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6월21일은 아버지날

<김명열칼럼>  6월21일은 아버지날

 

아버지 날(Father’s Day)는 아버지를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아버지의 희생을 다시금 깨닫게 하려고 만든 날이다.

어머니날이 보급되면서 미국에서는 6월의 3번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아버지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아버지날을 기념하는 꽃은 카네이션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사람은 붉은 카네이션을 드리지만,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아버지의 무덤앞에 올려놓는다.

아버지날은 어머니날이 처음 시작된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어머니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한 2년후인 1910년 워싱턴주 스포켄의 한 교회에서 어머니날 설교를 듣던 존 B 다드(John B, Dodd) 여사가 자신을 비롯한 6남매를 홀로 키우며 고생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날도 기념할 것을 제안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아버지날은 좀처럼 공휴일로 지정되지 못하다가 62년이 지난 1972년에 리차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6월 셋째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선포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정해진 아버지날은 어머니날에 비해 조용하게 기념하기로 모두가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동네 꽃집마다 문 밖까지 줄을 서고, 카드를 파는 가게의 진열대는 어린아이부터 노 신사까지 자신의 마음을 대신 할 카드를 찾아내느라 발 디딜틈이 없는 어머니날과 비교해보면 아버지날은 가게도 꽃집도 한가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날 덕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버지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자식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선물을 드리며 위로와 축하를 해주니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아버지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묵묵함? 아니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사람?. 그러나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다. 자식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사람마다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은 아버지의 모습이 자식들에게 안길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기는 쉽지 않다. 물론 요즘 아버지의 모습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머니만큼은 친근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번 6월21일의 아버지날을 맞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머니의 사랑과는 빛깔이 다른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이야기의 대상은 어느 아버지의 깊은 사랑 이야기다.

다섯명의 자식을 둔 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중 한명의 아들이 유독 병약하고 총명하지도 못하여 형제들속에서 조차 주눅이 들어있는 아들이 아버지는 늘 가슴이 아팠다. 어느날 하루, 아버지는 다섯 그루의 나무를 사왔다. 그리고 다섯명의 자식들에게 한그루씩 나누어 주며 1년이라는 기한을 주었다. 가장 잘 키운 나무의 주인에게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약속한 1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데리고 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으로 갔다. 놀랍게도 유독 한 그루의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하여 키도 크고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다. 바로 언제나 아버지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였던 그 아들의 나무였다. 약속대로 아버지는 이 아들을 향해 큰소리로 칭찬하기를 “이렇게 나무를 잘 키운 것을 보니 분명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것이며 그리 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모두들 앞에서 공표 하였다.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명분있는 지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은 이 아들은 성취감이 고조되어 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얗게 밤을 지낸 새벽, 잘 자라준 나무가 너무나 고맙고 하도 신통하여 숲으로 갔다. 어스름한 새벽 안개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물체가 그의 나무 주변에서 느껴졌고 곧이어 물 조리개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의 두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그 후 이 아들은 훌륭한 식물학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미국 국민들의 가장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다.

바로 그분이 그 유명하고 훌륭한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라고 한다.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으로서, 오늘날 미국 행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그의 통치방식에 힘입은바 크며, 국내적으로는 1930년 대의 대공황 타개를 위해 뉴 딜 정책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동안 연합국을 지도함으로써 이후 미국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아버지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모습과 다른 환경을 지녔겠지만, 공통된 바람을 가졌을 것이다. 아내에게 존중받고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가장이 되는 것, 그 자리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은 정도의 차이를 말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부성(父性)을 온전히 보여주기는 너무나 어렵다. 세상은 온통 좋은 아버지, 훌륭한 가장을 요구한다. “좋은 아빠”에 대한 지나친 강박을 호소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 역할은 당연시 된다.

가족은 인간사회에서 가장 작은 공동체이다. 한 사회의 토대를 이룰 이 공동체에서 오늘날의 아버지들이 곤경에 빠져 힘겨워 보인다. “좋은 아버지”에 대한 정의도 혼란스럽다. 경제적 지원을 풍부하게 해 줄수있는 ‘부자 아빠’가 좋은 아빠인지, 따듯한 정서적 지원이 풍부한 ‘친구같은 아빠’가 좋은 아버지인지, 심지어 모든 것을 다 만족하게 하는 ‘슈퍼맨 아빠’가 되어야 하는지…… 도대체 아버지란 어떤 존재여야 하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한 가정의 ‘안 사람’으로서 내조하고 안에서 운영한다면 아버지는 ‘바깥 사람’으로서 외조하고 가족의 외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부장하에서의 가족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면모는 전통적인 가족상이 많이 변화한 지금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 원형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내에서는 소외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가족(자녀)들과 보내게 되었다. 고된 노동의 시간이지만 공유하는 부분이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 즉 자녀들과 대화도 많고 친밀감을 쌓기도 쉬웠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된 활동 영역은 ‘바깥사람’답게 자신의 직장이었다. 즉 대부분의 경우 이윤을 내기위한 조직인 기업에서 종사하게 되고 가족들과는 공유하는 시간이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과 이해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자신의 직장에서 행동하는 상명하달 식의 사회관계나 직장 상사로서의 위치를 가족에게도 적용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크고 작은 갈등의 소지가 되었다. 혹은 직장에서 얻은 피로로 집안에서는 주로 휴식을 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경우는 특별히 아버지가 나쁘다기 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컸었다. 요즈음에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많아져 이러한 부모상이 많이 변화했다.

예전에는 가부장제로 가정안에서의 절대 권력자였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임으로 원천적으로 가장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권력의 구조가 많이 변화하였다. 주부의 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도 상당히 인정되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여성의 사회 참여가 많아지고 지식 기반의 사회로 이행해감에 따라 교육에서 폭력을 사용할 이유도 많이 약해졌기 때문, 오히려 요즘은 때려봤자 아이의 기만 죽인다고 대화로 해결하려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한국의 경우 자식들이 유학갈 때 어머니도 같이 가서 아빠는 혼자 한국에 남아서 돈을 버는 형태인 ‘기러기 아빠’도 많아진 실정이고 그에 따른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고, 특히 자녀의 인생에 든든한 나침반이 되어주는 존재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대한 방법이 변해가고 있다.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가족이 알아주고 지지해 줄때 좋은 아버지라는 이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아버지 개인의 행복은 가족 안에서 아버지로서 느끼는 행복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비로써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느라 버거워하는 아버지의 가슴을 함께 위로해야 한다. 아버지에게도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다.

같은 부모라도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은 다르다. 따라서 그 빛깔도, 빛깔이 퍼져나가는 방법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아버지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빛깔의 사랑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한번쯤 마음을 가다듬으며 깊이깊이 생각을 해볼 일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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