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어느 재판

 

 <작가: 해리 이선명>
“그 자를 없애야 해!” 예수의 출현으로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게 된 유대교의 대사제 가야바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동안 갈릴리와 나사렛 등 변경 지역을 전전하며 민중들에게 “새 나라와 새 의(義)”를 외치던 예수는 지난 주말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를 거쳐 예루살렘 방문 길에 올랐다. 거의 1백 마일이나 보도 여행을 한 예수는 예루살렘 입구에 도착할 무렵에는 무척 지쳐있었다.
제자들이 길가에 매어있던 당나귀를 끌어왔다.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황금의 문을 지나 이스라엘의 성시(聖市)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올리브 가지를 꺾어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그를 환영했다.
마침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출(出) 애굽을 기리는 유월절을 맞아 예수살렘은 주디아 지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순례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윽고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화려한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며 지나갔으나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냉대했다.
평소 예수에 대한 기행을 보고받을 때마다 그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오늘은 사태가 심각했다. 예수가 자기를 냉대한 예루살렘 시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은 게 불쾌했고, 더구나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해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며 환전상의 테이블을 엎어버리는 등 난동을 부렸다는 보고를 받은 가야바는 예수의 제거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결심했다.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 새벽 1시, 칠흑같은 야반(夜半)이었다. 이윽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예수를 체포한 천부장이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야바의 사저(私邸)로 들이닥쳤다. 포박당한 채 경비병에 끌려 가야바의 사저로 향하는 돌 계단을 오르면서 다친 예수의 맨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오래 버티던 동장군을 걷어차고 봄이 서서히 그 싱그러운 모습을 보이는 부활의 계절이었다. 그러나 아직 일교차가 심했다. 칠흑같은 밤 하늘엔 주옥같이 박힌 무수한 별들이 구름사이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가야바는 곧 예수의 신분을 확인한 후 이날 밤 특별히 소집한 유대인의 공회(公會) 산헤드린의 대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가 지어준 흰 가운을 걸친 예수는 무척 수척해 보였다.
“네가 신의 아들을 자칭하는 그리스도인가?” 예수는 침묵했다. 가야바는 예루살렘 성전의 난동을 목격한 증인들을 불렀다. “이 자가 사람들이 손으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야바가 “그런 말을 했는가?” 하고 물었으나 예수는 또다시 묵묵부답이었다. 가야바는 “이 자가 신성모독하는 소리를 여러분들이 들었으니, 더 이상 또 다른 증언이 필요없다”고 선언했다. 바로 그 때 닭이 울었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 포박한 예수를 앞세운 가야바 일행은 로마의 예루살렘 총독 빌라도를 찾아갔다. 이들이 빌라도의 관저에 이르렀을 때는 해가 예루살렘 하늘에 높이 솟아 있었다. 예수의 체포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빌라도가 관저 밖으로 나오자 가야바는 예수를 고발했다. “이 자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왕을 자칭합니다.” 빌라도는 내심으로 유대 사람들의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후견인 아누스가 최근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 자신의 위치도 불안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내 왕국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요.”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나는 진리를 갖고 이 세상에 왔어요.”
빌라도가 가야바를 향해 말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은 특별한 죄가 없소.”
“아닙니다. 이 자는 우매한 민중들을 선동하고 있어요. 이 자 때문에 갈릴리는 물론 온 나라가 소란합니다.”
평소 예수의 이적(異跡)에 대한 소문을 들은 빌라도의 아내는 아침 식사 때 그에게 절대로 예수를 해치지 말라고 간절히 당부했었다.
“유월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에 따라 나는 이 사람을 놓아주고 싶소.”
“총독님, 그 건 안됩니다. 민중들이 이 자의 선동으로 폭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어요.” 가야바가 읍소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십자가에 매달아야 해요. 민중들에게 경고를 보여야 해요”
빌라도는 그릇에 물을 떠오게 하여 손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 책임이 없소.”
“그 책임은 우리 유대인들과 우리 자손들이 집니다.” 가야바가 말했다. 이 재판을 먼 발치에서 구경하던 많은 시민들이 웅성거리며 일부에서는 재판에 항의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들은 이내 예수의 이적이 나올 것을 기대하며 무척 초조한 심정으로 두 손에 땀을 쥐었다.
이 때 갑자기 예루살렘의 서쪽 하늘에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작가: 해리 이선명 (Editor.USnews@gmail.com) <1022 / 050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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