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이 5월에….!

<김명열칼럼> 아름다운 이 5월에….!

우리들 곁에 다가와 숨쉬고 있는 이 5월은 계절의 여왕이고 신록의 계절이다.

따스한 봄날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기다리며 꽃들이 만발하고 푸른 잎이 짙어가는 생동의 나날이다. 일년중 가장 맑고 밝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시기다.

이맘때가 되면 옛날 나의 살던 고향마을도 울굿불긋 피어난 꽃들로 아름다운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3월 중순경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시작으로 노오란 개나리, 핑크빛 살구꽃, 파아란 색의 난초, 그리고 길가에 피어난 민들레 등등 온통 이곳저곳의 산야는 봄꽃, 들꽃, 정원 꽃으로 꽃 장식을 이룬 듯 꽃동네 산동네가 피어난 각종 꽃향기로 코끝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중에 이 5월의 가장 대표적인 꽃은 산자락 계곡밑에 아름답게 군락을 이루며 군데 군데 피어난 하이얀 꽃, 아카시아 꽃을 외면할수가 없다. 시골 농촌에서는 이 아카시아꽃과 나무는 뗄레야 뗄수 없는 아주 가까운 사이이고 관계를 맺고 있는 나무다. 봄이 되면 꽃을 피워 배고프고 허기진 뱃속을 채워주고 겨울이면 안방을 따뜻하게 뎁혀주는 땔감용으로도 안성맞춤인 아주 필요하고 요긴한 나무이다.

아카시아, 이 네 단어의 글자 외래어에 상큼한 냄새가 환후처럼 진동한다. 오랫동안 망각의 창고에서 잠들었던 전설이 소스라치게 깨어나듯, 아카시아라는 말의 기억은 바위속에 깊이 박혀있는 금맥을 찾아낸 광부의 반가움처럼 내 둔탁한 의식의 저 깊은 곳을 두드린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초순부터 장미꽃에 앞서 피어나 그 진한 향기를 토해내다 이내 스러져 땅바닥에 메마른 잔해를 수북이 쌓아놓는 그 꽃의 운명….! 아카시아 꽃의 그 상큼한 향내를 떠 올릴때 가장먼저 떠오르는 잔상의 기억은, 어릴적 뒷동산에 올라 키작은 이 나무의 가시들 틈새로 잘 익은 하이얀 꽃송이를 따서 달콤한 맛과 향에 취해 정신없이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아득한 5월의 나날들이었다. 얼마나 다정하고 진한 맛이었는지 동무들은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환한 웃음꽃 속에 정신없이 꽃들을 따서 게걸스럽게 입속으로 집어넣으며 먹곤 하였다. 나란히 잎사귀 달린 가지를 꺾어 가위 바위 보로 이긴 사람이 잎사귀를 하나씩 따 내서 진 사람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겨 아픔을 주고, 그로 인해 이마가 벌개지며 아픔을 참지 못해 손바닥으로 이마를 디립다 문질러대며 마주보고 서로가 깔깔대며 웃음꽃을 피워냈던 개구쟁이 시절의 추억어린 아름다운 그 시절……….

장미꽃처럼 아카시아도 그 꽃송이의 틈새로 날카로운 가시를 숨겨두고 있지만, 장미와 달리 아카시아는 그 꽃의 향기와 빛깔로 우리를 음탕하게 유혹하지는 않는다. 아카시아는 그렇게 화장한 미녀처럼 고혹적이지도 않고 관능의 입술처럼 날카롭지도 않다. 다만 이 수더분한 꽃은 풍성한 송이 송이로 매달려 마치 쌀밥의 성육신 처럼 굶주린 뱃속을 달래주며 그 상큼한 향내로 피로한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의 심장을 청량하게 정화시켜 준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나의조국 한반도는 그 뚜렷한 사계절 가운데서 가장 찬란한 늦봄을 맞이한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의 개화로 부터 시작한 봄은 이즈음이 되면 철쭉과 복사꽃, 살구꽃에서 들녘과 강변의 가녀린 들꽃이며 풀꽃, 야생화 등등이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아름다운 자연동산의 시절이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새들이 언제부터인가 각자 각색의 톤으로 소리높여 지저귀며 울기 시작한다.

나의 고향, 충청도를 비롯한 한반도 전역에서 이 땅에서의 사철 변화는 그 어느 곳보다도 활발하고 번성하며, 낳고, 성장하고, 맺고, 죽어가는 엄숙한 자연의 순환 법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느닷없이 계절이 바뀌지는 않는다.

여러 조짐과 순서를 예년과 같이 밟으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간다. 어찌보면 5월은 이미 겨울의 끝인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여 도달한 봄의 완성인 것이다. 일년 사계절이 그러하듯 한 계절 가운데서도 생겨나고 자라고 이루어 마치는 순환은 엇 비슷 하다. 즉 이 5월은 봄의 마침표인 것이다. 열매를 맺을 나무들은 거의 모두가 5월 속에서 꽃잎을 떨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멕시코 등의 나라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고, 이 달 첫 날에는 오월제를 지내왔다. 기독교의 부활절이 씨를 뿌릴만한 철에서 비롯되었다면 오월제는 과실의 꽃이 활짝 핀 때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오월 축제는 봉건 영주의 지배를 받던 농노가 그날 하루만은 축제의 왕과 여왕을 뽑고 즐기던 백성의 날이었다. 포도와 밀을 빼앗아 가던 귀족들도 이날 하루만은 모른척 했을 것이다. 어쨋건 오월제는 나중에 유럽에서 노동자의 날로 변했고 지금도 May Day라고 일컫는다.

우리네 음력으로 치면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하는 노랫말에 따라서 좋은 철이란 대략 4월에서 오월 중순 사이가 이 계절이다. 그러나 노래가 그렇다 할뿐, 가난한 백성에게는 고되고 시름 많은 보릿고개 철이다. 보리는 자라기 시작했으나 이제 겨우 꽃이 피었고, 지금은 빨라졌지만 예전에는 감꽃 필 때 씨나락 앉힌다고 못자리를 마련할 철인 것이다. 벼농사를 지어먹던 우리네 민초들은 들풀과 벌레와 구름과 바람의 어우러짐과 변화를 잘 알고 있었고, 삶의 기쁨과 죽음의 삭막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 무렵이면 부자 집 빼놓고는 거의가 양식이 바닥난 상태다. 아주 가난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벌써 음력설이 지나고서부터 쑥 개떡이네, 칡이네, 시래기 풀이네 하며 부황에 뜰 철이다. 양식이 떨어진 백성들을 살린답시고 환곡을 나눠주던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숙종조에서 영, 정조에 이르는 연간에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굶어 죽는 대 흉년을 일곱해씩 너댓차례나 겪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은, 관가 앞마당에서 죽 배급을 받아먹던 부부의 실화에서 생긴 말이었다.

진달래가 먹는 꽃이 되고, 참꽃이라 불리게 된 것도 누천년 이래의 일이다. 어째서 이무렵에 우는 새들은 모두 굶주림과 관계가 있는지……. 진달래 필 무렵에 시작하는 소쩍새만 하더라도 배고픔에 겨운 사람들의 귀에는 솥적 솥적다 라고 들린다. 논갈이 에서부터 시작하여 물 대기로 이어지는 배고픈 봄날의 하루가 끝나고 굶은 채로 어둠속에 누운 백성들은 끝내 잠들지 못한다. 멀건 된장에 봄 쑥을 뜯어 넣어 쌀 알갱이 몇알, 보리쌀 몇 톨 집어넣고 죽을 끓여 여러식구가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허기를 달래던, 눈가에 항상 시름이 서려있는 불쌍한 백성들이 생각난다.

그렇다 이 5월은 봄의 막바지이면서 죽음 같은 겨울과 싸워 이긴 부활의 절정에 서있는 계절이다. 연록의 새잎과 함께 시작된 5월은 꽃향기 속에서 봄의 끝자락을 향해 흘러간다. 아카시아 꽃, 등꽃, 찔레꽃, 그리고 장미 까지, 막 돋아난 연록의 이파리 사이로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5월의 꽃들은 저마다의 향기를 가지고 우리들에게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꽃들은 왜 향기를 가지고 있을까?

물론 나비나 벌 등, 꽃가루를 옮겨줄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꽃들은 모양이나 색으로 꽃가루를 날라 줄 곤충이나 동물들을 유인하지만, 멀리 있는 곤충들에게는 향기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찾아오도록 유도하는 네비게이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방이나 박쥐 등 야행성 곤충이나 동물을 유인하는 꽃들에게 꽃향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꽃향기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기 위한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꽃향기란 꽃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의 혼합체이다. 공기중으로 쉽게 휘발하여 퍼져나가야 하기 때문에 향기 물질은 분자량이 작은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꽃의 모양이나 색이 같아도 꽃향기는 동일하지 않을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한다. 꽃에서 발산되는 향기는 꽃가루를 주로 옮겨주는 곤충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벌이나 나비에 비해 꽃가루 받이가 이루어지는 꽃들은 대체로 달콤한 향기를 풍기고, 딱정벌레 등과 같은 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주로 이루어지는 앉은부채와 같은 꽃은 퀴퀴하거나 썩은 냄새를 풍긴다.

하루 꽃들이 향기를 방출하는 시간도 꽃가루를 주로 옮겨주는 곤충의 활동시간과 맞추어져 있다.

즉 나비나 벌에 의해 수정되는 꽃들은 낮시간 동안에 꽃향기를 주로 방출하고 나방이에 의해 수정되는 꽃들은 밤 시간에 꽃향기를 주로 방출한다.

또한 수정의 준비가 덜 된 막 피어나는 꽃이나 이미 수정이 이루어져 더이상 꽃가루받이가 필요 없는 꽃들은 아직 수정되지 않은 꽃들을 위해 향기 배출이 억제된다.

오래전 나의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때 국어교과서에서 배웠던, 신라의 선덕여왕과 모란꽃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당태종이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에 선덕여왕이 된 어린 덕만공주는 꽃그림을 보고 ‘이 꽃에는 향기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아버지인 진평왕이 ‘그것을 어찌 아느냐?’ 고 물으니 공주는 ‘그림에 나비와 벌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선덕여왕의 총명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용비어천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가 실제로 우리집 화단에 심겨져 있는 모란꽃의 향기를 확인해본 결과 모란꽃에는 향기가 있다.

나의 집 사람은 꽃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생일이나 어머니날 등의 기념일에는 꽃 선물을 한다. 그런데 아내는 요즘의 꽃들에게서는 예전에 비해 꽃향기가 적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장미와 같은 화훼용 꽃들은 더 다양한 색과 모양을 만들기 위해 향기를 희생당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도 각 사람마다 고유의 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향기는 향수를 뿌려 만든 인위적인 향이 아니라 내면의 인품과 생각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은밀한 향기 같은 것을 말한다. 꽃과 마찬가지로 그 향은 벌이나 나비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기분좋은 향기 일수도 있고, 딱정벌레가 좋아하는 퀴퀴하고 불쾌한 그런 냄새일수도 있다.

‘그 사람을 알려면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풍기는 내면의 향기에 따라 그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 친구가 되기 때문이리라. 달콤한 5월의 넝쿨장미 향을 맡으며 나는 어떤 꽃의 향기를 닮은 사람일까? 하고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7/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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