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 인생에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일까?

<김명열칼럼> 우리 인생에 진정한 행복은 어떤 것일까?

어떤것이 생애의 행복일까?

우리네 인간이란…… 무얼 파괴하기 위하여 또 만들어내고 창조를 한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자. 어린애들이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간절히 조르다가도 막상 손에 쥐면 한참을 갖고 놀다가 싫증이 나고, 또 어느 정도 시간과 날자가 지나고 나면 버리던가 부셔버리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세상에 100% 만족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과거 세상에서 부자로 알려졌던 억만장자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얘기다. 그는 어느 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반해서 마리아 칼라스와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하다가 칼라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8년이 되기도 전에, 그녀는 주부로서 너무나 모자라고 그녀에게서 싫증을 느끼게 된다. 결국은 그녀와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과 다시 장가를 가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케네디의 아내였던 재클린과 함께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재클린과 결혼한 지 일주일도 안돼 오나시스는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하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친한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헤어질 것을 궁리하고, 파혼을 할 길이 없을까 하고 묘수를 찾는다. 허지만 이혼을 할 경우 재클린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요구하고 나서니 이혼도 못한다. 재클린이 한달에 24억원이나 되는 돈을 펑펑 쓰고 있으니 오나시스는 혈압이 오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하루하루가 지옥이고, 스트레스만 쌓여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혈압만 올리다가 결국에는 홧병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 이러한 판국에 그의 아들마저 비행기 사고로 죽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홧병에다 아들의 죽은 충격으로 그도 얼마 못가서 죽고 만다.

끝까지 이혼에 합의 않던 재클린은 오나시스의 엄청난 유산을 거의 몽땅 다 차지하게 된다.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 여자를 잘못 만나서 고민과 불행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쓰레기로 던지고 간다”고 하며 오나시스는 가슴을 치고 후회하다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떠나간다. 천사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칼라스와 살아도, 최고의 여자 재클린과 살아도 후회뿐이 남는 게 없다. 그들은 사회적 명성은 높았을지 몰라도 가정주부로서는 낙제점이었다.

우리는 오나시스의 체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또 세기적인 미녀 양귀비나 크레오파트라와 살면 행복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사회적인 명성도 좋지만, 그저 가정살림 잘하고 따듯한 마음과 사랑으로 가족들과 남편을 잘 돌볼 줄 아는 알뜰살뜰한 주부가 세상에서 최고이다.

평생을 갑(甲)으로만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퇴직하면 더 외롭게 지내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항상 대우만 받고, 남들이 만나자고 하는 약속만 골라서 만났기 때문이다. 진실된 친구들을 소홀히 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친구와의 약속이나 만남을 가벼이 여기며 혼자서 잘 난체 하며 살다가, 뒤늦게 늙어서 후회하고 친구를 찾아가지만 그 친구들은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기에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들’이다. 만약에 오늘, 우연히 마주친 친구나 지인에게 “언제 한번 만나자”는 공허로운 말만 건네며 돌아설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식사를 하던가 차라도 마시며 우정을 다지도록 하자. 아니 그러면 영영 사람 만날 기회를 놓치고 결국 평생을 외롭게 지내게 된다. 흔히들 하는 속된말로 ‘우리네 인생은 고해=苦海의 바다에서 거센 풍랑에 휩쓸리며 직사하게 고생하다 살다 가는 것’ 이라고 하질 않던가.

아무리 천재라도 뇌기능 중 70%는 놀고 있다고 한다. 최고급 핸드폰중 70%는 쓸데가 없다. 최고급 승용차의 속도 중 70%는 불필요하다. 초호화 별장의 면적 70%는 비어있다. 사회활동의 70%가 의미 없는 것이다. 집안의 생활용품 중 70%는 놔두기만 하고 쓰지 않는다. 한평생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70%는 다른 사람에게 쓴다. 아무리 재벌이라 해도 죽은 뒤에는 70%의 재산은 남이 갖는다. 결론적인 얘기는, 우리의 삶은 간단명료하다. 살아있을 적에 인생을 마음껏 즐겨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의 본질은 자신의 정서적, 정신적으로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충만감이다. 물론 물질적인 충족이 한 요소는 될수 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조건은 될 수없다. 물질의 향유에 대해 정신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어떤 욕구나 욕망이 채워져야 하는 조건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건이란 한계가 포함되면 만족의 한계가 없어지게 된다. 인간은 항상 더 높은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준을 설정하는 속성을 작동시키게 되어있다. 정신적인 충만감이 아닌 물질적인 갈망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그 만족도나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말을 하자면 쾌락의 쳇바퀴다. 물질적 기준의 행복감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또 다른 욕망을 잉태하게 된다. 곧 생활수준이 높아져서 느끼게 되는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아서 다시 더 많은 것을 찾게끔 되어있다. 우리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더 욕심을 부리지 말며 가진 것으로 즐기고 살아가자. 그래서 참된 행복감이란, 불안감이나 초조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안정과 평안을 느끼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심리적 상태다.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누리는 좋은 감정을 의미한다. 좋은 감정이란 만족, 기쁨, 즐거움, 유쾌감, 재미있는 것, 보람, 가치, 평온, 안정, 의욕, 희망 등등이다. 내가 현실에 만족하며 즐기는 것, 즉 그것이 근원적인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인가 가져야 함(Enjoy Having)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내가 이 세상에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의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일이며 가슴 뿌듯함을 안겨준다. 달리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체험하는 쾌감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믿는 마음의 자세이다. 이러한 자아 존중감은 자신이 소중한 존재로서 어떤 가치 있는 일을 할만 한 사람으로 여기는 느낌이다. 이러한 좋은 느낌의 판단은 주관적이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를 수가 있다. 그런데 행복을 욕구나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의 느낌으로 규정하면 그 행복은 지나가는 잠시의 강렬한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행복이란 남을 의식해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가하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대개들 보면 행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려는 삶은 결국 행복을 얻지 못하게 만든다. 행복은 추구하는 대상이 아닌 선택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가령 오늘 하루를 돌아보자. 행복했던 순간이 떠오르는가? 어제 하루는 어떠했던가? 행복했던 기억이 몇 번이나 떠오르는가? 우리들의 일상은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시간들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여기에서 커다란 간극, 즉 욕구불만이 존재한다. 행복은 행복한 순간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즐겁고, 유쾌하고, 기쁘고, 신나는 순간 등 긍정적 감정 상태만을 행복이라고 여긴다면 반쪽짜리 행복의 개념에 갇힌다. 더 사실대로 말한다면 90%의 행복을 못 느끼게 된다. 우리의 일상이 90% 이상 행복하지 않은 감정상태로 이루어져 있고, 가끔씩 느끼는 행복마져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에 다른 대안들에 빠지게 된다. 게임, 술, 도박, 연애, 스포츠, 강의, 커피, 수다떨기, 그중에서도 여행 등등……….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쉽게 발견한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미를 나름대로 재 해석하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문학 작가 김명열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305/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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