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는 꽁보리밥이 최고지………..!

<김명열칼럼>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는 꽁보리밥이 최고지………..!

짙푸른 녹색의 보리가 노오랗게 익어가며 보리 이삭이 고개를 숙일때면 옛날의 농촌은 일년 중 가장 배고픈 계절이고, 쌀독에 저장해 놓았던 쌀도 바닥이 보일정도로 대부분의 농가들은 양식걱정으로 주름살이 더욱 깊이 파이며 밭고랑처럼 골이 깊어지는 때이다.

나의 집에서 오리길이 넘는, 거의 십리가 가까운 학교 길은 어린아이 발걸음으로, 아침 저녁마다 오고 가기는 벅찬 거리였다. 학교가 끝나 오뉴월 땡볕 아래 힘겨웁고 지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면 엄마 아빠와 식구들은 모두 다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시고, 문단속을 할 필요도 없으니 대문도 사립문도 부엌문도 휑댕그렁 하게 열려있는 집은 고즈넉하기만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내가 있으면 다른 식구들은 제쳐놓고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멍멍이(바둑이)도 내가 학교에 가 있을 동안에는 식구들을 따라 들로 나가 지금쯤 어느 나무 그늘에 퍼지게 엎드려져서 낮잠을 즐기고 있으리라. 어깨에 메고 왔던 책보자기를 벗어서 마루에 밀쳐놓고 부엌으로 들어가면 바람 잘 통하는 한쪽 벽에 붙여 올려놓은, 대나무로 만든 살강 위에는 대 소쿠리에 쌀알은 보일 듯 말듯 몇 알갱이가 섞여있고, 거무틱틱한 보리밥이 모시나 삼베 보자기에 덮여 걸려 있다.

사기 밥그릇에 밥 한그릇 퍼 담아 들고 마당가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말이 보리밥이 된다. 양념된장을 찾아놓고 뒷 뜰 고추밭에 가서 통통한 풋고추와 상추 몇잎 따 가지고 와서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소반위에 올려놓으면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훌륭한 밥상이 차려진다.

비록 입 안에서는 미끌미끌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이지만 된장에 풋고추, 상추쌈을 한입에 베어 물으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대충 씹어 뚝딱 보리밥 한 그릇으로 어느새 시장기도 가시고 힘이 불끈 솟아난다.

아이들이 그렇게 산으로 들로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싸돌아다니며 여름을 보낼 때 쯤, 음력으로 7월7석이 가까워 오면 어른들의 생활도 조금은 여유가 생겨난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봄 가뭄에 물을 대어 모내기를 하느라 애를 태우고 김매기와 밭농사로 한참 바쁘다가 이제 한숨을 돌릴때면, 논 전체 가득 자란 벼들은 이삭이 배어 배가 불룩하고 통통해진다. 이른 벼들은 어느새 출수를 시작하고, 그 옛 시절에는 농약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논두렁에 들면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튀어 오르며 이리저리 날아오른다. 지난 6월에 거둬들인 보리쌀이 있으니 아직은 먹을 곡식이 있다 보니 굶어죽을 걱정은 없고 솟아오른 벼이삭을 보며 저절로 배가 부르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나의 어린시절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때의 시골에서는 바캉스나 피서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동네 어른들은 하루의 농사일을 마무리 하고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고 동네 정자(모정)에 모여앉아 긴 곰방대로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누구네 농사가 잘되었다느니 누구네 아들은 공부를 잘한다느니, 내일은 누구네 집 품앗이를 가야 한다는 등등의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고된 농사일로 하루 동안 지친 몸을 추수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음력 7월7석은 농부들에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름 명절이었다. 더러는 기르던 개와 닭을 잡아 몸보신을 하였고, 마을에서 농사를 좀 많이 짓는 사람들과 유난히 벼농사가 잘되어 풍년을 예상하는 농가들이 한 턱을 내는 날이기도 하다. 칠석날이 되면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아래 멍석을 깔고 평상을 여러개 차려놓으면 애들, 어른 할 것 없이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느티나무 주위에는 사람들로 법석을 이루었다. 이때쯤이면 뉘집에서 갖고 왔는지, 그동안 세무서의 적발이 무서워 몰래 몰래 담가두었던 막걸리가 물동이에 담겨 등장한다. 지금 세상이야 맥주도 자유롭게 만들어 마시고 팔기도 하지만, 그때는 농가에서 담가먹는 막걸리 농주(農酒)도 밀주라 하여 이만 저만 단속이 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세무서에서 단속반이 떴다 하면 농가의 이집 저집에서는 농주 항아리를 들고 숨기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어쩌다가 적발이라도 되는 날에는 세무서원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는 눈물겨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벌금이 만만치 않게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몰래 은밀히 어렵게 담근 농주를 내놓고 마을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만들어 내놓은 농주인 만큼 대접을 받는 마을사람들은 누구나 그 가치를 인정하였고 그만큼 맛도 각별하였다. 다행인 것은 웬일인지 이날만은 세무서원들도 단속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을 잔치래야 막걸리와 부침개, 감자전, 열무김치, 밀가루 빈대떡 등이 고작였지만, 어느 때는 동네사람 모두가 분담하여서 돈을 내고, 어느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잡아서 순대국은 물론 푸짐한 고추장 바베큐 돼지고기 요리도 즐기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농사를 짓던 일상을 잠시 쉬면서 이날만은 즐거운 하루를 보내었다. 이러한 잔치 분위기 속에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나서 막걸리동이 위에 둥둥 떠다니는 표주박으로 막걸리 한사발 퍼서 벌컥벌컥 퍼 마시고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히히덕거리며 낄낄대는 모습들도 가관이었다.

막걸리 잔이 돌고 흥이 오르면 또 어느새 마을 농악대가 등장한다. 농악대는 술과 고기를 낸 농가의 논두렁을 돌며 풍년을 빌어주고, 느티나무 그늘 평상에 둘러앉아 잡담을 늘어놓던 사람들 중에는 목소리 크고 창가 잘 부르는 사람이 으례 있기 마련인데, 이 사람이 구성지게 뽑아내는 ‘한 많은 이 세사~앙 야속한 님아……’로부터 농부가와 육자배기 한가락으로 하루의 잔치가 저물어 간다.

식량이 부족하고 먹고살기가 힘들던 시절이라 특히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가난한 집에서는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나 생일이 아니면 감히 쌀밥을 먹을 생각조차 못하였다. 오죽하면 전해오는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가난한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주인은 쌀독을 긁어 쌀밥 한그릇을 지어 대접했다. 손님 밥상에 오른 쌀밥을 보고 아이는 입맛을 다셨다. 어머니는 혹시 손님에게 무례하게 할까봐 아이에게 가만히 속삭였다. “손님이 밥을 남기면 주겠노라고…..” 지금이야 남이 먹다가 남긴 밥을 누가 먹겠나? ….. 그러나 그때는 조금씩 남기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님은 배가 고팠던지 조금 남은 밥그릇에 물을 부어 다 말아먹었다. 아이는 그것을 보고 그만 “다 물 말아 먹었잖아” 하면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참으로 처절하게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의 슬픈 이야기다. 가난하던 그 시절에는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이면 괜찮은 편이었고, 대부분 그야말로 채소가 전부였다. 지금은 건강다이어트 식품으로 채소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단백질과 지방질 부족에 영양실조상태인 그때로서는 고기나 생선의 섭취가 절실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집에서나 들에서 가장 손쉬운 반찬이며 안주거리가 된장에 풋고추였다. 밥 반찬으로도 막걸리 안주로도, 나무랄 데가 없을 뿐 아니라 또 손쉽게 구하여 번거로운 조리과정 없이 즉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대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풋고추를 찍어먹기는 아무래도 된장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잖아도 매운 고추를 또 매운 고추장에 찍어먹는것 보다야 순하고 구수한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 훨씬 맛있고 좋다.

또 풋고추와 된장에는 역시 꽁보리밥이래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보리밥, 미끌미끌하고 거칠거칠한 맛은 다른맛과 비교하기가 쉽지않다. 달착하게 입 안에 착착 감기는 쌀밥과는 달리 보리밥은 한참 씹어도 입안에서 따로 논다. 과거 춘궁기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가난한 시대의 고마운 음식이다. 보리죽, 보리떡, 보리숭늉, 꽁보리밥……. 지겨웠던 가난 때문일까. 눈물겨운 애환이 서린 보리밥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이런 보리밥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장년층 이상에겐 추억의 맛으로, 젊은층에겐 다이어트식으로 보리밥이 새롭게 대접받고 있다. 이렇게 보리밥이 위풍당당하게 된 이유는 건강식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안명수 성신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보리는 쌀과 밀에 비해 지방의 함량은 떨어지지만 칼슘, 철분 등과 같은 무기질과 비타민 B군은 월등히 앞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섬유질은 쌀의 5배나 되며 보리밥 특유의 섬유질 탓으로 먹으면 위에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장으로 내려가 장의 기능을 촉진시켜 장염이나 대장암의 발병인자를 제거 한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혈관내 콜레스테롤과 혈당수치를 낮춰줘 고혈압과 심장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보리밥을 자주 먹으면 방귀나 뀌게 하는 곡물로 여겨 천시했다. 하지만 요즘은 비만, 변비, 당뇨, 고혈압, 암환자에게 두루 두루 권장된다. 보리 자체가 식이섬유 덩어리여서다. 통보리 100g의 식이섬유 함유량은 21g으로 백미 1g,식빵 4g과는 비교가 안된다. 식이섬유는 금새 포만감을 줘 숟가락을 일찍 놓게 하는데다 장(腸)의 연동운동을 돕는다. 쌀과 보리를 적당히 섞거나 잡곡밥을 즐기면 변비에서 탈출할수 있다. 보리는 암 예방 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암예방을 돕는 프로안토시아니딘, 식이섬유, 셀러륨이 풍부해서다. 한방에선 보리를 발아시킨 뒤 햇볕에 말린 맥아(麥芽)를 약재로 쓴다. 곡식, 과일 섭취 뒤 배가 더부룩하고 막힌 것을 뚫어준다고 봐서다. 맥아는 식혜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식후 디저트 음식으로 식혜를 마시면 소화가 잘되는 것은 그래서다. 오래전 어린시절 지긋지긋하게 먹었던 그 보리밥이 이렇게 좋은 음식인줄은 정말 몰랐었다.

오늘 나는 집사람과 함께 한국식품점에 가서 보리쌀 한 자루를 사왔다. 오늘 저녁부터 라도 자주 자주 해먹어야겠다. 그러나 방귀가 자주 나올 것에 대비하여 교회 전날인 토요일 날은 빼고서……… 다음날 교회에 가서 방귀냄새를 풍긴다면 대기를 오염시키고 냄새의 공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께서도 방귀 냄새는 싫어하실 테니까……………!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602023053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