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8월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달.

<김명열칼럼> 8월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달.

진 초록색 물감을 엎질러 놓은듯한 대지 위에 뜨거운 태양빛이 그늘을 부르며 퍼져가고 있다. 강렬한 햇빛에 반사된 청자빛 하늘과 햇살을 머금은 초록의 이파리들이 영롱하게 싱그러움을 자랑한다. 굴절없이 골고루 스며드는 햇살 파편은 우리의 생 속에 응달진 아픔과 고통, 슬픔들을 말려버리고 부끄러운 거짖이며 위선과 부정을 태워버리느라 혼신을 다한 빛 뿌림에 여념이 없다.

초록 내음을 실어 나르는 그늘속의 선들바람도 흥에 겨웠고, 세상은 온통 전부가 다 푸르고 풋풋하고 싱그럽기만 하다. 초록에 잠겨있던 이름 모를 야생화도 해 맑은 눈빛으로 누가 이토록 싱그럽고 아름답게 온 천지를 초록색깔로 입혀버렸을까 두리번 거린다. 온통 세상이 초록색 천지라서 시선 둘 곳을 잃는다. 초록 숲에서 태어난 바람까지 싱그럽다. 세상천지가 푸르름이 넘쳐나고 초록의 대 향연이 펼쳐진다. 초록 특유의 차분함으로 익어가는 성숙한 여름의 절정, 8월이 익어가고 있다.

우리 동네 마을 커뮤니티 센터 야외 수영장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더위를 피해 몰려들은 인파로 시끌벅적 왁자지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퍼져 나간다. 유난히도 무더운 올 여름은 덥다 덥다 너무나 덥다 하면서도 이 무더위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듯 물장구를 치며 외치고 있다.

사람들마다, 해마다, 계절마다 똑같으게 반복되는 순환속 한계속에서 각기 다른 계절의 얼굴을 각자 방식대로 맞이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도 매일 매일이 똑같으며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판박이 일상 속에서도 조금씩은 구별된 모양의 삶을 꾸려나가며, 이렇게 계절이 주는 소통방식에 집중하며 표정을 살피고 관찰하고 숨결을 느끼면서, 때로는 그때 그때 주어진 환경과 계절의 변화와 순환을 음미하며,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몸으로 느끼며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성숙된 여름의 정점, 8월의 초록도 이제는 잠깐인 듯싶다. 9월이 되면 이 초록들의 성장은 멈출것이고, 그러한 계절의 환승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이렇게 무작정 초록만을 지켜낼수는 없는 것, 세월과 계절의 흐름 앞에 공손히 양보하며 머지않아 다가올 9월에게 떠나갈 인사말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

어머니 같은 비와 아버지 같은 햇살이 최적의 농도로, 조명으로, 초록색 푸르름의 절정속에 계절의 순환은 어길수 없어, 보이지 않게 환승의 길을 터주고 있다. 이렇게 짙푸름을 추구하는 초록빛 세상에는 어떠한 결격사유도 누락도 없다. 이러한 푸르름과 젊음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이 성숙하게 익어가면 실과는 알알이 여물며 결실을 맺을 것이고, 곡식 또한 알곡을 만들어가며 행복하게 자라고 있다. 초록에 잠겨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도 기쁨의 잉태와 충만을 기원하게 된다. 한 해의 반을 넘긴지가 벌써 두달이 되었고, 이렇게 어느듯 올해도 훌쩍 반을 넘기며 내리막 길로 접어들어 달려가고 있다.

세월은 쌓여가는 것이다. 자기의 사명을 어김없이 완수 하면서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미치니 ‘사명이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세월에도 주어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봄은 봄의 사명이 있고 여름은 여름의 사명이 있으며 가을은 가을대로의 자기의 역할이 있다.

싱그럽고 아름답게 느껴졌던 봄, 인간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없이 그 봄은 새싹들을 움틔우는 사명을 다 하였다. 무덥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여름, 너무나 무덥고 땀이 난다고 사람들이야 짜증을 내든 피서하러 도망을 가든, 묵묵히 그 여름은 모든 초목들을 무럭무럭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게 해 주는 사명을 다 하였다.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은 가을대로 탐스럽고 알차게 열매들을 영글게 하는 사명을 다 할 것이다.

우리는 어찌 세월을 흘러간다고 탄식만 할 수 있을까. 세월은 덧없는 것이라고 말 할수 있을까? 그러나 세월은 쌓여가는 것이다. 자기의 사명을 어김없이 완수하면서 차곡 차곡 쌓여가고 자라는 것이다. 자기의 사명을 찾지 못하고, 자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며 세월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그 세월이 덧없게 생각될지 모른다. 더우기 자기의 사명을 찾아 정진하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를 생각할때 ‘덧 없는 세월’이 더욱 보편적 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세월은 덧없는 것일까? 실은 그렇게 말하는 우리네 인생이 덧없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자기 반문을 하면서 우리가 안고 가는 이 8월을 생각해 본다면 뭔가 소중한 교훈을 얻을수 있을것만 같다.

우리가 맞은 이 8월에 8이라는 숫자를 대상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동양의 신화와 종교적 상징에서 8은 중요한 숫자이다. 중국의 주역(周易)에서 8괘(卦)는 태극(太極), 음양(陰陽)의 원리에 이어 사상(四象)을 세분화 한것으로, 8괘는 건(乾 하늘), 태(兌 못), 리(離 불), 진(震 우레), 손(巽 바람), 감(坎 물), 간(艮 산), 곤(坤 땅)을 의미한다. 유교는 공자가 죽은 후에 여덟파로 나뉘어졌는데 이를 8유(八儒)라 한다. 또한 사람이 살아가며 몸에 익혀 닦고 지켜야 할 여덟 덕목을 8덕(德) 이라고 한다. 이를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충(忠), 신(信), 효(孝), 제(悌) 이다.

한편 불교에서 해탈의 수레바퀴는 8개의 바퀴살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의 원인인 탐(貪), 진(瞋), 치(痴)를 없애고 열반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행의 여덟가지 방법을 팔정도(八正道) 라고 한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의(正義),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情進) 을 말한다.

석가가 생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낸 여덟가지 변상(變相)을 팔상(八相)이라 하며, 이 세상에서 겪는 8가지 괴로움을 8고(八苦)라고 하는데 이는 생고(生苦),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 애별리고(愛別離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말한다.

성경에서 8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재생과 부활의 수로, 구세주와 인류 전체를 상징하며 새로운 세대를 상징한다. 창세기 (7:13)에 대 홍수가 닥쳤을때 인류를 멸망시킨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여 구제함으로써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였다. 이때 노아의 목선 방주에 들어가 목숨을 건진 사람은 오직 여덟사람 뿐이었다. 유대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가 생후 8일이 되었을때 할레를 베푼다. 물론 아기 예수도 마찬가지로 여드레째 날에 할레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8의 핵심은 바로 ‘참 행복’에 있다.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산상 설교(마태 5~7장)중에서 제일먼저 여덟가지의 참 행복에 대한 행복선언(마태 5장 3~10절)을 하신다. 이는 우리 모두를 구원과 부활의 새 생명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는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서 나온 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8월(August)은 이렇게 생겨났다. 영어로 August…… 줄리어스 시저(율리어스 카이사르) 의 이름을 딴 7월 (July)이 2월에서 하루를 뺏어와 31일이 되자 아우구스투스 도 2월에서 하루를 뺏어와서 자신의 달 8월도 31일로 만들어 그로인해 2월은 28일이 되었다고 한다.

탁상 위에 놓인 달력을 보니 이달 23일이 처서가 된다. 처서는 일년 24절기중 열 네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며 가을이 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난 다음 맞는 절기이다. 처서는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더위는 서서히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폭염이 지속되는 요즘 빨리 선선한 처서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풍년이 들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 간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더 이상 안 큰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이 시기가 지나면 사료용으로 목초를 베어 말리고 논두렁에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이때가 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와 모기의 극성도 사라진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8월달은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1910년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병합돼 나라를 빼앗긴 경술 국치일(庚戌國恥日=8월29일)이 8월에 있다.

그리고 나라를 빼앗긴지 36년만에 선열들의 희생과 투쟁으로 일본제국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일(1945년 8월15일)도 8월에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건국 이래 대한민국이 가장 큰 치욕을 당했던 달도, 그리고 나라를 되찾아 국가로서의 명맥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된 경사스러운 달도 이 8월이었던 것이다. 8월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강국이 될수 있었다. 우리에게 영욕이 함께 하는 달이 8월이다. 8월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잊혀져서도, 잊어서도 안되는 국치(國恥)와 국경(國慶)이 있는 달이다.

우리 곁에 다가온 8월은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케 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주는 달이기도 하다. 삶의 원천은 부와 권력, 안락함이나 쾌락이 아닌 ‘삶의 의미’이며 그것이 인간 존재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자 행복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적고 싶다.

첫째,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둘째, 어떠한 일을 경험하거나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셋째,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생의 시련과 고통은 그저 우리를 힘들고 무기력 하게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인간의 가장 고결한 존엄과 가치인 ‘진정한 자유’를 실천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한걸음도 떼기도 벅찬 상황에서, 그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발자국을 내 딛기로 결정하는 그 선택, 그러한 의지 자체만으로도 아주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나 자신이 어떠한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끔찍한 역경이나 시련도,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실현할 중요한 가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69/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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