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우리들 인생과 잡초

<김명열칼럼> 우리들 인생과 잡초

고생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이 흔히 자신을 잡초(雜草) 같은 인생을 살았노라고 비유를 한다.

잡초는 주로 산과 들판에서 번식하는 잡다한 풀들을 뜻한다. 나무로 치면 잡목(雜木)에 해당한다.

그러나 잡초는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이 아니라는 뜻이지 결코 나쁜 의미거나 특정한 식물 종(種)으로 분류하는 용어는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별다른 쓰임새가 없는 잡초라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고있다. 게다가 번식력도 왕성해서 농업에 있어선 재배중인 작물의 영양소를 뺏어먹는 건 물론, 생존까지 방해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농약을 쓰거나 제초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아주 주적(主敵)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잡초의 씨앗은 기본 몇년 혹은 수십년을 땅 속에서 버티는 능력이 있어 근절하는건 거의 불가능 하다고 한다.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에 땅속 깊숙한 곳에서 영양분을 퍼 올리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땅을 섬유화시켜서 포토(表土) 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후가 건조한 텍사스의 한 과수원에서 잡초 때문에 골머리를 앓자 주변의 잡초를 아예 씨를 말려 버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극심한 토양침식과 모래바람으로 몇년치 농사를 망쳤다. 그래서 지금은 그 근방 농원에서는 과수 사이에 잡초를 그냥 키워둔다고 한다. 그리고 잡초는 소나 양을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소가 잘 먹는 풀이라고 할지라도 방목을 하는 목초지에서는 잡초가 소의 배설물을 분해해 토양이 더 기름지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를 이용해 잡초는 폭풍 성장을 해 또다시 소들의 맛좋은 먹이가 되는 것이다.

요즘 탬파 지역에는 장마철에 접어들어서 그런지 거의 매일같이 한,두차례 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온 후의 집 주위 정원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자라나 화초들의 틈바구니나 정원수 밑에서 커다랗게 웃자라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매일같이 뜨거운 태양열은 한증막 같은 습도를 유지하며 불쾌지수를 높여주고 있고, 90여도를 매일같이 웃도는 땡볕 속에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을 뽑아내기란 여간 힘들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힘들게 뽑아낸 각종 풀들, 잡초를 쓰레기 봉투에 옮겨 담으며 잠시 생각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흔하디 흔한 잡초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선택된 삶들이다. 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많은 종자들을 세상에 남기지만, 이중 극 소수만이 생명을 부지하기 때문이다. 들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콘크리트 위에 떨어져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죽거나, 땅속 깊이 묻혀 태어나지도 못하고 썪어버리거나, 구사일생으로 어린 싹을 냈지만 누군가에 짓밟혀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태어났다고 해도 모두 잘 자랄수 있는것도 아니다. 잡초 군락속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많은 양분과 햇빛,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생장억제물질을 분비해주면 식물들을 죽이거나 잘 자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외래종과도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식물들은 종족 번창을 위해 수만개에 이르는 종자를 만들고 영글면 영그는대로 떨어져나가도록 한다 봉선화 처럼 튀어나가게도 하고, 민들레처럼 날아가게도 해 되도록 멀리멀리 까지 종자를 흩 뿌린다. 천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은 어린 나이부터 종자를 맺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남은 야생초의 번식력과 생존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막상 야생초를 옮겨 심거나 재배하려고 하면 생각대로 잘 되지를 않는다.

벼를 비롯해 콩,밀 등 모든 작물도 인간이 손을 대기 전에는 볼품없던 야생초였다. 인간의 삶을 방해할 경우 잡초로 분류돼 천시당한 것이다. 가령 콩을 재배하는 동안 옥수수나 고구마가 자라면 모두 잡초로 취급받는다. 반면 야생초는 정원으로 옮겨지면 야생화, 식탁에 오르면 산채나물, 약리효과가 밝혀지면 건강식품, 술이나 음료로 만들어지면 가공식품, 한약재로 쓰이면 약초, 생명공학에선 유전자원, 두엄으로 쓰이면 유기농 자재, 공원에 쓰이면 조경식물, 빗자루로 만들면 생활용품, 지팡이로 만들면 효도상품 등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인간의 욕심과 기준에서 만들어진 분류일 뿐이다.

야생초를 야인(野人)으로 비유한다면 잡초같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잡초같은 삶을 의미하는가 하면, 원하지 않는곳에 원하지 않는 시기에 나타난 불 필요한 존재로 비유 될 수도 있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라도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거나 너무 오래 남아 있으면 곧 잡초 같은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콩과 옥수수가 모두 소중한 작물이듯이 잡초 같은 인생도 나름대로 능력 있는 인간이다. 만일 더덕 밭에서 산삼이 자란다면 무엇이 잡초일까? 분명 더덕을 뽑아내고 산삼 밭을 만들게 될 것이고 작물이었던 더덕이 잡초로 바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만들어낼 뿐 아니라 스스로 잡초가 될 수도 있다. 어디선가 무성하게 자라는 야생초도, 좁은 지구에 넘쳐나는 사람들도 모두 선택된 존재다. 우리의 삶도 수많은 야생초처럼 각자가 받은 달란트에 감사하며 하늘이 보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라.

세상에 잡초는 없다. 한국 고려대 강병화 교수가 17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야생 들풀 100과 4439종의 씨앗을 모아 종자은행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사의 끝에 실린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는 없습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 잡초였을 겁니다” 사람도 같다. 내가 꼭 필요한 곳,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산삼보다 귀하고, 뻗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다리 뻗고 뭉개면 잡초가 되고 만다. 타고난 아름다운 자질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잡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산삼이라도 잡초가 될 수 있고, 이름 없는 들풀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생각할수록 의미롭다.

내가 잘 알고지내는 지인 한분이 계신다. 그 사람은 강남의 어느 고급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자기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칭찬의 말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 지인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람중에 인사도 잘하고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사람(경비원)만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귀 동냥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그 경비원은 꽤나 큰 회사의 간부로 근무하고 퇴직하여 경비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항상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방송으로 알리면 될 우편물을 꼭꼭 직접 가정으로 날라다 주기도 한단다. 그래서 아파트내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을 좋아한다.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며 불평불만 없이 성실히 일하는 그 사람(경비원)에게 존경 감마저 생겨났다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뭔가 불만스럽다는 표정으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전직이 화려해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자리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감사하게 일하는 사람은 고귀한 분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자리에 앉았다 해도 잡초와 같아서 뽑힘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자기가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보리밭에 난 밀처럼, 자리를 가리지 못해 뽑혀버려지는 삶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우리 각자는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우리 모두 타고난 자신만의 아름다운 자질을 맘껏 펼쳐 ‘들풀’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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