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세상 살기가 정말로 힘드네.

<김명열칼럼> 세상 살기가 정말로 힘드네.

얼마전 나는 Sky Bridge로 낚시를 갔었다. 그곳에 가서 낚시를 하던 중 뉴욕에서 여행차 낚시를 하러 왔다는 50대전후의 한인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뉴욕은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머물고 있지만 이곳에 와 보니 마치 천국에 온것 같은 온화한 날씨에 반바지, 반소매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지방이라고 칭찬이 대단하다. 칙칙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의 뉴욕을 보다가 이곳에 와 사철 푸른 녹색의 자연동산과 한 겨울에도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과 벌 나비를 보니 뉴욕에 가고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화사하고 따뜻한 햇살, 파아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푸르른 바닷물 속에 낚시줄을 던지니 팔뚝만한 삼치가 줄줄이 낚여 올라오는걸 보느라면 세상의 힘들고 고달픈 인생고(苦)가 말끔히 사라지는 듯 했다고 한다. 이 추운 계절 뉴욕에서는 억만금을 줘도 맛볼수없는 이 손맛, 즐거운 취미생활, 보람 등등의 극치였다고 자랑이 하늘을 찌른다. 그는 이어 이곳에 비싼 여행경비 들이고 온 보람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 부부는 뉴욕에서 종업원 4명을 거느리고 조그마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데, 경기침체로 장사가 안되다 보니 렌트비와 종업원 인건비 주기가 힘들 정도로 적자운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장사는 안되고 고정적인 지출에 돈을 내야 하니, 거기에다 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는 자녀들의 학비도 꼭꼭 내야 하니, 돈은 없는데, 먹고사는 생활비조차 부담이 크다보니 사는게 여~엉 죽을 맛이란다. 그래서 생각 끝에 이럴바에는 장사도 안 되는데 인건비도 줄이고(종업원들에 게는 무급 휴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이곳 플로리다로 낚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렇게 한 열흘정도 있다가 가면 날씨도 풀리고 사람들 왕래도 원활해질 테니 지금보다는 장사가 잘 될 것 같다며, 연신 낚싯대 끝을 주시하고 있었다.

특이한 상황은 잡아 올린 삼치는 물론, 손바닥만한 작은 물고기까지 모두 배를 갈라 내장을 빼 내고 머리 자르고 꼬리 떼어내서 몸통만 갈라 포를 떠서 준비해 온 간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쨍쨍하게 내려 쬐는 햇볕에 바짝 말리고 있었다.

이렇게 말려서 가지고 가면 오랫동안 반찬걱정은 안해도 되고, 그만큼 돈도 절약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끝으로 그가 하는 말, 각종 금리와 가게 세는 오르고, 인건비조차 시간당 20~50달러를 줘야 하니 수입은 적고 지출은 많아, 정말로 사는게 너무나 힘들고 버겁다며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실토했다.

2020년 9월17일(수)일자 칼럼난에 나는 ‘살기 힘든 세상에, 나는 왜 사는가?’ 라는 요지의 글을 써 올 린적이 있다. 살기 힘든 세상에………………!

정말로 요즘 세상은 살아가기가 힘들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각종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며, 한정된 수입이나 충분치 못한 생활비로 이 어려운 세상을 견디고 버티어 나가기가 정말로 힘이 든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푸념과 한탄을 늘어놓는다. 한국에서는 종종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이나 부모님, 그리고 자녀들까지 함께 저 세상으로 가는 슬픈 뉴스들이 자주 올라온다.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들까? 그래! 산다는 건 원래 힘든 거지…….하고 체념하기도 하지만 문득 왜 이렇게 힘든 걸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무슨 안 좋은일이라도 있었나? 정말 나쁜 일, 그러니까 나의 건강과 행복에 해가될 만큼 영향력이 큰 사건이 있었나? 감정에는 다 나름대로의 목적들이 있다. 두려움과 불안의 경우, 내게 닥칠수도 있는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슬픔의 경우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내게 지금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진짜 이유가 존재하나?…….. 우리들의 인생에는 원래 즐겁고 기쁘고 좋은일 보다는 괴롭고 힘들고 안타깝고 슬픈 일들이 더 많다.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존재하는 한,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살기 힘든 이 세상을 어떻게 살것인가? 이것이 바로 인간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종교의 목적은 어떠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듯하다.

불교에서는 인생의 고통을 생로병사로 꼽고 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가지의 고통을 말한다. 그러니 지금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할수 있다.

당신은 왜 살고있지? 왜 살아? 이 말은 드라마나 연속극에서 가끔씩 들어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어느 누구에게 ‘왜 사세요?’하고 묻는다면, 그것을 듣는 상대방은 당신의 물음에 불쾌감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즉 이 말은 타인에게 부정적으로 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나 자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어떨까? ‘나는 왜 사는 가?’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산다’ ‘태어났기 때문에 산다’거나 ‘마지못해 산다’고 대답하곤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 하루하루를 사는데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나.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가 올바른 질문 일수 있겠다.

내가 어릴적에 읽었던 모든 동화들의 마지막 단골 문장은 언제나 Happy end, 즉 ‘++주인공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다. 흥부놀부전에서 흥부도 그렇고, 콩쥐 팥쥐에서도 콩쥐는 결국 행복하게 살았고, 신데렐라 역시 그러했다. 철학자 아리스 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행복하게 살기’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다. 그 외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에게나 원한다는데 이견이 없을것 같다. 이렇듯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가수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것 처럼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 값(Defult Value) 즉 기본 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한다. 고통속의 바다라는 뜻이다. 이 고(苦)가 현대 정신의학적으로 비유하면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뜻하는 디스트레스 (distress)인데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트레스다. 모든 것이 다 일체개고(一切皆苦)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고 있는 한, 고통은 항상 존재하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삶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존재한다’ 즉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고통 없는 삶일까? 아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티며 고통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또 다른 고통으로 찾아온다. 행복을 인생의 기본 값으로 생각하는 데서 불행이 온다. 항상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일까? 이 또한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행복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처럼 힘들어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행복해야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 인생에 행복이 목적일수도 있지만 행복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 인생의 기본 값인 고통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순간이라도 고통이 완화되거나 없으면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 살아가는 과정 속 순간순간의 잦은 행복이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삶이 고통스러운가? 우리들 인생의 기본 값이 고통이기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고통속에서 때때로 현재(being), 이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되기 위해 달릴 때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인생의 기본 값인 고통을 잊거나 즐길 수 있으면 그 또한 행복이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52/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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