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사유와 사색의 계절

<김명열칼럼>  사유와 사색의 계절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거운 바람에 가을이 세찬 바람결에 밀려 저만치로 날아가고 있다. 11월의 끝자락, 며칠이 지나면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 시작된다. 마지막 남은 한장의 달력을 보며 회한에 젖어드는 때도 이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달과 별이 조우를 하며 암흑의 적막을 파수꾼처럼 지켜주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늦가을의 초겨울 밤, 어스름히 스며드는 달빛을 벗하며 뜨거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요즘은 사유와 사색을 하기에 너무나 좋은 계절이다. ‘사유(思惟)는 다양하게 생각한다’며 사색(思索)은 ‘생각하여 결과를 얻다’로 사유와 사색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을 드렸다.

생각함이란 의미로 쓰이는 사유는 오로지 (홀로)라는 뜻을 지닌 유(惟)와 결합되어야만 생각함이란 의미가 된다. 사유보다는 사색이 생각(Thinking)의 본질을 말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답을 찾기 위하여 이리저리 찾아보는 일, 또는 여러 재료들로 일관성 있는 답을 만들어보는 일을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 수반한다. 참된 사색은 그저 답을 찾아보는 생각의 과정이 아니며 물음을 제시하는 과정인 것이다. 아울러 사색은 참된 답을 향해 자신을 여는, 뿌리 뽑을 수 없는 마음의 지향이며, 참을 찾기 위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마음이 있기에 인간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핵심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알차고 보람 있게 만들기 위해서 사유할 줄 아는 일이 필요하다. 힘이 센 사람, 지식인, 재주꾼, 활동가, 문학가, 정치인, 예술인 등등이 모두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바탕에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인간의 삶에 대한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하셨는데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고 하셨다. 백합화 한송이를 무심히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게 별것이 아닐지 모르나 그것을 놓고 생각해보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 값진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거기에는 자연과학도, 생물학도, 예술도, 문화도, 시(詩)도, 사상도, 종교도, 인생의 진미도,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그는 과학자도 되고, 발명가도 되며 문인도, 시인도, 그리고 믿음을 겸비한 신앙인도, 용감한 군인이나 봉사자도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앙리 파브로는 곤충의 세계를 살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한끝에 위대한 학문을 대 성사 시켰을 뿐 아니라 그 배후에 작용하는 창조주의 놀라운 솜씨를 발견하고 경이와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스페인사람은 자기 국민성의 약점을 말하느라고 이러한 표현을 썼다.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하고, 프랑스인은 생각하고 나서 뛴다. 그런데 스페인사람은 뛰고 나서 생각 한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우리는 어떤가? 하고 생각해보니 쓴 웃음이 나온다. 한 미국인이 자기네 문화와 그 장래를 걱정하면서 하는 말이 “껌을 사서 씹는 것 보다 책을 사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으면 미국은 결코 문명한 국가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책으로 사색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껌으로 인생을 생각한다”고 했다. 지나친 낙천주의가 인생을 부피의 세계에 머물러있게 할뿐, 깊이 있는 문화를 창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염려한 이야기인 듯하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보고, 우리 문화현상을 보고, 그것들이 대체로 너무나 감각적이고 파상적이며 즉흥적이 아닌가 염려하게 된다.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안고 고민한다거나 투쟁한다거나 안타까워하는 일이 너무도 빈곤하지 않나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을 보아도 신앙문제나 인생문제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도대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는것 같아 보인다. 문제의식에 내면화 하지 못함에 그 인생은 술에 술탄 맛, 물에 물탄 맛일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문제 해결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문제를 문제로 알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문제해결의 기쁨을 맛 볼수 있고 깊이 인생을 살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성급하게 익어버린 과실은 제대로 맛이 들지 않는 법이다. 보다 깊은 차원의 문제의식을 거쳐야 비로써 내용이 충실한 인생의 열매가 익을수 있고 알찬 문화가 화려하게 꽃 필수 있는 것이다.

요즘의 사람들은 사색을 싫어하는 것 같다. 사색은 번민이나 공상과는 다르다. 공상은 흐트러진 생각이고 정신적 소모와 낭비이지만, 사색은 삶의 깊이를 보려는 마음이다. 착잡하고 혼란한 세계를 헤치고 그 밑에 흐르는 영원한 ‘참’에 접하려는 탐구이고 창의이며 수도적인 노력이다. 사색이 빈곤한 사람에겐 화제가 없다. 저급한 농담이나 고집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값진 인생이 만들어 질리가 없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몇달전에 지났고, 가을의 대명사인 추분도 추석전날인 지난 9월23일이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폭염의 여름도 아주 멀어져 갔고, 겨울의 문턱인 12월이 가까이 와있다. 이 좋은 계절에 깊은 사색으로 삶을 더욱 그윽하게 가꾸어야겠다. 울긋불긋 각종 색깔들로 피어난 국화꽃들이 제철을 만난 듯 국향을 풍기며 마지막 떠나는 가을을 배웅하고 있는 듯 하다. 매난국(梅蘭菊)은 옛부터 선비의 강직함을 의미했고, 특히 유교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던 조선시대에는 여자들의 올곧은 정절을 얘기할때 곧잘 이 매난국을 들어서 여성의 굳은 기개와 정절을 표현했다. 고리타분한 얘기 같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선비정신도 찾아볼 수 없고 더군다나 여자들의 정절은 땅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이다. 세상은 이미 옛 구약시대의 소돔과 고모라같은 죄악속에 점철된 말세의 세상이 되었다고 뜻있는 사람들은 한탄을 하며 한숨을 내 쉰다. 세태에 얼룩져 어디론가 거센 탁류에 휩싸여 떠내려가고 있는 듯한 이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플 뿐이다.

고즈넉한 서재에 홀로앉아서 뜨거운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옛날 이야기 같은 뜨거웠던 열기로 가득차 있던 한 여름은 지나갔고, 한층 푸르고 높아진 파란 하늘위에 내 맘을 올려놓고 훨훨 바람결에 날아가 본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여 순서없이 뒤섞이며 사색의 겹이 물결처럼 쌓인다. 깊은 사유는 자아(自我)를 찾아주는 길, 서늘한 바람을 느끼며 생각의 바다속으로 들어가도 괜찮은 계절이다. 사색, 어떤것에 대해 깊이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 생각의 단편들을 재료로 그것을 엮어 생각의 큰 흐름을 만드는 일, 시사 하는바가 크다. 최근 긴 시간 생각하는 일, 혹은 집중하는 일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를 주지 않는 까닭인데, 그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스마트폰이라는 단정은 오히려 쉽게 유추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패턴을 살펴보면 화면을 오랫동안 주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잠시 살피고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또 다른 내용을 스치듯 잠시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잠시 살펴보는 정도의 패턴이 반복된다. 잠시 살피는 기준도 모호하다. 대부분의 경우 시각적인 것에 의존하는데,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일수록 멈춰서 살필 확률이 높아지는 식이다. 그러니 텍스트 위주의 내용들은 지루하고 쉽게 피곤을 느끼며 내용을 파악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것이다. 사색,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생각의 단편들을 시간을 가지고 큰 흐름을 가질 수 있도록 엮어내는 일, 이러한 일을 우리는 성찰이라 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깊이 알아가는 행위, 불행히도 요즘 젊은이들을 살펴보면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 어떤 생각을 연결하여 의미있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하고 싶다. 시대가 바뀌며 생각하는 방식 역시 바뀌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 생각의 주체와 그 생각의 대상이 사람이라면, 과거나 현재나 앞으로인 미래라 할지라도 그 본질의 의미는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철학적 사유와 지성의 근간을 이루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시작한’행위에서 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스피드가 가치가 된 세상을 살고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잠시 멈춰서 사유와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그 어느때보다 소중하고 필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좀 딱딱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써 올린 듯 하지만 곰곰 생각하며 곱씹어 생각을 해보면 사색이나 사유가 우리들 생활의 삶에 윤활유가 되는 것처럼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 1144/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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