자라나는 과일들의 싱그러운 모습들이 좋아서이고, 가을이면 주렁주렁 열린 과일과 함께 알록달록 곱게 물들여 저 단풍이 들어가는 과수나무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기 위해서 이다.

어쨋거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서 마음속과 상상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온 가을을 음미해 본다. 무르익어가는 희망, 풍성한 꿈으로 가득한 파랗고 높은 하늘을 그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뜰에 나아가 가슴을 열고 가을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무더위에 시달리던 고통을 덜어주는 여름의 끝자락, 밤낮없이 숨소리도 거칠게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에어컨소리도 이제는 조금씩 줄어들 것 같다. 모든 창문과 출입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틀며 찜통더위를 이겨내다 보니, 매달 받아보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집사람의 비명소리는 가을이 오는 소리에 이제는 어느 정도 사라지기를 기대 해본다.

아직도 한낮이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예년에는 겪지 못했던 지독한 폭염과 무더위가 올해에는 유난히도 길고 뜨겁게 지난 3개월여 동안 우리들을 괴롭혔다.

낚시를 참으로 좋아하는 나인데, 금년 여름에는 매일같이 낮의 온도가 90여도를 유지하다 보니 아예 엄두도 못내고 집안에서 방콕 신세로 지내고 말았다. 걸프만 및 나의 집 앞 바닷물 온도마저 90도가 넘다 보니 물고기들은 물이 뜨거워지니까 아예 물이 얕은 육지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아서 고기 구경도 하기가 힘이 든다.

날씨가 선선할 때는 집앞 바닷가에서 어른 팔 길이 보다도 더 큰 놈을 종종 낚아 올렸는데, 날씨가 더워지고 뜨거워지면서 고기 구경하기가 처녀 수염 보기보다 더 힘들어졌다. 녀석들도 날씨가 너무 무덥다보니 깊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서 더위를 식히고 있나보다.

이렇게 여름은 떠나가기가 싫어서 끈질기게 미적거리고 있지만, 저 윗쪽지방 일리노이,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주의 들판 벌에는 오곡(五穀)백과(百果)가 익어가는 가을향기 가득한데,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가을노래 한곡조를 불러보고 싶다. 그냥 들으면 뭔가 부족하고 허전한 것 같아서 따끈한 차라도 한잔 하면서…….. ‘아 ~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 지나간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이하 생략~’.

일제말기 암울했던 시절 가수 고복수씨가 부른 가을이 오는 소리 ‘짝 사랑’이다. 가을은 기쁨의 계절이요 땀 흘린 보람을 누리는 계절인데, 여름내내 그늘에서 이슬만 먹고 울던 매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알알이 익어가는 가을 들녘에는 땀흘려 가꾼 풍성한 수확을 즐기는 농부의 즐거움이 있고, 추수에 바쁜 농기계 소리만이 요란하니 그것이 가을을 부르는 소리처럼 들린다. 가을이 오면 먼 옛날 고향집 뒷산 밤나무에서 밤새도록 뚝 뚝딱 떨어지는 알밤 소리가 들리면 새벽잠을 설치며 알밤을 줍던 유년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여름날, 그렇게 무성했던 나뭇잎은 힘을 잃어가고, 오색찬란한 단풍이 들때,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서글픔이 밀려오는 가을, 우리의 인생도 흘러가는 계절, 저렇게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덧없이 가버리겠지……! 올해도 어김없이 기러기 떼는 날아오고,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일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들리는 가을 밤, 둥근 달을 바라보면서 가는 세월, 살아온 추억을 그려보는 때가 오겠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떠나기 아쉬워 슬피우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하고 행복한 가을이 되기만을 손 모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이미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온 이 가을은 멀쩡한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허전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지는 낙엽이 그러하고 불어오는 바람 또한 그러하며, 나이가 들수록 가을이 주는 상념은 더욱더 그러 하리라. 나이 탓으로 돌리기에는 좀 그러하긴 한데…….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바라만 보아도 사색이 많아지는 계절, 나에게 다가오는 것 보다는 떠나가는 것이 많아서일까, 저물어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잔함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온갖 꽃을 피우고 온갖 새들이 노닐다 간 숲속의 나무들도 하나둘씩 노랑과 갈색으로 변하고, 끝내 한잎 두잎 떨어지는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가 산다는 건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게다.

대자연의 순환 이치가 어디 자연뿐이랴. 젊었을 때는 젊음인줄 모르고, 사랑할 때는 사랑인줄 모르며, 지나간 세월 속생의 뒤안길을 더듬어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으나, 묵묵히 걸어온 저 길 위에 핀 겸손 하면서도 소담스러운 가을꽃을 보노라면 그래도 성실하게 살아온 날들의 일과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리라. 피었다가 지는 것이 저렇게 아름다운 꽃들만이 아니고, 언제나 푸르를 수 없는 것이 저러한 잎만이 아니더라. 당신과 나의 사랑이 그러하고 당신과 나의 세상사 모든 인생이 그러하니, 꽃은 져도 열매를 맺고 잎은 늙어도 거름이 되나니 어찌 모든 것이 허무 하다고만 할까, 하늘에 떠있는 태양이 가장 고울 때는 노을이고 잎이 가장 붉을 때는 가을인데, 어찌 우리들의 인생이 서글프기만 하리오.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유일 신이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알 수는 없어도, 생의 오묘한 의미가 이 가을에 있으니 어찌 이 가을을 외롭다고만 할 수 있을까…….

가을은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시상에 젖어 한수한수 적어보았다.

한자로 가을을 뜻하는 추(秋)자는 벼(禾)가 불(火)옆에 있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뜨거운 햇빛에 익은 벼를 거둔다는 의미로 새기면 좋지않을까? 란 생각이 든다. 우리들 곁에 찾아온 가을을 붓이 있어 그린다면 무슨 색깔로 그려야 좋을까? …… 꽃보다 더 화사하게 붉게 물든 나무를 보면 가을은 울긋불긋한 단풍색으로 우리의 망막에 다가온다. 가을은 봄보다도 더 붉고 화려한 색깔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양의 우리 조상들은 가을을 백색으로 표현했다. 백색이라면 겨울의 하얀 눈 색깔이 떠오르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가을은 백색, 겨울은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가을은 어느듯 한해가 저물어가는 계절이다. 마치 서쪽으로 해가 질때 황혼이 세상을 물들이듯, 가을은 단풍으로 온 산을 물들이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계절인 것이다. 백색은 서쪽을 뜻한다. 나이가 들면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듯이 흰색은 거두어들이고 저물어 가는 색깔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풍놀이에 마음이 들 뜨기도 하지만, 고독과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을 적시는 계절이기도 하다.

춘여사추사비(春女思秋士悲), 봄의 여인은 사랑에 설레지만, 가을의 남자는 슬픔에 젖는다. 또 저무는 한해를 보면서 이루어야 할 일을 못 이루고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는 남자의 비감한 심정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올 가을엔 무엇을 생각해 볼까?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서점의 도서 판매량은 1년중 가장 낮은 시기가 가을이라고 한다. 모두들 여행과 단풍놀이에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고단했던 여름의 노고를 뒤로 하고, 거두어들인 풍요를 만끽하면서도 왠지 쓸쓸하고 허무해지는 이 가을에, 우리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면서 앞을 향해 나갈 스스로를 추슬러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73/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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