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30> 여행을 떠나면서……님도 보고 뽕도 따고

김명열 기행문<30> 여행을 떠나면서……님도 보고 뽕도 따고
여행작가 및 칼럼니스트 / myongyul@gmail.com

모든 여행은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지에서 온 몸으로 배우게 되는 역사와 문화, 지리, 전설과 설화, 음식, 여행지에서 풍겨나는 향기, 체험 등은 아주 좋은 소재가 된다.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는 인상 깊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모두가 독특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꿈을 위해 인생을 던질 만큼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사람이 나의 주변에는 없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나는 그들을 만난다. 그들을 보면 보통 내주변의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범상함을 느낄 수 있으며 평범하지 않아 아름답기도 하다.

누구는 몇 년간 집이 없이 전국, 또는 세계일주를 하고, 누구는 직장이 없이 유목민처럼 돌아다니지만, 그의 여권에는 세계 각국을 여행한 기록으로 여권에는 도장을 찍은 자국이 가득하다. 잡담이 아닌 진지한 얘기를 할 때, 이를테면 자신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눈빛은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금성이나 북극성보다도 더 빛난다. 그들의 이야기는 유머러스하고 여유가 있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은 모든 것에 얽매어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집 뒤의 높은 산 이름은 몰라도, 자기네동네 시장을 볼 수 있는 마켓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도, 지금껏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누군가가 그를 향해‘당신은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물어도 그는 개의치 않고 편안한 미소를 띠며 웃어넘길 수 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자유분방함과 색다른 시선,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짚시 같은 인생은 본보기가 된다. 많은 여행을 다녀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알지만 실천하기 힘들뿐이고, 실천하지 않았기에 그 힘을 모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말은 틀린 게 없다는 걸 여행을 통하여 새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체험과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견학을 통하여 또한 지식을 얻게 된다. 여행에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여행자에게는 하나의 축복과 같다. 다만 지식축적만큼, 이를 기록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일거양득이라는 뜻의 속담으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은 의문점이 생겨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많은 농작물중에 왜 유독 뽕을 들춰내어 표현을 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겨난다. 그것에 대한 설명은 이러한 집착과 추상적인 결론의 귀결점이 옛날 조선시대의 풍습으로 촛점이 맞춰진다. 남녀7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옛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유별이 철칙이었고, 여인들은 문밖출입도 자유롭지 못하고 제약을 받는 시대였으나, 유독 뽕잎을 따는 시간만은 출입이 자유로웠다. 뽕나무의 잎은 누에의 먹이로 쓰이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중요한 농작물의 하나였다. 우리나라는 아주 오랜 옛날 신라시대 때부터 뽕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 현종 때에는 일정한 수의 뽕나무를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뽕나무는 성장속도가 빨라서 보통의 뽕나무들은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고 잎사귀도 넓적하고 큼지막하기 때문에 뽕나무밭에서 청춘의 남녀가 은밀하게 만나는 건 물레방앗간 수준의 최적의 조건과 환경을 갖춘 은밀한 자연적인 데이트장소가 되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것,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사회생활 속에 이러한 경우를 겪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아니 겪게 된다기보다는 스스로 그러한 계기나 일들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대로 시행하는 사례가 많이 있다. 나 역시 이번에 일거양득인 효과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에 온천에 관심을 갖고,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Hot Spring)에 가고 싶어 했던 집사람의 요망에 우리부부는 여행일정을 잡았다. 때는 마침 11월 초순이기에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남부지방의 단풍이 들은 모습을 보기위해서도 지금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적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여행 스케줄을 잡아서 떠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여행일정의 계획을 세우기를, 플로리다주를 포함한 6개주(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테네시, 알칸사)를 경유하며 주변의 아름다운 주립공원이나 명승지를 관광하고 둘러보기로 결정하고 일정표를 만들었다. 이번의 여행은 8박9일의 자동차운전여행이다. 집을 출발하며 유유자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초연한 마음과 해방감으로 여유롭게 조지아 주의 애틀랜타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몇 시간 가다가 힘들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집사람이 준비해온 음식과 간식, 음료수를 먹으며 북쪽의 애틀랜타를 향해 올라갔다. 애틀랜타에 가면, 몇 년 전까지 어언 20여년을 함께 이웃에서 살았던 D한의원의 L원장님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한국마켓에서 여행 중에 필요한 식품 및 밑반찬, 생활용품을 구입하고 여행지로 떠날 예정이다. L원장님 부부는 시카고에서 20여 년 동안 한의원을 경영하다 시카고의 날씨가 겨울에는 너무나 춥고 눈도 많이 와서 겨울6개월 동안은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다보니 기후가 온화한 이곳, 애틀랜타로 이사 와서 동방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도 침술이 탁월하여 용하다는 칭찬을 받아온 분인데, 이곳에서도 역시 그 의술과 실력을 인정받아 애틀랜타 인근에서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고 있다. 그곳에 도착하여 따듯한 환대를 받으며 우리는 오랜만에 정담을 나누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동안 나는 틈틈이 낚시를 가서 잡아온 신선한 생선들을 아이스박스에 잔뜩 싣고 가서 선물로 주니 두 부부가 너무나 좋아한다. 내륙지방인 애틀랜타에서는, 금방 잡아 펄펄뛰는 놈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 얼렸다가 이렇게 싱싱하게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공치사의 말임) 어쨌거나 우리는 밤늦도록 밀렸던 많은 이야기들로 회포를 풀며 정담을 나눴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함께 한 후, 우리부부는 근처의 대형 한국마켓에 들러 이것저것 여행 중에 먹을 먹거리들과 주전부리 간식, 등등을 충분하게 사서 차에 싣고 애틀랜타를 벗어나 20번 국도 하이웨이를 따라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앨라배마주 Birmingham을 지나 그곳에서 22번 국도 하이웨이로 바꿔 타고 서북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가다 보니 미시시피주의 웰컴 싸인이 나온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 달려갔다. Tupelo시에서 자동차 개스를 잔뜩 채워 넣고 얼마를 가다 Holly Springs National Forest로 들어갔다. 이곳 휴양림(자연림)에 들러보니 빼꼭히 우거진 수풀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나무사이로 불어와 신선함을 더해준다. 드넓은 국유림 숲속 가운데에는 그림 같은 맑은 물의 호수가 주위의 나무와 구름, 하늘의 파란하늘을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한폭의 정물화를 보여주는 듯이 고요와 적막,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착각 속에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곳 주위를 살펴보니 아직은 본격적으로 단풍은 들지 않고 간간히 노르스름한 잎사귀의 가장자리가 나른한 가을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볼 수 없는 호젓한 숲속 한 가운데서 키다리 같은 나무숲 사이로 빼꼼히 올려다 보이는 파란 하늘은 세상속의 세파에 찌들고 상처받은 영혼을 내려다보며 편히 쉬고 가라고 인사말을 보내는 듯이 보였다. 호수 가운데는 한가로이 낚싯대를 던져놓고 어신(魚訊)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호수의 물속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강태공의 눈빛이 가을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사람들은 가끔씩 이렇게 조용한 시간을 갖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에 잠기며 자신을 성찰해 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갖고 이렇게 편안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여간 좋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주중에는 여러 곳의 언론사에 글을 써서 보내느라고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이든 실정이다. 한곳의 신문사에 글을 송고하고서는 이내 다른 신문사에 또 글을 써서 보내야 되니, 일주일 내내 글을 구상하고 새로운 내용의 문장을 창작하다보니 지끈지끈 머리가 아프고 무거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탓할 일은 아니다.
물과 호수, 구름과 파란 하늘, 화사한 햇볕, 단풍이 들어가는 우거진 수풀, 곁에는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함께한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니 세상에 이처럼 행복한 순간도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새삼 머릿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에는 과분한 마음이 생겨난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라는 말도 있듯이, 비록 나물은 먹지 않고 샐러드를 먹고, 물도 마시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팔도 베지 않고 공원의 벤치에 편안히 앉아 있으나, 대장부 여행길이 이만하면 족하다고 할 수 있다.​
숲속의 맑은 공기, 시원하게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머리위의 나뭇가지에서 아름답게 지저귀는 낭낭한 새의 노랫소리, 노오란 색채로 번져가는 늦가을의 단풍드는 잎사귀의 변신, 거울처럼 맑은 호숫물, 이모든 자연의 모습들을 벗 삼아 유유자적 한가로이 호숫가와 황토길 산책로를 걷다보니 어느 듯 11월의 짧은 햇살은 석양노을을 만들며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나와 집사람은 서둘러 차를 몰고 22번 국도 하이웨이로 나와 북서쪽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테네시주의 멤피스까지 가야만 그곳에서 여장을 풀고 호텔에 묵을 수 있기 때문이다. 쥐꼬리만큼 남았던 석양이 어느새 몸을 감추고 사라졌다. 금새 어둠이 찾아와 깔리고 사방은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세상이 변했다. 가끔씩 속력을 멈추지 않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고속주행의 차량들의 헤드라이트가 시야를 어지럽힌다. 어둠속을 한참이나 달려와서 우리는 힘들게 테네시주의 멤피스에 도착했다. 예약 없이 찾아 나선 호텔이었지만, 그중에 깨끗해 보이고 괜찮은 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예약이 없이도 우리는 쉽게 깨끗하고 좋은 호텔에 들 수 있었다.기행문 다음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1055 / 011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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