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9>  페트라

<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9>  페트라

 

아름다운 별빛으로 밤 하늘을 반짝이는 보석과 구슬 밭으로 수놓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도달할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자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밤하늘은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을 거부하는 경이로운 경외(敬畏)의 대상이자 지적 호기심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도달할 수 없는 불가지의 세계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비해 내마음의 도덕 법칙은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이다.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가치판단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의 도덕법칙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때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판이기도 하다. 어젯밤에 밤을 꼬박 새우며 별들과 조우하고 대화하고 친구로 지냈던 것은, 머나먼 이국땅 사막의 밤 하늘에 처음으로 마주하며 감동을 느꼈던 동경심 때문이었다.

또한 이렇게 한숨도 잠을 못자고 지새운 것은 나만의 사막의 밤에서 아름다운 별들과 벗하며 사색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광활한 사막 벌판 한 가운데 나 홀로 떨어진 듯 하지만 내가 밟고 지나간 한 줌의 모래, 한 방울의 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나의 친구이며 거대한 우주생명 공동체의 한 일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막에는 별이 쏟아진다고 어느 시인은 말을 했는데, 정말로 사막에서 보니 참으로 많은 별들이 쏟아졌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하늘의 밤하늘 별들은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듯 했다. 어젯밤 아름다운 별들에 취해 꼬박 밤을 지새우고 난 아침의 기분과 몸의 컨디션은 여~~어 엉 좋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골치도 띵 하고 아프며 어지러웠다. 이러한 상태로 오늘 페트라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몸이 움추러 든다. 무척 많이 걷는다고 했는데………. 그러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부딪쳐보자” 비록 몸은 무겁고 힘들지만 어젯밤 별들과의 데이트로 밤을 꼬박 새웠던 것을 후회 하지는 않는다.

아침식사를 위하여 호텔 식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오늘아침 역시 호텔의 식당 메뉴는 수없이 많았고 푸짐했다. 모래알 씹는 것 같이 목구멍으로 시리얼은 잘 넘어가지 않았고 커피역시 오늘따라 무척이나 썼다. 옛날 어렸을때 먹었던 ‘굉기랍(일종의 진통제)’ 처럼 매우 쓴맛이 났다. 아침에 대하는 모든 성도님들의 표정은 아침햇살처럼 밝았고, 오늘의 하루를 위해 기도를 하시는 목사님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어쨋든 좋은 아침이다. 오늘도 기대와 희망을 안고 부푼 가슴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관광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세계적인 역사유적지이며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를 보러 가기 때문이다.

페트라 (1)

요르단 왕국 남부에 있는 거대한 도시, 혹은 그도시 유적으로 알카즈네(보물)가 보통 페트라 하나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페트라는 이것 말고도 주변에 여러 유적을 통칭하는 여기 도시의 명칭이다. 알 카즈네 말고도 주변에 있는 여타 유적도 놀랍도록 정교하고 더 거대하게 남은 귀중한 유적들이 많이 있다. 아랍계 유목민이던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한 산악도시로서 붉은 사암(모래바위) 산을 깎아 내부를 파서 그대로 건물을 만들었기에 구조가 아주 특이하다. 대략 건물모양이 바위산에서 부조로 조각된 듯 하다. 페트라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원래 나바테아인들이 불렀던 도시 이름은 레켐(Rekem)이었지만, 로마의 정복 이후 그리스인들이 붙인 페트라라는 이름이 쓰이면서 오늘날까지 페트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가 번영했고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있어서 중개무역과 교통의 요지라는 잇점 등으로 번영을 누렸다. 극장, 목욕탕, 상수도 시설까지 갖춘 시대의 첨단을 달리던 도시였고, 기독교 성경에는 구약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에서 모세가 이곳을 통과해 가나안으로 나갔다는 기록도 있다. 그 후 좁은 협곡을 무기삼아 로마군에게 몇번이나 저항하였으나 전쟁경험이 많은 로마측이 수도관을 부수는 필살기를 시행해 기원전 63년에 항복해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트라야누스때 속주로 편입이 되었다. 그리고 6세기경에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존하는 페트라의 유적은 로마의 영향권에 있을 때의 것으로서 건축양식이 그리스, 로마의 건축양식에 아랍지방의 고유한 스타일이 들어가 독특하다.

그대로 잊혀져 있다가 19세기에 스위스 출신인 한스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카이로로 가던 중 페트라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다면서 이곳을 찾아 떠났다. 허지만 이곳에 살던 베두인들이 비 무슬림 이방인을 별로 환영하지 않았기에 그는 이슬람교도로 위장하고 그들과 친해진 끝에 1812년 발견에 성공했고, 유럽으로 돌아와 여행기를 쓰며 이 도시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풍토병을 얻어서 1817년 33살에 죽는다.

당시 유럽인들은 그림으로 그려진 이 모습에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존상태가 엄청나게 좋기 때문이라서, 이게 2천년이 넘는 것이라고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보존상태가 좋은 건 주변에 험난한 산들이 바람과 온갖 기후를 막아준 것도 컸고, 여길 차지한 이슬람인들도 정작 사람 얼굴 같은 것만 우상화를 막는다고 부수고 다른 건 건드리지 않았기에 상태가 아주 좋은 상태로 남았다. 더불어 사람이 살기에는 무척 불편한 곳이라서 여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기가 어려운 점도 한몫 했다.

그리고 막상 이곳에 와 보면, 화려한 외양과 달리 속은 텅텅 비어서 안에도 뭔가 있을까 하고 들어왔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저 다만 외양의 모습으로만 보고 만족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좋을듯 싶다. 무엇보다 밤에는 유적을 보호하고자 전기시설을 하지 않았기에 촛불이나 횃불을 켜서 관람하게 하는데 그것은 정말로 환상적이다. 특히 이곳은 인공불빛(전기시설)이 거의 없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엄청난 별들이 영롱하게 보인다.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 세게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더불어 2007년 세계 신 7대 불가사의 에도 올랐는데 아랍 여러 국가와 이슬람 국가들이 많이 지지했다. 사실 여기가 진짜 유명하게 된 이유는 1989년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제3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쓰였기 때문에…..작중에서는 성배가 보관된 고대도시로 등장해서 마지막 장면의 무대가 되었다. 여기서 존스 부자와 마커스 교수가 말을 타고 협곡을 빠져나와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매우 인상 깊은 라스트 씬을 연출했다. 감독 스필버그는 당시 국왕인 후세인 1세가 촬영에 무척이나 많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회고했다. 스필버그가 유대인인지라 행여나 이슬람과격파가 테러를 할까봐 군대를 동원하여 호위까지 해주었고, 심지어 베두인 출신으로 기마술이 뛰어난 군인들을 스턴트 맨으로 지원까지 해주었을 정도이다. 그렇게 촬영된 알 카즈네 장면을 보고 왕이 부탁하기를 “알 카즈네 부분을 재촬영해 줄 순 없겠소?” 영화 촬영내내 너무나 큰 도움을 받았던 터라 스필버그는 이 부분을 여러 버전으로 재촬영하였고, 결국 왕이 개봉판 라스트 씬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면서 기뻐했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자 왕이 제작진들에게 최고급 만찬까지 크게 베풀어 줬다고 한다. 주변 기념품 가게에선 인디아나 존스 관련 기념품들도 판다. 더불어 지금까지도 요르단 TV로 이 영화가 가끔씩 꼭 방영된다. 아울러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나 낙타와 마차를 모는 사람들은 대대로 이곳 주변에서 살던 유목민들 즉 베두인들이다.

영화 개봉 이후 유명해지면서 관광지로 개발되자 여길 국영화 하는 대신, 이곳에서 대대로 살던 유목민들은 장사를 하게 할 권리를 주었다.

이렇듯 요르단의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요르단은 다른 고대 유적지도 꽤 많은 국가라서 페트라만 보고가면 아쉽다. 터키, 이스라엘과 더불어 기독교 유적지들이 상당히 많은 곳이라 성지를 여행하는 전 세계의 기독교도 순례객들이나 관광객들이 참으로 많이 이 나라를 찾는다.

 

페트라(2)

거대한 붉은 산과 떠나간 종족이 남긴 광대한 묘지에서 현대문명과의 공통점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인 최고의 불가사의중 하나로서 페트라의 진정한 가치를 감상하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다. 페트라에 관하여서는 수많은 글들이 쓰여졌지만, 이 놀라운 곳을 접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어느것도 충분치 않다. 제일 좋은방법은 백문이 불여일견, 백번 듣는것보다 한번 직접 찾아보는것이 낫다는 얘기다. 직접 찾아와서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세계의 불가사의 페트라가 요르단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자 최고의 관광지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페트라는 2천여년 전에 이곳에 정착한 근면한 아랍민족인 나바테아인들이 가파른 암벽면에 조각을해서 만든 광대하고도 독특한 도시이다. 이들을 통하여 페트라는 중국, 인도및 아라비아 남부를, 이집트,시리아,그리스및 로마와 연결한 비단길, 항로길 및 기타 무역로의 주요교차로로 변모하게 되었다. 길이가 2Km정도 되고 양 옆으로 80m가 넘는 높이의 절벽이 우뚝 솟아있는 좁은골짜기 시크(협곡)를 통해서 도시에 진입할 수 있다. 시크를 지나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바위의 빛깔과 형상은 눈이 부실 정도이다. 시크의 끝 부분에 도달하면 알카즈네(보물창고)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경험은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깎아지른 듯한 어두운 분홍빛 암벽면에 조각된 너비30m 높이43m의 거대한 파사드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작아보이게 만든다. 이는 1세기 초에 나바테아 주요 국왕의 묘지로 조각된 것으로서, 고대인들의 뛰어난 공학적 재능을 보여준다.

<지면 관계상 이번주는 여기서 마무리 하고, 다음주에 ‘페트라’ 이야기 계속 이어짐>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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