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4

김명열기자의성지순례기행문24

길르앗 산지 및 제라시(거라사)

 

요르단 국경검문소를 나와 제라시로 가는 장시간 도로 여행중 가는 길에 우리들 일행은 얍폭강을 지나 길르앗 산지를 잠시 방문했다. 길르앗 산지는 요르단의 암만에서 약 77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고대 로마의 도시 중 한 곳이다. 성경의 길르앗 산지에 해당되는 곳이다. 아즐룬(A Juln)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1189년에 살라딘의 조카가 십자군을 대항하여 세워 건설한 깔라트 엘 라밧 성채=뒤에 파괴되었다가 마물르크 왕조때 복원되었다.

이 성채는 오늘날 얼마 남아있지 않은 사라진 군사 건축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곳을 방문한다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길르앗 땅과 요단 골짜기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의 또 다른 인상적인 유적은 중세기에 교회건물터 위에 지어진 주후 6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미나릿(첨탑)을 지닌 이슬람 사원이다(관련 성경 창 37:25, 신 3:12). 아즐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의 나무가 우거진 지역이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걸려 죽임을 당했다는 지역이다. 1880년대 이 지역을 방문한 여행자들의 경우 이곳에서 거대한 나무를 목격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 나무는 그 이후에 4분의 3이 잘려나갔고 이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길르앗의 맹세

리반은 야곱을 추격한다. 하지만 라반은 선악간 말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20년간 성실하게 일했다고 항변하는 야곱의 말을 들은 뒤, 야곱과 화해의 언약을 맺기로 했다. 라반과 야곱이 언약을 맺은 곳은 길르앗이었고, 언약의 증거는 그곳에 쌓은 돌무더기였다. 라반은 이를 아랍어로 ‘여갈사 히두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이라고 불렀다.

언약의 내용은 라반의 딸들을 박대하거나 다른 아내를 취하지 않겠다는 것과 서로 이 증거의 돌무더기를 넘어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창 31:22~52). 이 언약은 라반이 야곱을 인정하며 축복하였다는 점과 야곱, 라반 모두가 하나님 이름앞에서 맹세했다는 점이 특별하다.

야기되었던 갈등과 문제들은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써 해결되었다. 바로 이것이 인간문제의 기본적인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가는 길에 우리가 들렀던 곳은 길르앗 산지였다. 길르앗 산지를 둘러보고 우리들 일행은 다음 일정의 방문지인, 너무나도 유명한 곳, 제라시였다. 어느 조그마한 도시의 깨끗한 요르단 전통 음식을 서브하는 요르단 식당에서 푸짐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멀지않은 곳의 제라시 옛도시의 모습을 찾아 나섰다.

 

제라시(거라사)

고대 제라시는 헬라어로 거라사라 불리워지는 길르앗 지방 언덕의 헬라 도시였다. 기원전 332년 쯤에 알렉산더대왕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이후 로마에 점령당하여 로마의 속주중 10대도시(데카 폴리스)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곳에서는 석기 및 청동기 시대의 층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3천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다. 그리스 시대에 큰 도시로 성장한 제라시는 왕의 대로와, 기원후 112년에 건설된 트라야나 노바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으며, 근처에 좋은 철광이 있었던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당대에 로마제국 전체에서 아주 부유한 도시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기원전 103년에서 76년까지 이스라엘의 하스모니안 왕가에 의해 통치를 받기도 했던 고대의 거라사는 로마의 폼페이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기원후 129년에는 하드리안 황제가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거라사의 변형은 4~7세기에 걸친 비잔틴 시대에도 계속 이어졌다. 기독교를 공인했던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고 약 300년동안 거라사에도 15개가 넘는 대규모의 교회들이 세워졌다. 약 5천여년 동안 트랜스 요르단의 문화와 상업을 이끌어 오던 거라사는 628년 페르시아의 침공과 635년 아랍의 공격을 받고 파괴되고 말았다. 발굴된 동전을 보면 774년까지 도시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잔틴 교회도 이때까지는 그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8세기 중반에 있었던 대규모의 지진으로 인하여 웅대한 석조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져 거라사의 영광은 모래와 흙더미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아랍시대 이후로는 이름도 제라시로 바뀌었다. 성경에는 ‘거라사인의 땅’ 또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언급되었고 예수님께서 정신병자를 고쳐주신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마태 4:25, 마가 5:20, 7:3)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예수님 당시에는 아마도 18000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번성기 때의 제라시는 현재 발굴된 20만평 크기의 2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덴에 의해 처음 발굴이 시작된 이래 192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지금도 꾸준한 발굴 작업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히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흙속에 잘 보존되어 고고학자들의 복원작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제라시에는 20만평이 넘는 넓은 언덕에 웅장한 석조건물 유적들이 펼쳐져 있다. 성벽에는 모두 101개의 탑이 17~22m간격으로 설치되었으며 3m두께의 성벽에는 모두 6개의 성문이 있다. 성문은 남북에 각각 1개씩, 동서에 각각 2개씩 설계되었다.

도기의 중앙에 설치된 카르도는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길이가 800m에 이르고 동서로는 2개의 거리가 수직으로 나 있다.

동서남북의 교차로에는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광장이 펼쳐져 있으며 광장에는 신상이 세워져 있다. 지하의 완벽한 하수도 시설과 두개의 야외 원형극장, 여러 신전들(제우스 신전, 술과 포도주의 신=디오니소스를 위한 신전, 거라사의 수호 여신 아데미=Artemis를 위한 거대한 신전들)과 1천평이 넘는 대규모의 목욕탕이 두개 발굴되었다.

또한 대형 경마장도 발굴되었는데 길이가 260m, 폭이 80m에 이르는 이 경마장은 대도시의 풍모를 느낄수있는 규모이다. 남쪽 성문으로부터 4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한개의 아취가 세워져 있는데 하드리안 황제의 방문 이후에 세워진 하드리안 황제의 개선문으로 확인되었다. 과거 디오니소스 신전을 교회로 전환시킨 대성당은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인 교회이며 대 성당 뒤의 성 데오도르 교회와 529년에 세워진 성 죠지 교회, 531년의 성 요한 교회, 533년에 세워진 성 코스마스와 다미안 교회를 비롯해 15개 이상의 비잔틴 교회 터도 발굴되었다. 9세기에 일부 아랍인들이 살았고 11세기에 그나마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1122년 십자군의 볼드윈 3세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을 19세기에 이르러 한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련 성경 막5:1, 눅 8:26, 눅 8:37).

제라시 옛 도시 성터를 다 둘러보고 나니 어느듯 태양은 석양을 향했다. 성터 자체가 워낙 광대하고 드넓다 보니, 그 넓고 광할한 지역을 다 둘러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일부 연세드신 성도님들은 일부 지역만 둘러보고 초입에 앉아서 다른 성도님들이 성 전체 전역을 다 둘러보고 돌아올 때까지 한적한 그늘에 앉아서 기다리고 계셨다. 한참 후에 다시 모인 우리 순례객 일행들은 정문을 빠져나와 제라시 성문 입구의 어느 상점으로 발길을 향했다. 모두가 갈증을 느껴 시원한 주스나 음료수 또는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거리 곳곳에 노점상을 차려놓고 즉석에서 석류 주스를 짜 주는 그 석류 주스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석류주스를 마시기전에 잠시 이곳(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많이 생산되고 주민들이 인기리에 즐겨 마시고 있는 석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이곳 미국에서나 또는 한국에서는 값 비싸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 석류가 이곳에서는 대중적인 과일로 서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하여 누구나 별로 부담 없이 사서 마시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의 과일 노점상이나 일반 상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석류다. 아주 옛날 중국의 양귀비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일 반쪽씩 먹었다는 그 석류가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서는 우리네 과일가게의 사과나 바나나, 귤 만큼이나 흔하다. 이곳의 사람들이 석류나 레몬 등의 과일을 자주 찾는 이유는, 물론 석류 나름의 그 새콤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경에 맞서 그들의 지혜에서 나온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 때문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그리고 요르단 지방은 석회로 되어 있어 물에는 석회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신장 결석등 의 질병에 자주 노출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때문에 식수로 수돗물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가능한 한 미네랄 워터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집트, 요르단을 여행할 때는 항상 마실 수 있는 물을 비상용으로 갖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수돗물 섭취를 의식적으로 피한다 해도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에까지 석회질이 많이 포함돼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몸 안에 쌓인 석회질을 중화시키는 ‘신 맛이 나는 음식’을 즐겨 먹는다. 올리브 열매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켜 만든 새콤한 올리브 피클이 우리네 김치처럼 이곳 식당이나 호텔의 뷔페 식단에서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이다.

유태인들이나 요르단인들(팔레스타인들 포함)은 꿀에 절인 사과와 함께 석류를 즐기면서 삶의 달콤함과 풍족함을 즐긴다. 요르단 역사지를 둘러볼 때 우리는 가끔씩 그 주변에 있는 노점상이나 상점에서 즉석에서 짜 주는 석류 주스를 종종 사서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특별히 우리들 일행을 안내하고 인도하며 역사와 성경공부도 더불어 교육시켜주시는 이정훈 선교사님(목사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한턱을 쓰시겠다고 한다. 물론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오늘 이후에도 이 선교사님은 우리들 일행에게 석류 주스를 종종 사주며 여행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회복시켜주셨다. 대개는 석류 하나를 짜서 보통의 종이컵에 담아 마시곤 했는데, 오늘은 커다란 석류 두개를 함께 짜서 커다란 컵에 곱배기로 담아 마셨다. 제라시 성 터를 2~3시간동안 둘러보느라고 몸이 무척이나 고단하고 지쳐 있었는데 이 선교사님이 대접해 주시는 석류 주스를 마시고 나니 한결 힘이 솟아나고 피로가 가셨다. 한달간 생활비 500달러로 살아가신다는 선교사님이 이토록 우리들 일행 모두를 위해 거금(?) 을 쓰면서 석류주스를 대접해 주니 모두가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선교사님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선교사님의 가정과 가족,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은 물론 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구원사업이 주 안에서 큰 열매를 맺으시고 하나님 축복 많이 받으시라고……”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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