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석유 등잔불(호롱불)의 추억

<김명열칼럼> 석유 등잔불(호롱불)의 추억

과학의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세상의 어느 곳을 가나 옛날 나의 어린 시절 겪고 사용했던 석유등잔불(호롱불)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불빛의 크기가 어린애 손가락 하나만큼 길이의 불꽃하나로 온 방안을 밝히던 호롱불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머나먼 꿈나라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처럼 얼음이 얼고 눈이오며 찬바람 부는 동지섣달의 기나긴 밤에는 이 호롱불(석유등잔불)이 얼마나 고맙고 큰 도움을 주었는지, 그 시절 그때 옛날에 이 호롱불을 켜놓고 밤중에 방안에서 생활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이로움과 혜택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내가 어렸던 시절,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이 석유등잔불이 캄캄한 밤에 방안의 어둠을 밝혀주는 조명기구의 전부였다. 이 호롱불 밑에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으며 어머니는 바느질도하시고 아버지는 가마니도 짰다. 호롱불주위로 모여든 어둠이 아늑해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집에서 10여리나 떨어져있는 읍내 중학교로 통학하면서, 읍내에 장을 보러 가셨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기름램프를 큰맘 먹고 사오셨다. 나이 들어 점점 눈이 침침해져서 양말구멍을 실로 꿰어 매시는 어머니의 눈이 잘 안보이셔서 기름램프를 사오셨다고 아버지는 말씀을 하셨지만, 실은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고, 올망졸망 커가는 우리 집 형제자매 5남매의 공부와 편의를 위해서 램프를 사오셨다. 사온 램프를 큰형과 아버지 이렇게 두 사람이 낑낑대며 힘들게 집안 방안의 천정 대들보에 대못을 박고 램프를 매어달았다. 천장에 매달린 기름 램프는 방바닥보다 방 벽이 더 많이 밝은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러한 밤 속에 밖에는 어둠과 방안에는 램프불이 공존하며,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쓰시는 건너편 사랑방에는 언제나 아직도 석유등잔불(호롱불)이 떠나지 않고 그대로 눌러앉아 방안을 비춰주고 있었다.
‘말은 키워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크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한국사회의 만연된 속담처럼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왔다. 그 당시 나의 고향에서는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학생도 드물었지만, 심지어 서울로 유학을 온다는 것은 여간한 모험이나 큰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사시사철 자연에 의지하여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그에 대한 소출로 먹고살아가는 시골의 농촌에서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엄청난 투자이고 모험이며 재산상의 크나큰 손실(?)이고 재정적 경제적 뒷받침을 할 수 없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위의 작은형과 함께 서울로 유학을 왔다. 형은 이미 몇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처음으로 시골 촌뜨기가 서울로 올라왔다. 땡땡땡 하며 종을 울리며 시내 한복판 레일 위를 신나게 달리는 전차소리와 거리를 꽉 메우다시피 인도 가득히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행보, 그 외 자동차와 번잡함으로 시내전체는 시끄러우며 소란스러웠고, 높은 건물과 다닥다닥 끝도 없이 붙어있는 집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 어린소년의 기를 죽이고 주눅들게 만들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급우들과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충청도의 사투리 “이랬어유 저랬어유”하는 어미(語尾)에 유 자가 붙는 사투리의 방언은 나를 놀림감으로 만들었고, 시골 촌놈의 대명사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쾌활하고 친화적인 나의 성품을 이해한 친구들은 이내 나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학교에서도 인기 있는 친구로 꼽히게 되었다. 순박하고 꾸밈없는 시골의 생활환경이 이곳 서울에 와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친구들의 마음을 끌게 되었고, 진실과 순박함은 가정의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같지 않다고 해도 이심전심으로 순수하고 온유한 마음만은 구태연한 변명이나 설명이 없어도 친구들에게는 소통이 되고 좋은 친구로 회자되어 서로가 격려하고 위해주는 좋은 급우와 친구들이 되었다. 어느 때는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에는 친구네 집에 들러 숙제를 하고 밤늦도록 이야기의 꽃을 피우기도 했는데,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전깃불이 들어와서 공부하기도 좋고 책을 읽기도 편했으며, 무엇보다 친구들의 환한 미소띈 얼굴을 대하며 담소를 나누다보니 더욱 친근감이 생겨났다. 전깃불이 환하게 밝혀주니 책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내면의 환경에는, 내가 살던 시골의 고향집, 호롱불보다는 몇십배 밝은 전깃불이 서울에는 켜져 있고 환하게 밝혀주어 시골보다는 보다 더 능률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밤12시, 자정이 되면 요란스레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에 전깃불은 소리 없이 꺼져버리고 정전이 되었다. 자정이후에는 시내 거의전부가(특수한곳을 제외하고) 전기불이 나가서 그 혜택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어둠이 찾아오는 초저녁부터 밤12시까지는 전기가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방안이 환하니 공부하고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좋았다. 밤이 되면 서울에는 이렇게 해서 어둠은 도시 밖으로 물러갔고, 전기불빛이 하늘에 있는 별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니 도시에서는 이미 하늘의 별과 달까지 다 먹어치웠다. 결국은 전기불빛이 어둠을 모두 먹어 치운 것이다. 이제는 불빛이 밤을 삼켜버려서, 그 별과 달을 찾아보려면 어두운 밤이 아직도 살아있는 나의 시골 고향마을로 돌아가야겠다.
석유등잔불(호롱불)에 대한 추억은 많다. 호롱불은 살아있는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끌어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어둠까지도 끊임없이 호롱불주위로 모여든다. 호롱불은 가족들을 호롱불주위로 끌어 모았다. 호롱불주위에 모여 앉아있는 가족들의 모습은 정겨웠다. 요즘처럼 이렇게 추운날씨가 계속되는 겨울철에는 호롱불주위에 모여앉아 화롯불에 밤을 구워먹고 고구마도 구워먹었으며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밤이 늦도록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이렇게 오종종하게 모여앉아 옛날이야기를 듣고 바느질도 하며, 제각기 자기 일을 하는 가족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밤이 되면 온 가족은 호롱불주위에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호롱불은 가족만의 정다운 시간과 아늑한 공간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방문 창호지에 비친 가족들의 모습은, 사실은 다른 이웃들에게 그대로 들어났다. 가족생활이 드러나는 것이다. 방문 창호지는 바람과 차가운
기온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소리와 빛은 막을 수가 없다. 그래서 소리와 빛에 의해 가족들의 이런 일, 저런 일들이 밖으로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결국 온 동네가 서로 한 가족처럼 모르는 것이 없었다. 누구누구네 할아버지 제삿날이 언제고, 옆집 순이네 아버지 환갑이 언제라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호롱불이라는 작은 불빛주위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그렇게 모든 것들이 투명해진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진짜로 맞는 말이다. 호롱불을 받치고 있는 등잔 밑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래서 호롱불이 바람에 흔들리면 여지없이 등잔 밑에 있던 어둠은 본색을 드러낸다. 호롱불이 움직이면 어둠만 춤춘 것이 아니다. 호롱불주위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천의얼굴로 표정이 바뀌었다. 귀신처럼 보이기도하고 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호롱불은 따듯했다. 정말로 정이 있었다.
호롱불은 투명하다. 불타고 있는 심지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불이 가지고 있는 여러 색깔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제일 깊은 곳은 진한 노란색에 가깝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서 주황색이 더 짙어진다. 그래서 호롱불은 귀엽다. 양촛불에 비해 호롱불은 까만 불꽃 그을음이 승천하는 용처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천장을 향해 상당히 오랫동안 올라간다. 등잔대에 있던 호롱불은 그윽하다.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하다. 호롱불 밑에서 내가 공부를 할 때 어머니는 늘 졸린 눈을 비비면서 바느질을 하셨다. 그러면 호롱불도 끄덕 끄덕 졸면서 한번은 나에게 빛을 많이 주고 한번은 어머니에게 많은 불빛을 주었다. 호롱불을 보고 찾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차가운 형광등불빛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호롱불은 어둠마저 품에 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호롱불을 켜놓고 책을 보고 숙제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호롱불아래서는 공부가 잘되고 집중이 잘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비록 형광등처럼 밝지는 않지만 눈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호롱불을 올려놓고 책을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보자기만한 책상에만 불을 밝히는 호롱불 때문에 보이는 것은 책상밖에 없다. 단지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거대한 그림자만 벽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호롱불을 켜고 밤늦도록 공부를 하다보면 콧구멍속이 새까매지고 그을림이 얼굴을 까무잡잡하게 만들어 내기도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게 되면 세숫대야의 물이 회색으로 변할 때가 많이 있다.
호롱불 밑에서 읽은 동화책과 소설들이 바로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호롱불 밑에서 읽었던 교과서와 몽당연필로 침을 발라가며 공책에 써간 숙제가 나를 이렇게 키웠다. 호롱불 밑에서 자란 나의 꿈은 호롱불처럼 가족이라는 불꽃의 주위를 맴돌게 만들었다. 가족은 항상 호롱불처럼 빙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바로 코앞에서 말이다. 호롱불은 온 가족을 자기주위로 모여들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호롱불을 보면 가까이 다가앉게 된다.
호롱불이 그립다. 엄마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올망졸망 모여앉아 서로의 마음과 정을 주고받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아득한 옛 시절, 호롱불에서 키운 꿈들이 이제 어둠속에서 또 다른 호롱불이 되어 나의 가슴과 머리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이렇게 호롱불은 아직도 나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고 점점 더 큰 불빛으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 집의 호롱불이었듯이, 추억의 호롱불은 나의 아버지처럼 바윗돌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같이 밤이 긴 동지섣달이 되면 옛날의 고향집 호롱불생각이 저절로 솟아나 그 추억을 더듬어보았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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