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어느 노 부부의 눈물나는 이야기.

<김명열칼럼> 어느 노 부부의 눈물나는 이야기.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되어 세상을 뜨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자식이나 부모는 인간의 삶에서 대부분 거치게 되는 것이 사회적 지위 인데, 그게 그렇게 대수로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그런 지위로 사는 일도 예사롭지가 않다.

얼마전 한국의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자식들에게 짐 되기 싫다”고 하며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노부부가 음독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암에 걸리자, 투병 끝에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60대 중반의 어머니와 70대 초반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가 앓고 있는 병도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여기는 이들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어쩐지 가슴속이 아려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헌신해온 부모님들이 졸지에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경우도 종종 보고 듣게 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를 위해 그만큼의 희생을 했다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많지 않다. 나이가 들어 현직에서 은퇴하고 경제력을 상실한 채 점점 몸까지 불편해지기 시작할 무렵, 부모가 갖는 심리상태는 이런 것 이다. 젊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자식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한 부모든, 마음은 간절하나 녹록치 않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부모든, 자식에 대한 애정과 헌신적 사랑은 큰 차이가 없다. “저희들만 잘 살면 됐지 뭘……… 나는 자식한테 절대로 바라지 않고 기대지도 않을꺼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무슨 일만 있으면 자식들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전화를 걸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다가 겨우 전화를 걸고는 수화기 너머 자식목소리가 들려오면 반가운 마음에 안부만 묻다가 전화를 끊는다.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봐 입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짐작하지만, 자식들은 부모 목소리만으로는 무슨 일인지 알아내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늘 민감하나 자식은 부모에게 항상 둔감하다.

“난 아직 거뜬하다. 너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잘 살 수 있어” 모처럼 자식들과 한자리에 모일 때면 부모는 이렇게 호언장담 한다. 자식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자식은 부모에게 직설화법으로 이야기 하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간접화법으로 이야기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읽어야 한다. 자세한 번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철이 든다는 것은 계절을 안다는 뜻이다. 즉 그것은 여름을 살던 나무가 가을을 맞아 잎을 떨군다는 뜻이다. 여름은 아직 가을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은 여름을 기억한다. 철없는 여름을 품어주는 가을의 마음, 그것이 진정한 부모님의 마음일텐데…….

우리들 인생은 누군가에 의존하고, 누군가의 의존을 받아주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돌보며 살다가 나이가 들면 누군가에 의해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의존과 돌봄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인생의 수레바퀴와 같다. 학식이 있든 없든, 출세를 했든 안했든, 돈이 많고 적든 간에, 나이든 부모는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않거나 몸이 편치 않은 부모의 경우는 자식들에 대한 의존심리가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아직 건강한 부모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식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젊은시절 어린자녀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빛바랜 앨범처럼 진한 그리움이 되어 파도처럼 마음을 채운다. 노년을 지탱해주는 추억과 그리움의 상당부분이 자녀들과 관련된 것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설령 안다고 해도 자신들 또한 어린자녀를 돌보느라 자신들에게 의지하고 싶은 늙은 부모님의 얼굴을 쳐다볼 겨를이 없다. 이것이 씁쓸하고도 슬픈 우리네 인생의 자화상이다.

다음은 한국의 어느 잡지에 실린 눈물 나는 노 부부의 이야기다. 만두가게를 경영하는 젊은 부부가 보고 느낀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 올린 글을 옮겨본다. 이 글을 읽고 너무나 마음이 아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벅차게 넘쳐나는 울컥한 서글픔의 눈물과 아픔의 둔통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치 어느 슬픈 영화를 보고난 후처럼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이곳에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우리부부는 조그마한 만두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손님중에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는데 매주 수요일 오후3시면 어김없이 우리 만두가게에 나타나는 겁니다. 대개는 할아버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만 비가 온다거나 눈이 온다거나 날씨가 궂은날이면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 쪽을 바라보면서 초조하게 할아버지를 기다리곤 합니다. 두 노인은 별말 없이 서로를 마주보다가 생각난 듯 상대방에게 황급히 만두를 권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대체 두분은 어떤 사이일까?” 나는 만두를 빚고 있는 아내에게 속삭였습니다. “글쎄요, 부부 아닐까?” “부부가 뭐 때문에 변두리 만두가게서 몰래 만나?” “하긴 부부라면 저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진 않겠지. 부부 같진 않아요” “혹시 첫사랑이 아닐까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서로 열심히 사랑했는데 주위의 반대에 부딪쳐 본의 아니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십년만에 우연히 만났다. 서로에게 가는 마음은 옛날 그대로인데 서로 가정이 있으니 어쩌겠는 가?……” “그래서 이런식으로 재회를 한단 말이지?” “그렇지요” “아주 소설을 써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아내의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듯한 눈빛이, 두 노인이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저 할머니 어디 편찮으신거 아니예요? 안색이 지난번보다 더 아주 못하신데요”

아내역시 두 노인한테 쏠리는 관심이 어쩔 수 없었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따라 할머니는 눈물을 자주 닦으며 두 노인은 만두를 그대로 놓은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할아바지는 돈을 지불하시고 할머니의 어깨를 부축이며 감싸 안고 나갔습니다. 나는 두 노인이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시선을 뗼 수가 없었습니다. 곧 쓸어질듯 휘청거리며 걷는 할머니를 어미닭이 병아리 감싸듯 감싸안고 가는 할아버지….. .두 노인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 사람은 늙어도 사랑은 늙지 않는 법이니까……..그럴 수도 있겠지……..

“어머, 비가 오네. 여보 빨리 솥뚜껑 닫아요” 그러나 나는 솥뚜껑 닫을 생각보다는 두노인의 걱정이 앞섰습니다. “우산도 없을텐데…..” 다음주 수요일날 오시면 내가먼저 말을 붙여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도, 그다음주도, 여러주 동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우리 만두가게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몹시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노인에 대한 생각이 묵은 사진첩에 붙어있는 사진처럼 빛바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사람인가 봅니다. 자기와 관계없는 일은 금방 쉽게 잊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데 두달 반이 지난 어느 수요일날, 정확히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겁니다. 좀 마르고 초췌해 보였지만 영락없이 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할아버지는 아무말없이 조금 웃어보였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이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못 와, 하늘나라에 갔어…..” 하는 겁니다. 나와 아내는 들고 있던 만두접시를 떨어뜨릴 만큼 놀랬습니다.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우리부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혀서…….너무나 안타까와서………

두분은 부부인데, 할아버지는 수원의 큰 아들집에, 할머니는 서울 목동의 작은 아들집에 사셨답니다. “두분이 싸우셨나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며느리들 끼리 싸웠답니다. 큰 며느리가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모실수가 없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공평하게 양쪽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분씩 맡아 모시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두 분은 일주일에 한번씩 견우와 직녀처럼 서로 이곳에서 만난 거랍니다. 어느때는 돈이 없어서 서로가 있는 돈을 톡톡 털어서 만두 값을 계산했답니다. 자식들이 용돈조차 제대로 주지 않아서 손주들의 용돈에서 얻어갖고 와서 만두값을 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정속에 할머님이 암으로 인해 세상을 먼저 떠나셨고, “이제 나만 죽으면 돼….. 내가 죽고 나면 며느리들이 서로 싸울 일도 없어지고 자식들에게는 짐을 벗겨주는 셈이지………” 할아버지는 이렇게 힘없이 말씀을 하시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습니다. 할아버지의 뺨에는 어느듯 굵은 눈물 줄기가 양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노년 빈곤’이란 말이 있다. 노년의 빈곤은 노추(老醜)를 불러 불행한 일이다. 부모는 자식이 내미는 그 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주면서 애벌레가 성충으로 크도록 애정과 헌신으로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돌본다. 그리고 늙어서는 껍질만 남은 곤충처럼 되

어 버린다. 세월이 흘러 부모는 늙고 힘도 없고, 그리고 이제는 가진게 없다. 너무나 늙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푼 용돈을 얻기 위해 자식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의 마음과 같지 않다. 부모의 내미는 손이 보기가 싫은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부모가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것이다. 자식이 내미는 손에 부모는 섬으로 주었건만, 자식은 부모에게 홉으로 주는 것마저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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