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예수님의 헌신과 인류 구원(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려 보자)

<김명열칼럼> 예수님의 헌신과 인류 구원(아름다운 꽃망울을 터뜨려 보자)

화사한 햇볕과 살갗을 간지럽히며 스쳐지나가는 살랑바람의 훈풍, 햇볕을 받아 눈이

부시리만치 아름답게 꽃망울을 터뜨린 만개한 꽃봉오리를 보며 벅차오르는 환희의 숨

결을 가다듬어본다.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한 봄날, 기억의 중심에 놓이는 꽃의 숨결이

나른하므로 그 속에 도취해 허우적대는 나를 바르게 세운다. 만화방초 얽히어 향기를

풍기며 눈부시게 피어난 세상의 꽃들이 너무나 환하고 고와서 그리운 것들을 모두 불러모아 깨물고 싶도록 아름답고 빛나는 봄날이다.

움쑥움쑥 돋아나는 새싹과 활짝핀 꽃들의 생동 넘치는 용기를 보고 있노라면 저것들을 향해 자꾸만 살아있음의 기쁨이 손을 흔들어주는 소중한 날이다. 지극히 단순한 생명의 진리를 알려주고 떠나는 꽃잎들의 행렬이 죄악과 욕망으로 얼룩져 먼지 자욱한 세상의 길에 만장으로 펄럭일 때 마다 언젠가는 떠나가야 할 저승길의 예고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꽃들 사이로 잡초들이 수북히 자라 올라와 있다. 얼핏 보기에는 저것이 잡초인지 화초인지 구별이 가질 않는다. 저절로 자라면 잡초지만 관심과 정성, 보살핌으로 자라면 화초가 아닐까 싶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아서, 인간은 모두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서 부모의 보살핌과 스스로를 돌보고 정성과 사랑으로 자신을 가꾸어갈 때마다 아름다운 화초가 될 것이지만, 그 반대인 경우 잡초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저 꽃처럼 넘치지도 않게, 부족하지도 않은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또 그다음 날도 매일 매일을 겸손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꽃이 아름다운 건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위해 억지를 부리거나 과욕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향기로 사랑을 전하고 밝은 미소로 아름다운 꽃처럼 나 역시 겸허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공손한 마음으로 내일을 열어가며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세상의 빛이 되어 평생 사랑을 베풀고 낮아져서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고 싶다.

이곳 저곳 사방에 아름답고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은 저들 스스로 그냥 피어난 것이 아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과 공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울러 저렇게 아름답게 피어난 꽃은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벌과 나비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꽃의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해준다.

꽃의 향기가 저절로 멀리까지 퍼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멀리 그윽한 향기를 전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있어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제 잘난 멋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잘나서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기도로 길을 내어주고 보이지 않게 눈물로 길을 닦아준 소중한 분들이 있기에 당신의 오늘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내 자신이 잘나서 내가 된것은 더더욱 아니다. 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해주시며 축복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보이지 않는 그분, 하나님과 예수님의 섭리와 은총이 있은 까닭이다.

지난 4월17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장사한지 사흘만에 살아나 부활하신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위대한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죄악에서 구원하신 숭고한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을 회고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어든다.

4월을 T. 엘리엇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잔인한 4월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설명한다. 4월, 우리의 계절은 분명 자기 자신을 죽이는 아픔과 자기 자신의 몸뚱이를 십자가에 매다는 고통 그 자체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달려 계시며 무척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셨으며 고통 속에 돌아가셨다.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인류를 사망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통 받으시며 괴로워하셨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실 때 어둠이 온 땅을 뒤덮었고 찬란한 태양마저 빛을 잃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는 그분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분이 고통을 당해 울부짖을 때 하늘도 울부짖었다. 그분께서 쓰러져 피를 흘리고 괴로워할 때 하늘의 새도, 언덕위의 들꽃도, 태양도, 바람도, 바위도, 나무들도 모두 괴로워했다. 그분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아픔, 그 떨림은 하늘의 아픔, 우주에 가득한 떨림이었다. 성서에는 ‘그리고 성서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며 두쪽으로 갈라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십자가에 달린 아픔을 겪으면서 마침내 죽음으로 부활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간, 아 ~ ! 예수님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간! 그 찰나에 하늘의 문과 하늘의 꽃망울이 터지는 환희와 찬란함을, 눈부심을 볼 수 있었다.

그로써 예수님은 부활의 꽃으로 아름답고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렇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고통과 아픔을 견디심으로 찬란한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 하늘의 문이 열렸던 것처럼, 저 들길위에 한송이 이름 없는 들꽃이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 하늘도 찬란하게 열린다.

한송이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위해 자신이 몸뚱이가 에이는 아픔과 피를 쏟아내는 고통을 겪을때 하늘도 괴로워한다. 그렇다. 한송이 꽃의 그 아픔, 한송이 꽃의 그 떨림, 한송이 꽃의 그 울부짖음, 한송이 꽃의 그 절망에 하늘도 함께 한다. 한송이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면 하늘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한송이 꽃이 터지면 하늘이 터지고, 한송이 꽃이 열리면 우주가 열린다. 그리스도인들은 한송이 꽃의 떨림을 통해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고, 한송이 꽃망울의 터짐을 통해 하늘을 보고, 한송이 꽃망울의 열림을 통해 우주를 볼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될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여러분, 꽃망울이 터지듯 하여라.

당신은 꽃망울이 터지는 이 4월에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가? 아직도 그 꽃망울이 터지는 아픔, 그 고통이 무서워 혹독한 겨울 한복판에 안주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십자가의 아픔, 그 고통이 무서워 부활의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메마르고 삭막한 십자가 주변을 맴돌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길과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십자가의 아픔을 통해 부활의 꽃망울을 터뜨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한송이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셨다. 그 꽃은 우리의 삶과 생명의 빛을 밝히는 영원한 불이 되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살이 에이고 피를 쏟아내는 그 아픔과 고통을 견뎌냄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꽃망울 터지듯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맺혔던 한이 터지듯 예쁜 꽃망울을 터뜨려 새로운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하리라. 꽃망울 터짐은 우리 가슴속에, 어머니 가슴속에, 민중 속에, 민족 속에, 세계 온 인류속에 맺히고 맺힌 한이 터지는 것이다. 꽃망울 터짐은 지난날의 어두운 역사와 절망과 공포속에 갇혀있던 우리의 맺혀있던 그 응어리가, 그 한이 터지는 것이다.

우리의 꽃망울이 터짐은, 바로 우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함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대여…….! 이 봄날에 우리의 응어리지고 맺힌 한이 터지듯, 우리의 꽃망울을 터뜨려 새 사람으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부활의 꽃으로 피어보자. 십자가의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기리며…….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8/2022042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