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성탄절을 맞이한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사진은 내가 살고 있는 이웃들의 성탄절 장식 모습들이다>

<김명열칼럼>  성탄절을 맞이한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이슥하고 고요한 밤, 깊은밤 조차도 완전한 어두움이 없이 희미하게 스미는 가로등 빛에, 성탄절을 맞아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온갖 울긋불긋, 여기서 반짝 저기서 번쩍,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불빛들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있다. 가로등마저 조는 듯이 깊어 가는 밤, 인적이 끊긴 동네 골목안은 집집마다 설치하고 장식해놓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데코레이션(Christmas decoration)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사슴이 끄는 눈썰매를 타고 선물보따리를 잔뜩 멘채 신나게 달리는 산타의 모습과, 눈사람, 아기사슴, 말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모습 등등을 재현하여 장식을 해놓은 모습들이 퍽이나 인상적이다. 이중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그 아기예수님 옆에서 조용하고 거룩하게, 어둠의 적막을 깨고 은은히 울려퍼지는 “고요한밤 거룩한밤”의 캐롤송이다.

고요한밤 거룩한밤(Silent Night)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캐롤송 중의 하나다. 1818년 프란츠 그루버가 작곡하고 오스트리아의 오베른도르프 에서 조셉 모어가 가사를 붙였다. 이 노래의 발상지는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약 20Km떨어진 오베른도르프라는 조그만 마을이다. 이 마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자동차로 약 20분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1800년대 이 마을에 죠셉 모어라는 가톨릭교회 사제와 프란츠 그루버라는 학교선생이 있었다.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어는 이 마을의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1817년부터 1819년까지 사제로 재직했다. 그루버는 이웃마을인 아론스도르프에서 1807년부터 1829년까지 학교선생으로 있으면서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아 일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얼굴을 자주 맞대며 일하는 동안 자연히 가까워졌다.

1818년의 크리스마스 축제를 얼마 앞두고 당시 26세인 모어 사제는 그루버선생에게 축복이 가득한 성탄전야에 모여들 마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무엇인가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그루버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을 했고, 이 제안은 곧 실행에 옮겨졌다. 모어 사제는 모든 사람들이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 해마다 크리스마스때가 되면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고요한밤 거룩한밤”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만들었다. 모어 사제는 이 노랫말을 성탄절인 12월24일 그루버선생에게 전하면서 두명의 솔로, 그리고 기타반주를 곁들인 합창에 맞도록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노랫말을 받고난 그루버는 그의 탁월한 음악소질을 발휘하여 그날 밤으로 곡을 만들었다.

성탄절일의 조용하고 거룩한 뜻을 담고 있는 가사에 어울리는 곡이었다.

모어 사제는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공동 노력으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교회에서 곡을 만든 당일인 12월24일 저녁 예배도중에 처음으로 불렀다. 물론 참석한 신도들로부터 많은 갈채를 받았다. 모어사제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맡고, 그루버선생은 베이스를 맡았으며, 교회 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다. 그후 “고요한밤 거룩한밤”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교회에서 불리면서 점점 더 멀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들이 살고있는 미국은, 플로리다 교구의 프리먼 영 주교가 노래를 번역하여 소개하였으며 급기야 전 세계에 보급되었고, 모어가 가사를 만들고 그루버가 곡을 붙인 “고요한밤 거룩한밤” 노래는 한국에도 소개되어 크리스마스 때가되면 많은 이 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별도의 얘기로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1914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부전선의 격전지 벨기에의 이프르에서 영국과 독일간의 전쟁중, 독일군이 참호주변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촛불을 켜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영국군 병사들도 따라서 같은 노래를 불렀다.

“고요한밤 거룩한밤”이었다. 그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듯 퍼부어대는 전장에서 나와 음식과 술, 담배, 단추, 모자와 같은 작은 선물들을 주고받았다. 양국의 병사들 사이에 잠시 비공식적인 휴전이 성립되었다. 총탄으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전쟁터였지만 이 노래가 주는 경건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에 그들의 인간성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런 역사를 갖고 “고요한밤 거룩한밤”은 크리스마스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가장 즐겨 부르는 캐롤이 되었다. 이 노래는 14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837년 8월15일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교요한밤 거룩한밤”의 노래를 만든 모어 신부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위해 “고요한 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명명되었다.

이 고요하고 거룩한 밤 아기예수님 오신 날, 사람들은 눈을 기다리지만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속에 눈구경은 할 수 없고, 짙푸른 녹음을 드리우고 이맘때 겨울이면 눈이 쌓여있어야 할 나뭇가지위에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플로리다의 겨울철 이야기이다. 야자수와 팜추리로 뒤덮인 정원수 속에 끼여 있는 Oak Tree에서 철늦게 떨어진 나뭇잎이 갈길을 정하지 못하고 딩굴고 있는 거리에, 사람들도 아직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기 예수님은 2천년전에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정말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 높다란 종탑위로 ‘축 성탄’의 깜빡이는 요란스러운데, TV 뉴스의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은 그렇게 유쾌한 소식은 없고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가슴이 아리도록 안타깝고 아프게 만든다. 갓 낳은 아기를 쓰레기통에 어느 미혼모는 버렸고, 살을 외이는 듯한 매서운 강추위의 칼바람속에 차거운 육교위에 앉아 빈 깡통을 앞에 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적선을 바라며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이 TV화면에 나타난다. 아기예수님은 어디에?. 혹시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는 아닐까?. 육교위에 쪼그려 앉아 마리아의 품에 안겨 차가운 젖을 빨며 추위에 떨고 있는 저 아기는 아닐까?. 길가 보도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두손을 내민 나이어린 소년은 아닐까.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는 아기예수를 남몰래 내다버리고, 추위에 떨며 차거운 젖꼭지를 물고 있는 어린 아기를 외면했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한조각의 빵을 사기위해 얼은 손을 내미는 나이어린 소년의 손길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교회밖에서는 사랑에 꿂주려 죽어가는 이들이 많으나 교회는 밖의 세상은 모르는채 외면하고 산더미같이 큰 교회당을 짓고 교육관입네 선교관입네 수양관입네 하며 유세를 떨며 교회의 몸집 불리는데는 억만금의 떼돈을 쳐드리면서도 불쌍한 이웃이나 사회의 소외계층들에게는 땡전 한푼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합당한 행위와 일인지를 묻고싶다. 입으로는 앵무새처럼 사랑 사랑을 외치지만 행동과 실천으로는 전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와 교인들의 모습이다. 지금은 사랑이 식어지고 불쌍한 이웃과 소외받고 사는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이 교회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이미 너무나 오래된 일이다. 교회는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엄마와 그 아기가 잡은 손의 온기도 못 느낀다. 아기 예수님이 오신 그날부터 지금까지 교회에는 말구유가 없다. 다만 커다란 교회 건물만 있을 뿐이다. 교회는 언제나 채워져 있을뿐, 비우는 일을 못하기에 말구유가 아니다. 교회에 속한 신도들의 기도는 언제나 채우는 기도였을뿐, 비우는 기도는 오히려 저주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교회는 채우는 곳이 되었다. 저금통에 본전과 이자돈이 차곡차곡 쌓여가듯 신도들의 축복도 쌓여만 간다. 그래서 신도들에게는 아기예수님을 모실 말구유가 없다. 고요하고 거룩한 이밤에 불쌍하고 가난한 수 많은 사람들과 아기들은 이땅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땅으로 떠나갔다. 아울러 이 고요하고 거룩한밤에 세상사람들은 잘먹고 잘노는것이 성탄절을 잘 지키는 관행인 것처럼 시끌벅적 춤추고 노래하며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시고 즐긴다. 이것이 오늘날의 대체적인 세계의 성탄절 모습이다. 이제는 끝내 아기예수님은 우리들 곁에 오시지 않으셨고, 그리고 교회에서조차 떠나가 버리셨다. 아기 예수님이 떠나가신 이 밤은 고요하기만 하고 거룩하지는 않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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