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칼럼> 불쌍한 조선시대의 여인들

<칼럼리스트 / 탬파거주>
옛날 봉건시대의 여인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에 얽매어 노예 같은 생활을 했다. 자기자신이란 존재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지켜야할 3가지 도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쫓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쫓고, 남편이죽어서는 아들을 쫓는다는 뜻이다. (在家從父, 旣家從夫, 夫死從子)
과거 유교적 전통사회에서는 위와 같이 삼종지도라는 규범이 있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가정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신(新)삼종지도가 생겨나서 회자되고 있다. 즉 그것은 남자가 어려서는 어머니의 말씀을, 결혼을 해서는 아내의 말을, 늙어서는 딸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의 사회적 역할이 봉건적 주종(主從)관계를 벗어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현대사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구에게 굴종(屈從)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건전하고 화목한가정을 이뤄간다면 서로 의지하고 지켜주는 배려와 이해와 사랑,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정과 사회생활 속에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고 따른다는 것이 그렇게 꼭 나쁜 의미 만은 아니다.
중국의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미 도(道)와 하나가 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무언가를 믿고 따르는 그자체가 이미 그 무엇과 동일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따르는 대상이 무엇이냐 일것이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 때의 역사서 국어(國語)에는 “선을 따르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어렵고, 악을 따르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처럼 한 순간이다.‘라고 했다. 산을 오르는 일처럼 어렵다하더라도 자기가 사랑하고 마음을 주는 배우자나 가족, 흠모하는 사람의 향기 나는 발자국을 따라간다면 꼭 산정에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향기는 내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삶을 부드럽고 향기롭게 이끌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말들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지금으로부터 1백 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여인들의 일생은 각가지 사회의 규범과 얽매이는 틀로 인해 억울하고 한많은 일생을 눈물 속에 보낸 여인들이 너무나 많았었다.
앞서 언급한 삼종지도는 물론 모든 여인들에게는 칠거지악이란 족쇄가 채워져, 인권이 유린당하고 자유를 억압받으며 심지어는 어느 경우 노예와 같은 굴욕과 수모를 당하면서 그 치욕과 분노를 감수하고 삼켜야만했다. 그리고 사용하는 글자조차도 여자들을 차별하여 학문의 길을 막아버렸다. 때문에 어려운 한자(漢字)를 모르는 문맹자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로인해 진서(眞書)라고불린 한문지식을 남자들이 독차지했다.
옛날 미국에서는 흑인노예들에게 문자를 가르친 사람에게는 서른 세대의 매를 때리라는 법령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계산법으로 서른 세대라는 정확한 숫자가 산출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째서 그런 법령이 생겼는가는 안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는 것 이상으로 확실하게 그 의도를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들을 지배하기위해서는 그 노예들이 무식해야한다. 노예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라도 한자는 남성위주의 문자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한자의 자의(字意)를 보면 그것이 대개 여성을 모욕하고 억압하는 회초리와도 같은 문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선 노예(奴隸)라는 종 노(奴)자부터가 여자를 뜻하는 계집녀(女)변에 쓴다. 남자가 종살이를 해도 여전히 그 글자에는 계집녀자가 붙게 마련이다. 즉 노예(奴隸)인 것이다. 여자를 곧 종이나 노예로 보았기 때문이다. 계집녀자가 붙은 모든 문자들은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다. 과거 아주 옛날 중국의 고대시대부터 그렇게 여자들을 절대시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가 불륜을 저지른 간통(姦通)에도 쌍벌(雙罰)이아니라 여(女)자만 세 개가 나오고, 요망(妖妄)스럽다는 말도, 질투(嫉妬)도 모두가 계집녀(女)자가 따라붙는다. 이처럼 성격을 표현한 한자는 그런대로 낫다. 가령 맡길 위(委)자나 여(如)자를 분석해보면 이글을 읽는 독자 여성들께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을 것이다. 위(委)자는 벼이삭을 뜻하는 화(禾)자에 계집 여(女)자를 붙인 것이다. 즉 여자란 벼이삭같이 고개를 숙이고 모든 일을 남성에게 맡긴다는 뜻에서 그런 글자가 생겨난 것이다.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여(如)자 역시 마찬가지로 如는
여자의 입(口)이다. 어째서 여자의 입이 같다는 뜻으로 되었을까? 설명을 드리면, 여자의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기의 말이 아니다. 앞서 말 한대로 삼종지도(三從之道)대로 어렸을 때는 부모의 의견을, 시집을 가서는 남편의 마음을, 늙어서는 자식의뜻을 나타내는 입(口)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자의 말은 자기의 말이 아니라 부모, 남편, 아들의 의사와 같은 것이여만 했다. 여자의입은 영원한 대변인의 입, 자기를 주장해서는 안될 입인 것이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또한 여자들에게는 칠거지악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운신의 폭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옛날에는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의 악법(惡法)인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있었다. 그 칠거지악은 다음과 같다.
1. 불순구고(不純舅姑)=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2. 무자(無子)=아들을 못낳는 것. 3. 음행(淫行)=행실이 음탕한 것. 4. 질투(嫉妬)=질투하는 것. 5. 악질(惡疾)=나쁜 병이 있는 것. 6. 구설(口舌)=말이 많은 것. 7. 절도(竊盜)=도둑질하는 것,
즉 시부모를 잘 섬기지 않는 것은 불효이고, 자식이 없다는 것은 가계의 단절을 뜻하며, 아내가 부정이 있으면 혈통의 순수성을 지킬 수 없게 되고, 그리고 질투에는 애첩의 수효를 늘리는 축첩에 방해가 되고 이는 곧 자손번창에 방해가 되며, 못된 질병은 자손의 건강에 해롭고, 말이 많으면 가족간의 불화를 조장시킨다고 보았던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운명을, 그리고 사랑을, 아울러 자신의 생명까지도 남자들에게 맡기며 살아야했던 조선시대의 여성들 삶은 곧 모든 것을 위임(委任)하는 예속의 상징으로 비유되어있다. 그렇게 불쌍하고 노예처럼 가여웠던 여인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위상이 뒤바뀌어 이제는 남성들이 여자들을 모시고 사는 새로운 삼종지도의 세상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남존여비사상에 입각해 남자가 존재하는 한 여자가 비참했지만, 오늘날의 남존여비는,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한다.’이다. 세상이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여자들이 살만한 세상이다.
myongyul@gmail.com  <1014 / 030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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