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사람의 진가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김호진 목사 / 올랜도연합감리교회>
목회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람의 첫인상(First Impression)보다 더 중요한 것이 끝인상(Last Impression)이란 것입니다.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찾아올 때 모습보다 일을 그만둘 때 모습이 진짜이고, 돈을 빌리러 올 때 모습보다 돈을 갚을 때 모습이, 결혼할 때 모습보다 이혼할 때 모습이 진짜입니다. 교회에서도 이것은 유효한데 처음 교회 올 때 모습보다 교회를 떠날 때 모습이 진짜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관계를 끝낼 때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원한(怨恨)만 남지 않아도 그나마 다행입니다. 따라서 첫인상은 얼마든지 내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잘 보이고 싶고, 교양 있다는 소리 듣고 싶고, 예의 바르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새로운 관계를 열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끝인상은 조작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첫인상 때와는 달리 끝인상은 관계의 종점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교양을 따지기보다는 내 이익이 앞서게 되고, 배려보다는 묵은 감정이 가시처럼 튀어나옵니다. 그동안 관계 때문에 참았던 말 다 퍼붓고 싶은 욕구에 휩싸입니다. 이것저것도 싫으면 그냥 소리 소문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관계가 끝나는 지점에서 돌출된 끝인상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민낯과 같습니다. “저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야!” 라는 장탄식이 나오기도 하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입니다.

첫인상의 유혹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첫 느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감을 타고 들어오는 첫 번째 자극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때문입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르진 않지만 바로 이 첫 숟가락이 내 식욕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언제 봤다고 첫눈에 번쩍하고 반해버립니다. 스치듯 냄새를 맡았는데 빠져들었고, 한번 만졌는데 갖고 싶은 욕심에 이미 내 지갑과 마음이 탈탈 털리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성숙해진다는 증거는 첫 자극에 잘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첫 번에 자극적인 맛보다는 깊은 맛을 알게 됩니다. 첫눈에 확 끌어당기는 것보다 지그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느낌이 좋아집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듯이 잔향이 오래가는 참나무의 향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만지고 쓰다듬어 반질반질해진 할머니의 다듬잇돌이나 할아버지 손에 묻혔던 호두 두 알에 박힌 이야기에 마음이 열립니다. 관록이 생기고 성숙해졌기에 비로소 끝인상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다른 주로 여행을 갔습니다. 모처럼 커다란 한국타운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머리도 잘랐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한국 빵집을 발견하고는 가게를 쓸어 담을 태세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단팥빵과 소보루빵 크림빵들을 한 바구니 가득 샀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커피에 크림빵 먹을 생각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웬걸? 크림빵을 꺼내 들고 한 입 먹는 순간 뭔가가 이상합니다. 입 안 가득 퍼져야 할 크림이 없습니다. 빵 끄트머리를 먹어서 그러려니 하고 더 크게 중앙을 베어 물었습니다. 아까보다는 크림이 느껴지지만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먹던 빵을 들어 안을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빵 안에 크림이 들어있는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단팥빵을 꺼내봐도 그랬고 다른 빵 모두가 그랬습니다. 순간 속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조금 더 받더라도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팔지 왜 이렇게 얕은수로 장사를 하는지 짜증이 났습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이와 같습니다. 첫인상은 참 좋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 입에 혀처럼 기가 막히게 나를 맞춰줍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체가 드러나고 그 안에 중심이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거나 더는 얻을 것이 없는 것을 아는 순간 실체가 드러납니다. 씁쓸한 끝인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속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결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알수록 괜찮고 볼수록 마음에 듭니다. 볼 때나 안 볼 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 안에 중심이 꽉 찬 사람입니다. 비록 인생의 방향이 달라 헤어지더라도 묵직한 끝인 상 뒤에 짙은 추억과 그리움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진국이라고 합니다. 늘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짧은 목회경력 속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기억되는 사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아예 기억에 없는 사람. 여전히 기억되는 사람들은 끝인상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기도 속에 여전히 기억하고 축복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끝인상에서 진가를 우수한 성적으로 드러낸 사람입니다. 건강을 위해 기억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가하면 아예 기억에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인상이 없던 사람들입니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有緣千里 來相會, 无緣對面 不相逢 (유연천리 래상회, 무연대면 불상봉).” ‘인연이 있으면 천 리 밖에 있어도 만날 수 있으나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만날 수 없다.’ 관계의 끝이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가까이 있어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반면 끝이 아름다운 사람은 천 리 밖에 있어도 여전히 그립다는 것으로 받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진상은 첫인상이 아니라 끝인상입니다. 다시 안볼거란 생각은 착각입니다. 미국이 생각보다 작습니다. 혹 첫인상에 실패했더라도 끝인상에 성공하면 괜찮습니다. 관계의 시작보다 끝마침에 더 조심하고 배려하기 바랍니다. 맛있는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 할 때의 기쁨처럼 말입니다.
<1035 / 0817201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