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신언서판(身言書判)

<김명열칼럼>  신언서판(身言書判)

 

옛날 중국의 당나라 시대때, 당태종은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과거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관직의 기회를 주고 인재를 얻을 수 있는 참으로 좋은 제도였다.

반면 당나라에서는 과거제도를 엄격하게 실시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을 바로 등용하지는 않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네가지 부분을 살펴보았다. 나라 관리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언서판은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임명하는데 중요한 척도였다.

신(身)은 외모를 가리킨다. 건강하고 얼굴이 밝고 빛나며 미소가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너그러움을 뜻한다. 국민을 이끌기 위해 이런 덕(德)을 가져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나라의 관리는 엄격한 법이 잣대이기에 그 법으로만 국민을 섬길 수 있다. 너그러움도 있어야 한다.

언(言)은 언변이기도 하지만, 말에 책임을 뜻한다.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고 듣기좋은 말씨와 상대를 배려하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의 국회를 볼것같으면, 국민의 전당이라는 국회는 이런 품위가 없다. 서로가 헐뜯고 비방과 반대, 무시, 압력, 폭언의 일색이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은 말만 번지르르 하게 잘하지 그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수행은 잘하질 않는다. 선거철이 되면 말로만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한다. 당선 후에는 도리어 더 이권을 챙기고 자기들의 월급만 인상한다. 실제적으로 발로 뛰고 지역구민들을 수시로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대변하는 의원은 그리 많지 않다.

서(書)란 글이다. 글은 공정하고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프랑스의 식물학자 드 뷰폰의 말이다. 말은 입에서 나오면 그 순간에 사라져버리지만 글은 저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글은 길이다’라고도 한다. 글속에는 살아온 길이 있고 살아갈 길도 있으며, 살아야만 하는 길도 있다. 글은 또한 내가 살아가는 삶이자 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글을 보면 그사람이 걸어가는 길이 보이고 삶이 보인다. 아울러 글은 자신을 내 보임이고 내 눈물과 삶의 정직한 모습을 내 보임이다. 이런 글의 진솔한 내용이 혹 어느 독자의 가슴에 닿아 감동과 함께 삶의 지혜와 지표를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은 글의 행복한 귀결이고 열매이다.

글은 무릇 사람의 말과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그 그릇이 언제 건 고단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삶을 어루만져주고 위로와 의지와 힘을 주며 내일을 향한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한 글을 써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느 독자가 한 이야기이며, 또한 많은지인과 사람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편지지 한장의 인사말이나 안부, 사연을 적어 그 한장을 메꾸기 조차도 힘이 들고, 안녕하십니까?. 그 한구절을 쓰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슨 문장과 사연, 내용으로 이어갈지가 난감하고 힘이 든데, 작가님은 어떻게 똑같은 내용의 글도 아닌데 매주 20여년을 신문에 칼럼이나 산문, 에세이집, 논설문을 써서 올리시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옳은 말씀들이다. 글을 쓰기란 정말로 어렵고 힘이든 난제중의 난제이다. 써놓은 글을 읽기란 쉬워도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 칼럼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밤늦도록 끙끙대며 원고문을 여러장 찢어버리며 완전한 문장을 작성키 위해 노심초사 머리를 짜낸 적도 수도없이 많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 좋은 글의 대상이나 내용이 머리속에 떠 올랐을 때는 차를 세우고 메모지에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거기에 살을 붙이고 글의 구성을 엮어 한편의 근사한 글을 만들어낸적도 엄청이나 많았었다. 정말로 글을 쓰기란 힘들고 어렵다.

요즘 신문이나 잡지, 기타의 서적들을 보면 일부에서는 거칠게 상처받은 시대의 단면들도 많이 눈에 띈다. 세상을 원망하고 절망하다 못해 저주하는 글들도 너무나 많이 흘러 넘치고 있다.

아주 오래 몇년전 어느 신문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글에는 이렇게 써있다. 그 사람은 현재 한국에서 문체부장관을 역임하고 현재는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 ‘희망은 없다. 이 더러운 땅 어디에 희망이 있는가….. 차별은 깊어지고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며, 내일은 오늘보다 살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앞으로도 희망은 없다’ 이 글을 기억하며 필자의 절박함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글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글의 위력은 대단하다. 한 줄의 문장이나 글월의 내용에서 사람들의 감정이나 느낌을 밝고 어둡게 만들며 희망이나 용기를 주는가 하면 비관이나 낙망을 심어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고유하게 간직한 자신만의 것이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나면 바깥 세상과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름없는 존재들을 이해하고 위로할수 있는 따듯한 힘이 생긴다. 이 모든것은 내가 글을 쓰며 보고 배운것들 이다.

판(判)이란 판단력인데 이것은 곧 책임감이다. 물론 그 소신이 문제를 낳기도 한다. 절제되지 않은 말들 때문에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것도 사회 지도층이나 위정자들의 말이 국민들로 하여금 짜증나고 화가 나게 만든다.

내가 어렸을적부터 서당의 훈장을 하셨던 할아버지와 그의 제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듣고 배웠던 신언서판(身言書判) 이라는 말씀이 떠올라 오늘은 글로 써 옮겨보았다. 난생처음 만나본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방도가 있는데, 그 사람의 몸가짐과 말 할때의 태도나 감정상태, 그리고 바른 글씨와 인식하며 판단할수 있는 능력이 어느정도 냐를 함축하는 말인 ‘신언서판’ 이야말로 사람의 가치 기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듣기 좋고 덕이 되는 말을 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다 보면 자칫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사와 감정이 섞인 뜻하지 않은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말은 이처럼 기존에 알고 지낸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하는 상대방의 인격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말 잘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날 스피치 능력은 성공을 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이다. 의사 전달이 명확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기회가 더 많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 이야기만 해서 듣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느 모임에 가보면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에 능력 있는 리더라면 말을 잘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떠들것이 아니라 가장 숫기없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 참석한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않으면 타인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얻을수 없다. 정보가 빈약하니 당연히 성공할수 없다. 반대로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말을 독점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고난 자신의 목소리도 역시 외모처럼 가꾸기 나름이다. 예쁜 아가씨를 보고 말을 걸었는데 칼날같이 귀에 거슬리는 고성이어서, 멋진 청년이라고 생각했는데 모기소리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여서 실망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목소리도 외모만큼이나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참고로 외경 집회에서 나오는 ‘말의 진실성’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바람이라고 해서 모두 키질에 이용하지 말고, 길이라고 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지 말아라. 그것은 겉과 속이 다른 죄인이 하는 짓이다. 너의 신념을 굳게 지키고 말을 한결 같이 하여라.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여라. 네가 알거든 묻는 사람에게 대답하고 모르거든 가만히 있어라. 명예도 불명예도 말에서 나온다, 사람의 혀가 파멸을 가져온다. 남의 험담을 좋아해서 네 혀로 사람을 잡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도둑이 결국 탄로나듯 겉과 속이 다른 자는 망신을 당하리라. 큰일에나 작은 일이나 실수하지 말고, 친구를 져버려서 원수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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