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살기 힘들은 세상, 그래도 희망은 있다

문필가 / 탬파 거주
어제 시카고에 살고 있는 지인 한분께서 전화를 주었다. ‘미국의 경기가 조금은 좋아졌다고 하는데 자기는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고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소비산업도 위축되다보니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하는 사람보다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이 풍진세상(風塵世上)이란 노래가 있다. 이 뜻을 풀이해보면, 편안하지 못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뜻하는 말이다. 어느 사람에게는 살기 좋은 태평성세의 좋은 시절이라고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세상이 고르지 못하고 살기가 힘들다며 현실을 탓하고 우울하고 비관 속에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에서 보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더 갈구하고 더 많이 말한다. 1921년경 레코드 음반으로 출시된 한국최초의 대중가요 “희망가”도 그 점을 잘 말해준다. 가사의 내용만 볼 것 같으면 희망가가 아니라 절망가이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1910년경 일본서 여학생 12명이 강을 건너다가 익사, 사망한 후 그녀들을 추모하기위해 영국의 찬송가 곡조에 일본인들이 노랫말을 붙여 만들어졌다는 그 노래를 즐겨 부른 이들 또한 내일이 없는 술집작부들이나 낙백(落魄)한 지식인들이었다. 여기서 나는 낙백이라고 썼는데 이 낙백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동양에서는 인간의 생명력을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관념이 있다. 여기서 육적(肉的)인 생명력을 우리는 정(情)이라하고 영적(靈的)인 생명력을 신(神)이라고 대개들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정과 신이 기(氣)에 의해 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죽으면 기가 흩어지면서 정과 신이 따로 분리되고, 사람의 몸속에서 빠져나간 육의 생명력을 백(魄)이라했고 영의 생명력을 혼(魂)이라고 했다. 또 육의 생명력은, 백은 땅에서 얻어지는 물과 음식에서 활력을 얻고 죽은 후에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의 생명력인 혼은 하늘에서 나오는 대기의 호흡에서 활력을 얻고 죽은 후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낙백(落魄)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궁한 형편에 처함’이라고 풀이되어 쓰여 있는 것도 육의 생명력이 취하고자하는 땅위의 명예나 권세, 호사에서 멀어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그래서 “낙백”은 육체적인 불만족, 즉 그러한 불만족스러운 육체를 달래는 데는 술과 섹스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고이래 한량들이 개똥철학으로 읊어가며 주장한 그들만의 경험담이고 객설이다. 술을 마시고나면 뇌와 척추로 구성된 중추신경계의 활동이 억제되어 고뇌와 고통의 감(感)도 또한 감소되고 무뎌진다는 것은 그들 경험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거니와, 섹스가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고 육체적 쾌락은 물론 자신감을 향상시켜 주는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현대의학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낙백한 사람들이 술과 여자를 찾는 것이야말로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영적인 각성, 술과 여자로 육적인 허기짐을 달랬다고 하더라도 사내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파묻혀 있을 수는 없다는 다른 한면의 영적인 배고픔은 어떻게 채우고 달랠 것인가?………
과거 나의 젊었던 시절, 내주위에는 한창 꿈과 포부로 미래를 설계하며 희망에 부풀어 현실에 도전하며 열정을 다 바쳐 사업에 투자한 친구 한명이 있었다. 나와는 무척 가깝게 지내며 벽이 없고 허물없이 모든 마음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자기부모님께서 애써 일궈놓은 많은 재산과 시골의 논, 밭을 다 팔아 성원해주어 일궈낸 사업체가 몇 년도 안돼서 실패를 하고 말자, 그 친구는 실의에 빠져 죽고만 싶다며 신세한탄을 곁들여 매일같이 술과 더불어 세상을 불행 속에 살아갔다. 그런 생활 중에는 기생집에 들러 술집기생이 따라주는 한잔 술에 위로를 받으며 이 풍진 세상을 한탄하고, 술과 여자만이 세상에서 가장 자기의 맘을 알아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존재이며 대상이라고 주석(酒席)상에서 외쳐댔다.
한옆으로는 그 친구가 너무나 안됐고 불쌍하기까지도 한 그 친구의 마음과 현실을 백프로 이해하면서도, 사나이로 세상에 태어나 낙백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루어 짐작을 해본다. 이렇게 낙백한 나머지 주색잡기에 빠지는 이 친구나 기타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허지만 그래 봤자 남는 건 빚덩이와 술집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박행(薄行)한 이름뿐, 그 누구 아무개는 팁도 안주거나 짜배기더라. 기분 내켜 안주하나 더 시켰다고 인상을 쓰더라. 요새는 돈 떨어져서 긋고 마시더라. 이런 저런 추태로 자신의 이름이 그런 천박한 술집접대부들의 안주꺼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의 자신이 느끼게 되는 초라하고 비참함이란 어땠을까?………
영적인 배고픔은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을 비관하며 살기 싫고 낙망에 젖어 좌초에 걸려 헤메는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알고나있는지?……….
살기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 내일과 미래의 희망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탓하는 사람들, 그러나 비전과 희망이 없는 세상은 없다. 무엇이던 자기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갖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상이 희망이 없다는 말은 다만 희망을 잃은 몇몇 사람들만이 그것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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