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신의(信義)있는 사람

<김명열칼럼> 신의(信義)있는 사람

무신불립(無信不立), 사람은 믿음(信)과 의리(義)가 없이는 일어서기가 어려운 존재이니 모든 일에서 신의를 지킬때 존립(存立)할 수 있으며, 그 신의의 근본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 자기신뢰는 성실에서 기인하며, 성(誠)은 말(言)을 이룸(成)이니 모든 언행(言行)에 지극한 정성을 다할 때 신의(信義)에 이를 수 있다.

논어(論語) 12편 무신불립, 중용(中庸) 제23장 유천하지성에 나온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신의는 참으로 중요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품위를 한층 더 고양하는 것이 바로 신의이며, 신의는 모든 언행에 지극한 정성을 다 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인품(人品)이다. 말세같이 살벌한 지금 세상에 사람간에 믿음과 의리의 격조(格調)가 존재하는 아름다운 인격이 그리운 시절이다.

아주 오랜 옛날 중국의 노나라에 미생이라는 젊은 사람이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미생이라는 사람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강물이 불어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기둥을 부여안고 기다리기를 수 시간, 결국 그 미생이라는 남자는 물에 빠져 죽었다. 미생지신(尾生之信), 이 말은 굳게 신의를 지키는 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융통성 없이 어리석게 약속을 지키는 이들을 말하기도 한다.

험난한 세상 속, 내일을 기약 못하는 변화무쌍한 시대, 과연 옛 선현들이 부르짖던 신의가 지금 세상에도 어울리는지 갈등이 생기는 요지경속이다. 쇠와 돌과 같이 맹세하여 맺은 약속이라는 금석맹약(金石盟約)은 이런 시대에는 미생지신으로 폄하될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중 하나를 꼽으라면 ‘신의’를 꼽을 수 있다. 신의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느니, 포기했다느니, 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이들에게 비난을 사더라도 우직하게 초심을 다지고 걸어가겠다느니 등등…….. 과연 이들이 지키려는 것이 신의인지는 개개인이 판단할 일이다. 비단 정치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주변을 보면 자신이 막다른 처지에 몰리면 신의를 헌 신짝처럼 버리기도 하고, 신의가 아닌데도 자꾸 그것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과연 신의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도 하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세상의 최소한의 옳은 이치이고, 서로에게 득(得)을 나눠주는 적극적인 방법이다’라고 본다.

신의, 국어사전에 보면 믿음과 의리(義理)를 아우르는 말 이라고 설명돼있다. 성경말씀에 보면,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했지만, 이는 용서와 이해, 관용을 품고 사는 종교적인 감성적 에너지의 가르침이다. 세상에서 사랑은 충만하여야 하고 이는 아끼지 말아야 할 인간 제일의 에너지임은 맞지만, 객관적인 이치에 따라 계약과 약속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구성원간의 ‘신의’가 곤고히 다져져야 한다.

스위스의 영토는 높고 험한 알프스산맥의 척박한 불모지에 있다. 지금은 국민1인당 소득이 7만 달러가 넘는 부자나라의 선진국이지만, 중세의 스위스는 생산의 기반이 전혀 없어서 살아갈 방도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스위스의 젊은이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파는 용병생활을 자처했고, 스위스 용병은 충직하고 용맹스러우며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용사들로 유명하다. 1792년 8월 프랑스 혁명군에게 프랑스 왕궁이 포위되었다. 성을 지키던 프랑스 군대는 모두 도망쳐버렸고, 황제와 황후를 지키던 스위스의 용병 786명만이 끝까지 왕궁에 남았다. 스위스용병의 용맹함을 익히 알고 있던 혁명군 대장은 그들을 회유하려 했다. “이보시오 스위스 용병들, 성을 지키던 프랑스군들도 모두 도망쳐버리고 아무도 없소, 이젠 당신들에게 급료를 줄 사람도 없고, 이곳은 당신네 나라도 아니니 프랑스의 일은 프랑스사람들에게 맡겨두고 그냥 스위스로 돌아가 주시오, 우리는 당신네들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 성문을 열고 나오면 그냥 보내주겠소”.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던 스위스용병 대장이 비장하게 뜻을 전했다. “이보시오, 우리는 스위스용병이요,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우리를 고용한 사람들을 위험속에 버리고 가버린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이제 용병으로 존재할 가치가 없어질 것이오, 이곳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할 신의이니 물러가지 않을 테면 어서 우리를 공격하시오” 결국 끝까지 성을 지키던 스위스용병 786명 전원이 옥쇄(玉碎 이 단어 자체의 의미로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대의(大義)나 충절(忠節)을 위한 깨끗한 죽음을 뜻한다)한 다음에야 혁명군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들 용병이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목숨을 다해 보호했던 그들의 고용주 루이16세 황제와 마리 앙투아네트 황후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다. 1527년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 연합군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로마를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다른 군대는 모두 스페인군에게 항복을 선언했으나, 최고의 용병으로 구성된 스위스 용병만큼은 달랐다. 187명 가운데 147명이 전사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교황을 보호하며 피신시키는데 성공을 한다. 스위스용병의 철두철미한 신의와 교황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그 약속, 그러한 용맹함과 충성심에 감동을한 교황은 이때부터 교황청 근위대를 스위스 출신 청년들로 구성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게 되었다. 목숨 이상으로 중요시하게 여기는 신의와 약속을 지킨 스위스용병들의 용맹과 충성심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의 품위를 한층더 고양하는 것이 바로 신의(信義)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신의 있는 사람일까?. 즉 나는 얼마나 신의 있는 사람일까? 스스로 나 자신을 심판대에 올려놓고 비춰보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느 때는 부딪치며, 어우러지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로 서로 분쟁이나 다툼을 하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잃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얻기도 하며, 또한 주기도하고 받기도 하는것이 우리네 삶인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있어 나름대로 목표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지만, 언제나 자신이 세워놓은 의도대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인간은 어차피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 것처럼, 여기에도 반드시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때에 따라서 자신의 주관대로 추진해야할 경우도 있고, 가끔은 한발짝 물러나 양보를 하고, 적절한 선에서의 타협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래야 예측할 수없이 복잡 다변하게 전개되는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올곧은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람을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즉 다시 말해 신의가 있는 사람은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신의를 지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생각이 각기 다르겠지만 나는 ‘약속’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꼽고 싶다. 다시 말해 이성으로서 본능을 제어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약속에 철저한 사람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신의가 있는 인물로 온전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애초에 타고난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어지지도 않으며, 삶을 살아가면서 오랫동안 쌓아온 정성스러운 수양의 산물이고 꾸준한 연마의 결실을 덕(德)이라 지칭하는 것처럼, 신의 또한 자신만의 부단한 노력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신의가 있는 사람에게서 평생 그가 일구어 닦아온 온 인내와 성취를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이 수없이 반복되어지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인 것처럼,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밋밋한 인간관계가 이어진다면 무미건조한 인생일 것이다. 어차피 내 뜻과 상관없이 시작된 인생이 아니었던가? 삶의 끝자락에 서서 뒤돌아본 인생의 여로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몫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때에는 진한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한 실망의 쓴맛보다는 보람과 영광으로 자리매김한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각자 자신을 포함하여 인연을 맺었던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삶이 ‘신의와 약속이라는 굳건한 반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그 아름다운 추억을 나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또한 같은 추억의 시간이 아닐 런지……….신의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무던한 노력으로 오늘도 우리 모두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신(信)은, 믿음과 의리는 사회생활의 기본이며 질서를 잇는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의가 없다면 사회는 무질서가 되고, 사회생활에서 신의가 없는 사람이면 쓸모가 없다. 우리는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외모가 예쁘고 뛰어나다 해도 마음이 예쁘지 않다면 그 사람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내면의 미인이요, 인격자다. 그에게는 변치 않는 우정과 꺾이지 않는 믿음, 그리고 상황에 따라 변질되지 않는 굳건한 의리가 있다. 과연 누가 그런 사람의 마음을 흐트러뜨릴 수 있겠는가? 흔히들 사람들은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과 실속을 챙기는 사람을 대립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의리를 중요시 하면 반드시 실속이 생기며 실속을 챙기려면 반드시 의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의리야말로 그 자체로도 이미 가장 실속있는 재산이 되는바 결코 둘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게도 이러한 덕목이 있는가? 이것을 바탕으로 형성된 인간관계가 있는가? 남 탓이나 하면서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변덕이 심하고 고집만 강해진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버려야 한다. 항상 내 생각과 언행을 살펴서 악을 경계하고 선을 추구하며 흐트러진 내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간다면 참된 부와 당당한 명예를 가지지 못할게 무엇인가? ……….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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