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해학과 풍자속의 웃음

<김명열칼럼> 해학과 풍자속의 웃음
옛날 나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다. 교양과목인 철학개론 시간이 끝나면 곧 이어서 국문학 강의시간이 시작되는데, 국문학 교수인 L교수님은 한자를 곁들여 설명을 할 때면 종종 그 한자(漢字)에 들어있는 낱말을 풀어 해학적으로 강의를 이어가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대단히 인기를 모으고 명 강의를 하는 교수님으로 소문이 난분이다. 대개의 경우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의 강의시간에는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않고 결강(訣講)하는 땡땡이 친구들이 종종 생겨나고, 설사 학업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다해도 쏟아지는 졸음과 나른함에 비몽사몽 세계를 헤맬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L교수님의 국문학 강의시간이 되면 모든 학생들이 토끼 귀처럼 귀를 쫑긋이 세우고 강의를 경청하느라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때가 많이 있었다.
어느 해 봄, 새싹이 돋아나고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햇볕은 따스하게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며 졸음을 유혹하는 오후강의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졸음에 겨워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문서 적(籍)자를 칠판에 써놓고 “이 글자를 아는 사람?” 하고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멀거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학생이 “교수님 그것은 한문으로 ’적‘자가 아닙니까?” 하고 답변을 했다. 그랬더니 ’누가 그것을 몰라서 묻는 줄 알아? 이 글자에 대해 뭔가 들은 얘기 없느냐고?……….‘ 이러한 재차의 질문에 더욱더 학생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마을에 사는 한 총각이 이웃마을 사는 처녀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얼마 후 그 처녀에게서 답장이 왔는데 그 편지 안에는 서적 적(籍)자만 달랑 한자 적혀져 있었다. 그것을 본 총각은 혼자서 너무 좋아 입이 함지박만 해져 가지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것을 본 주위 시람들이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어보자 총각은 다음과 같이 풀이해주었다. 적(籍)의 글자를 하나하나 풀어보자면 제일위에 있는 글자는 대나무 죽(竹)자이며 그것은 대나무밭을 뜻하는 것이고, 왼쪽은 오라는 뜻의 올 래(來)자이며 그리고 오른쪽의 석(昔)은 열 십(十)자가 두개에 한 일(一)자가 받침으로 있고 그 아래 날 일(日)이 있는 것이니 결국 21일(二十一日)에 대나무 밭으로 오라는 말이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라며 싱글벙글 그 기쁨을 감추질 못하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해학(諧謔)이란, 화할 해, 풍자할 학, 희롱할 학, 의 약자로 익살스러우면서도 풍자적인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해학의 대표적인 것들로는 마당극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흥부전을 비롯한 판소리나 조선시대의 탈춤(양반과 계급사회를 비꼬는 것)등이 있고, 풍자(諷刺)란 인간이나 세상의 좋지 않은 면을 비판적, 희극적으로 비꼬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요즘 TV에 나오는 개그 쇼(웃음 프로그램)도 현실의 불합리를 비꼬는 것으로, 풍자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해학의 선구자?라면 우리는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을 꼽을 수가 있다. 그는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글공부를 좋아해 열 살 전후에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이십대 전에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한 수재이다. 그는 과거에 응시했을 때 공교롭게도 자신의 조부인 김익순의 역적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을 쓰라는 시제가 나와 답글 형식으로 김익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내용을 써 올렸다. 그러다가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祖父)라는 사실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고, 그에 충격을 받아 모든 걸 포기하고 삿갓을 쓰고 전국을 유랑하게 되었다.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1867)은 한 조각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일생을 방랑하며 시를 읊은 불우한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늘을 지붕 삼고 술을 벗 삼아 조선 팔도를 떠돌며 파격적인 풍자와 해학으로 당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그래서 그가 남긴 즉흥시에는 권위적인 양반과 부패한 당대의 권력자들을 풍자하고 조롱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로 인해 민중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여기에 김삿갓에 관한 고전, 해학적인 재미난 얘기를 옮겨 소개하여드리도록 하겠다. 먼저 양해를 구할 것은 글의 내용을 사실대로 옮겨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입에 담기가 거북스러운 내용이 포함되어있음을 널리 이해하여주시기를 바라겠다.
어느 추운겨울날, 김삿갓이 천하를 주유(周遊)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서당을 찾아 하룻밤을 묵어가기를 청했다. 그런데 그 서당의 훈장은 김삿갓을 미친개처럼 취급하며 내쫓았다. 이에 김삿갓이 시(詩)한수를 써놓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당 내조지(書堂 乃早知) 방중 개존물(房中 皆尊物) 생도 제미십(生徒 諸未十) 선생 내불알(先生 乃不謁), 이상의 시를 한자의 본래 뜻대로 풀이한다면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내용이 된다.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보니. 방안에는 모두가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는구나. 그런데 위에 쓰여진 한자의 뜻을 무시해버리고 음만 읽어서 우리말로 해석하면, 현대인들도 능히 알 수 있는, 그렇지만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저질의 육두문자가 된다. 서당은 내조지안에 있고, 방안에 있는 모두는 개존 물이다. 생도들은 제미십이고 선생놈은 내불알이다.
이어서 재미있는 풍류 한 구절을 더 소개하여드리겠다. 김삿갓이 소양강변에서 나룻배를 탔다. 그런데 배를 타고 보니 노를 젓는 이가 처녀 뱃사공이다. 이럴 때 한마디 수작을 걸지 않으면 김삿갓이 아니다. 그래서 한마디 농을 처녀에게 걸친다. ‘여보 마누라 노좀 잘 저으소’ 이 소리를 들은 처녀 뱃사공 그녀가 펄쩍뛰며 하는 말 ‘어째서 내가 댁의 마누라요?’ 이에 김삿갓은 태연히 대답한다. ‘내가 당신 배에 올라탔으니 당연히 당신은 내 마누라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대며 처녀 뱃사공이 강을 건너오자, 처녀가 배에서 내려가는 김삿갓을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내 뱉는다. ‘내 아들아 잘 가거라’ 김삿갓이 눈이 똥그래져가지고 ‘아니 내가 어찌 그대의 아들인고?’ 처녀 뱃사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답변을 보낸다. ‘당신은 지금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이 아닌감?’. ㅎㅎㅎㅎ 모두가 살기가 힘들고 재미가 없는 세상이라고 말들을 한다. 삭막하고 힘든 세상, 웃고 살자고 오늘은 재미있는 해학의 글자풀이로 여러 독자분들께 웃음을 선물해드렸다. 웃음 속에 하루를 즐겁게 보내도록 노력하자.
문필가(탬파거주) /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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