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인격자

<김명열칼럼>  인격자

옛날 고려의 명장 강감찬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고 돌아오자 현종왕이 친히 마중을 나가 얼싸안고 환영했다. 또한 왕궁으로 초대해 중신들과 더불어 주연상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한참 주흥이 무르익어 갈 무렵, 강감찬 장군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소변을 보고 오겠다며 현종의 허락을 얻어 자리를 떴다. 나가면서 장군은 살며시 내시를 보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시중을 들던 내시가 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강 장군은 내시를 자기 곁으로 불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내가 조금 전에 밥을 먹으려고 밥그릇을 열었더니 밥은 있지 않고 빈 그릇뿐이더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내가 짐작하건데 경황 중에 너희들이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걸 어쩌면 좋은가?” 순간 내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만저한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빈이 강감찬 장군이고 보면 그 죄를 도저히 면할 길이 없었다. 내시는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때 강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미가 급하신 상감께서 이 일을 아시면 모두들 무사하지 못 할테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가?. 내가 소변을 보는 구실을 붙여 일부러 자리를 뜰 것이니 내가 자리에 앉거든 곁으로 와서, 진지가 식은 듯 하오니 다른 것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다른 것으로 갖다 놓는 것이 어떨까?”. 내시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러워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했다.

그와 같은 일이 있은 후 강감찬 장군은 이 일에 대해서 끝까지 함구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내시는 그 사실을 동료들에게 실토했으며, 이 이야기가 다시 현종의 귀에까지 들어가 훗날 현종은 강감찬 장군의 인간됨을 크게 치하해 모든 사람의 귀감으로 삼았다는 고사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우고 주지할 사항은, 아무리 지위가 높고 능력이 뛰어나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가치는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에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긍지를 가진다면 그는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 그는 자존심과 신뢰가 자아 속에서 넉넉하게 녹아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고 평상심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모두 고통과 시련에서도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긴다. 이렇게 긍지를 가지고 덕이 되는 일을 해온 사람들을 우리는 인격자라고 한다. 인격자란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이다. 또 인격자는 세상을 하직할때 그가 남을 위해 베풀었던 시간이 많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그는 살면서 좋은 습관을 가지고 덕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인격자가 되려면 먼저 사람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만사에 감사함을 표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생활 중에는 좋은 사람과 교제를 가지며 정해둔 인생목표를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추진한다.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 실패에서도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에 새로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수 있다.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가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다른 점은 등한히 하면 안 된다. 좋은 건물은 시멘트로 튼튼하게 짓기만 해서는 안된다. 환기시설, 배수시설, 그리고 제반 설비와 시스템의 조화와 함께 적당한 배치등이 요구된다.

다른 면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입신출세만이 성공이 아니다. 이 시대의 상황에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청소년의 인격 연마에 문제가 많은것 같다.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인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성교육은 소명의식과 이타심을 많게 하고 변화를 따라 잡으며 성실하고 법을 잘 지키게 만드는 교육을 말한다. 올바른 가치와 성공에 대한 개념이 섰을 때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

여기에 참고로 참으로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어느 사람이 행했던 일들을 소개하여 드리도록 하겠다.

이 글의 내용은 서울에 사시는 어느 독자분께서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를 인용하여 이곳에 옮겨 올린 글이다.

세상이란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비를 맞으며 나는 걷고 있었다. 내가 지하철 입구에 다다르자 조그만 여자아이가 우산을 팔고 있었다. “우산 하나에 얼마니?” “5천원예요” “그럼 저건?”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아이를 보고 “장사를 하면서 가격을 모르면 어떡 하냐”는 눈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소녀는 말끝을 흐렸다.

“엄마가 하던 장산데….. 아파서 제가 대신………..” 게면쩍게 멋 적은 미소를 짓는 아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슬픔이 따듯할 수는 없을까?”. 비가 개이고 장사를 마친 아이는 지하철 계단에 앉아있는 노숙인 노인에게 천원을 건네주더니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빈 박스를 가득 실은 할머니의 리야카를 고사리 손으로 밀어주고 있다. 사랑 때문에 한층 더 커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서 물음표가 가득했던 내 삶에 느낌표가 채워지며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다음날 내 가난한 마음을 채워준 그 아이에게 나는 우유 하나를 건넸다. 내가 건네준 우유를 들고만 있던 아이는 맞은편에 시름없이 앉아있는 장애인 노숙인에게 가져다주었다. “너 먹지 왜?’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아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보다 더 필요할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줄 아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누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그 공간이 다른 이의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이 아이가 알게 해 주는구나!”. “우산 하나 줄래” 5천원짜리 우산을 산 나는 5만원짜리 1장을 건네준 채 바쁘게 뛰어가고 있었다. 다음날 ‘돈을 찾아 가세요’ 라는 푯말이 써 붙여져 있는 지하철 입구를, 나를 찾게 해준 그 아이의 말을 떠 올리며 나는 미소로 지나치고 있었다. 며칠 후 가랑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에 그때 그 자리에 그 꼬마 여자 아이가 우산을 팔고 있었다. 나를 기억 못하겠지, 하고 다가간 나를 보자 그 아이는 반갑게 웃어 보이며 4만5천원을 넣은 비닐봉지를 내밀며 말을 걸어온다. “아저씨 저번에 돈을 잘못 주셨어요”. 나는 그 손을 내려다 보며, “진짜 행복은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꽃처럼 홀로핀 아이를 보며 말했다. “그건 신의 선물이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멋진 세상이고, 멋진 세상을 만들고 올바른 인격자를 만드는 길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이려고 얼굴이나 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날씬하고, 우람차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인격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거기에 대해 Yes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격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리 자신을 숨긴다 할지라도 결국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은 얼굴을 통해서 비추어지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아름다움과 사랑을 추구한다. 그러한 요소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가를 항상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부족하거든 채우고, 넘치거든 베풀 수 있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아름다운 여운을 남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또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곧 그 사람으로부터 풍겨지는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얼굴 표정이 밝아야 한다.

인간이 이 땅에서 혼자서는 살수가 없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가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격을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인격이란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람의 첫 이상은 매우 중요하다. 항상 밝고 환한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상대방의 태도 여하에 따라 기분이 바꾸어진다. 인사를 할 때에 상대방이 건성으로 하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거나, 마지못해 인사를 받는 것은 상식 이하의 몰상식한 행동이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지도자나 교역자 및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그러한 예의 사람들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하면, 몇 년 전에 실제적으로 나는 어느 교회의 목사님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년전 어느 장례식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에, 나는 안면이 있는 어느 교회 목사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목사님은 여러 사람들과 바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인사하는 태도가 진정성이 없는 건성 건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으며, 나의 차례가 되어 인사를 나누는데 그의 시선은 저쪽 뒷 쪽 사람들에게 멈춰 서 있고, 나와 잡은 악수하는 손은 잠시 스치듯이 마주치다 이내 뿌리치듯이 털어내고 저쪽으로 가버렸다. 나와 시선은 마주치지도 않은채………

그 순간 정말로 모욕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는 “저 사람이 목사야? 목사라는 사람이 도대체 인품이나 인격은 찾아볼 수가 없네. 그러면서 교인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 위선을 떨겠네….” 목사라는 사람이 기본적인 예의는 물론이고 속된말로 너무나 건방지고 교만하며 안하무인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처는 흔적을 남기는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분한다. 보이는 상처의 고통은 기간이 짧으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오래 간다. 보이는 상처는 외부의 충격에서 오지만 보이지 않는 상처는 인간의 행동과 언어를 통해서 온다. 내면적 상처의 치유는 자신에게 달려있다. 아무리 훌륭한 상담자나 의학적 치료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고 있는 자신이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무익한 것이 되고 상처는 더욱 깊어 갈수 밖에 없다. 가장 좋은 치유의 방법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존중하고 상대방을 궁휼히 여기는 것이다. 흔한 말로 ‘용서와 사랑’이다.

이제 끝으로 맺는 말로……… 당신이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도록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어 보자. 그리하면 당신이 마음은 평화로운 초장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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